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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지배와 빼앗긴 땅, 독립 후 맞이한 부패한 정권, 이어진 쿠데타와 폭력적인 군부독재… 끊임없이 반복되는 폭력과 야만의 역사. 마치 섬으로 밀려오는 그칠 줄 모르는 파도와 같이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바꿀 수도 감당하기도 어려운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파도에 표류하며 ‘나의 것’이라 생각되는 부질없는 것들을 목숨처럼 지키며 아둥바둥 사는 수밖에. 일흔 살 노인 새뮤얼은 작은 섬의 등대지기이자 유일한 주민이다. 2주에 한 번 오는 보급선이 세상과의 유일한 접점이고, 섬은 온전히 새뮤얼의 것이었다. 정체도 모르고 말도 통하지 않는 너무 다른 외모의 ‘난민’임이 분명한 그 남자가 표류해 오기 전까지는. 평온하던 그의 생활은 의심과 불안으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죽임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사실과는 다른 어이없는 억측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어이없어하기도 하고, 의심스런 그 남자와 서로 도와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역린이던 늙은 암탉에 얽힌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그 남자를 참지못하고 결국 잔인한 방식으로 그를 살해하고 만다. 그토록 자신을 피폐하게 했던 폭력으로 아무것도 모른 체 죽어야하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고야 만 것이다. 책 속에 그려진 새뮤얼의 나라는 식민지 시대, 부패정권,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아픈 역사를 지녔다. 어린 시절 새뮤얼은 나라가 식민지가 되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가족과 함께 쫓겨났다. 도시에서는 구걸로 생계를 연명했고, 독립운동하던 아버지는 장애를 갖게 됐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쟁취한 후에도 좋은 시절은 오지 않았다. 부패한 권력자들이 정권을 잡은 데다 정세가 불안정한 이웃 나라의 난민까지 몰려든 것. 군부는 그 틈을 교묘히 파고들고, 젊은 혈기에 취한 새뮤얼은 외국인들을 몰아내는 소요에 가담하지만 곧 수치심을 느낀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독재가 시작되자 새뮤얼은 동지들과 연대해 민주화 운동에 나선다. 그러나 그는 용감한 투사도, 권력의 개도 되지 못한 채 체포되어 2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마침내 독재자가 실각하고, 자유의 몸이 된 새뮤얼은 등대지기에 자원한다. 섬은 외로운 곳이고 바다는 사나웠지만 그의 삶보다 거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파도에 출렁이듯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삶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코 폭력과 야만에서부터 자유롭게 놓여날 수는 없는 것이었기에 애처롭고 측은하기만 하다. 고집스러운 섬처럼 그렇게 홀로 살다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너무나 뻔해서. 4일간의 이야기가 그의 평생을 그대로 축약해놓은 듯하다. ______ 바닷새들이 울고, 파도는 포효하며 자갈 해변을 때리고 있었다. 이 끊임없는 밀물과 썰물, 바다는 끊임없이 자신이 선택한 것을 가져올 것이다. 내버려두자. 바다가 찾아오도록. 새뮤얼은 문지방을 넘으며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섬 | 캐런 제닝스, 권경희 저 #섬 #캐런제닝스 #비채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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