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전, 헤어지기 전에 선학과 유리가 종종 스파게티를 먹으러 왔던 곳이었다. 여기 스파게티가 맛있다고 말한 유리의 말 한마디에 자주 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에 꼭 다시 오고 싶었어. 같이 밥 먹자고 먼저 말해준 유리 덕분에 내가 덜컥 여기 예약했어. 들어가자.”
선학은 유리의 몸을 이끌어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주 앉은 선학과 유리는 식당 안의 모습을 바라봤다.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작은 소품 하나 까지도 삼 년 전과 똑같은 걸로 사용하고 있었다.
유리는 오랜만에 온 낯익은 공간에도 별다른 좋은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마음이 무거워 그저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선학은 기분이 좋고 설레 이고 있었다. 오랜 만에 온 식당은 변하지 않고 소품 하나 까지도 똑같은 것을 보고는 뭔지 모를 자신감을 가졌는지 모른다. 이미 이렇게 어긋난 인연일지라도 다시금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는 소품들처럼 자신들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설레는 기분은 유리의 말 한마디 덕분이었다. 지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유리도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아주어 같이 밥을 먹자는 것으로 생각한 선학은 이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릴 기분이었다.
“많이 먹어.”
뜨거운 김을 풍기며 맛있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스파게티가 앞에 놓여졌다. 선학은 유리에게 포크를 쥐어주며 먼저 먹기를 기다렸다. 포크에 스파게티 면을 또르르 말아 유리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난 뒤에야 선학도 먹기 시작했다.
“저, 저기…….”
“응. 뭐?”
처음으로 자신을 불러준다는 기대감에 선학은 포크를 당장 내려놓고 유리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뭐가 좋은지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
“……할 말 있어요.”
“그래? 뭔데?”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유리에 말이 너무 좋아 목소리 톤이 살짝 높아졌지만 선학의 속마음은 두려웠다. 삼일 전, 친구 현규에게서 들은 이야기랑 같은 소재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걱정부터 되었다. 쉽게 입을 열지 않는 유리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자 선학이 먼저 용기를 내기로 했다. 마냥 기다리는 것도 뭔가 더 걱정이 되었기에.
“뜸들이지 말고 말해.”
“…….”
얼굴 가득 망설임과 걱정을 담고 있는 유리의 표정을 바라보다 선학은 먼저 크게 마음을 먹었다. 어떠한 말을 들어도 그만 만나자는 말만 아니면 다 들어줄 용의가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유리 말이라면 다 들어줄 용의가 있어.”
“무, 무슨 부탁이라도 다요?”
“음……. 넌 모를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먼저 나한테 부탁을 해온 적이 없었어. 처음으로 하는 부탁인데 내가 거절을 할 수는 없잖아.”
선학도 사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걱정이 되었다. 현규 녀석이 한 말과 동일한 말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도 유리를 향해 선학은 싱긋 웃어 보였다. 자신이 지금까지 부탁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선학의 세세한 자상함에 유리는 망설였다. 착한 사람에게 괜히 자신의 부탁으로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유리는 오직 한 가지, 하준을 생각하며 용기를 내기로 마음먹었다.
“……회사.”
“응?”
힘겹게 내뱉은 유리의 목소리가 너무 작은 탓에 선학은 제대로 듣지 못해 되물었다.
“회사 도와줘요.”
유리는 제대로 크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말을 마치자 선학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 힘든 마음에 유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확하게 어떻게?”
“오, 오빠 회사가 어려워요. ……도와줘요.”
기어들어 갈 것 같은 유리의 목소리를 들은 선학은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삼일 전, 현규 녀석에게 들은 소식이었다. 지금 현재 자신의 앞에서 죄수 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는 그녀는 현규 녀석의 예상대로 자신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아직 제대로 뭔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탓에 당황스러웠다.
“힘든 거 알지만 도와줘요. 부탁할게요.”
“음…….”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부탁을 해오는 유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선학은 심히 갈등했다. 그냥 쿨 하게 도와 줄 것인가, 아님…… 현규의 말대로 악마의 손을 잡을 것인지를.
“선, 선학 씨……. 회사 좀 살려줘요.”
유리는 애절 하리 만큼 두 손을 모아 빌며 애원했다. 그녀의 저런 모습을 보면 볼수록 그의 마음엔 나쁜 생각이 불쑥 비집고 계속해서 들어왔다.
“조건이 있어.”
그는 결국…… 악마의 손을 잡아버렸다. 이 일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현희(진주의눈물)의 로맨스 장편 소설 『심장의 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