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물고기』 작가 왕웨이롄의
두 번째 소설집 『생활수업』
자아실현과 자아 좌절의 굴레
인생에서 합의 가능한 지점이란 게 있을까
첫 번째 단편집 『책물고기』를 선보인 지 7년 만에 글항아리 ‘묘보설림’ 시리즈 스무 번째 책으로 왕웨이롄의 『생활수업』이 출간되었다. 8편의 단편으로 묶인 『생활수업』은 고독, 불안, 결여, 환상을 엮어 왕웨이롄이 벼린 생의 감각을 드러내며 삶의 근본적인 생활문제를 들춰본다. 그가 천착한 ‘생활’이라는 소재는 지극히 사적이고 사소하다. 그러나 그는 일상에 불편하게 끼어 있는 이물감을 포착하여 ‘생활’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헤친다. 사소한 생활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과 반복된 노동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는 청춘, 열정도 미래도 불투명한 ‘나’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현대인의 채워지지 않는 공백과 정체성 결여를 통해 개인에게 주어진 생활문제를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환기한다. 그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선뜻 긍정할 수 없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서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정도正道를 비껴난 인물들을 통해 삶의 다른 면을 인지하게 한다. 그는 지나칠 수도 있는 “생활”의 틈을 포착하여 우리 일상의 지형을 새로 그린다.
닭털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시민의 압박
오만한 “좋은 사람들”
왕웨이롄은 도시인의 실루엣을 소설에 담아낸다. 그의 소설은 변함없이 그대로라고 믿었던 것을 새로이 비추며 일상의 구겨진 면면을 펼쳐놓는 시도다. 이런 의미에서 『생활수업』은 미미한 일상의 소재를 통해 현실의 불평등과 균열을 들여다본다. 표제작 「생활수업」에는 설거지를 두고 갈등하는 도시 부부가 등장한다. “설거지”라는 사소한 소재는 소시민들의 일상생활을 경유해 사회 불평등을 드러낸다. 소설은 20년 전 국내에 변역돼 유의미하게 읽힌 류전윈의 『닭털 같은 나날』을 차용하며 온갖 사소한 생활의 압박으로 인해 “닭털을 뛰어넘”지 못하는 소시민의 고통을 포착한다. 그러나 바로 ‘미미한’ 고통이야말로, 생활 속에서 누구나 맞닥뜨리는 사회 불평등의 단면이며 이 소설을 관통하는 “생활”의 본질이다.
반면 「온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은 「생활수업」보다 좀더 구조적이고 직접적이다. 이 소설은 겹겹이 쌓인 다층적인 계급 격차를 통해 인간의 오만함을 드러낸다. 중국의 “고급 지식인”인 장량은 미국인의 투자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피하고자 교외로 이사하기로 결정한다. 장량은 자신의 이삿짐을 옮기는 이삿짐센터 노동자들을 보고 그들의 노동 환경과 노동 강도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노동자들은 은근히 팁을 요구했고 계약과 다르게 비용을 올리기도 했지만 장량은 그들을 동정하며 식사까지 대접한다. 여기서 그는 풍자의 대상이 된다. 장량은 ‘좋은 사람’ 같지만 은연중 지식노동이 육체노동보다 더 의미 있다고 여기며 위계를 짓고 쉽게 동정하는 오만한 인물이다. 지식노동에 종사하는 장량조차 “고통받는” 소시민일지 모르나 그 고통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한 몸부림
잃어버린 꿈과 청춘
삶에 분투할 거리가 없을 때, 인간은 존재 이유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럴수록 삶은 더 아득해지고 생경해진다. 「나를 묶어줘, 나를 옭아매줘」의 남자는 매끄러워진 삶에서 번번이 미끄러진다. 출장이 잦은 그는 문득 호텔 “스탠더드룸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다고 느낀다. “투쟁을 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지만 “영락없는 패장 신세”라고 자신의 삶을 압축한다. 그러다 한 여자를 만나게 되고 그녀는 그의 고민을 듣더니 그의 몸을 밧줄로 묶는다. 도리어 자유의 허망함을 해소하기 위해 밧줄로 물리적 속박과 고통을 만들어 본래의 생존 감각에 천착하는 모습은, 매달릴 곳을 찾는 현대인의 얼굴을 투영한다.
「근거 없는 밤」과 「구름 위, 청춘」은 자아실현을 위해 분투했지만 끝내 좌절된 이의 고독과 허무를 그린 소설이다. 「근거 없는 밤」의 신문기자 둥무는 로봇 기자가 쓴 기사가 흠잡을 데 없을 만큼 발전한 현실을 목격하며 잊어버린 자신의 얼굴을 좇는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 식당으로 간 둥무는 그들의 옆 테이블에 앉은 대학 후배들을 발견한다. 둥무는 그들 중 자신이 젊었을 때 품었던 열정을 연상케 하는 여학생을 발견하곤 집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뒤를 뒤따른다. 그는 그녀를 뒤따르면서 그녀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본인의 삶을 회고하기 시작한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저울질은 늘 실패로 귀결된다. 「구름 위, 청춘」에는 글을 쓰는 예술가가 되고 싶은 화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생계의 문제가 닥쳐오고 하루하루 되풀이되는 자잘하고 번거로운 반복 노동에서 점차 잃어가는 자아를, 구름 위에 가려져 사라져 버린 청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환상을 경유하는 주변화된 인물
「어둠 속의 상어」는 『책물고기』와 이어지는 환상의 계보 위에 놓인다. 「어둠 속의 상어」는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외된 인물의 이야기이다. 혈연으로 이어진 역사에서 탄생한 지하실은 4대의 은신처가 되어준다. 앞서 가족이 그러했듯 화자도 어둠 속 지하실에서 “상어”를 돌보며 상어와 이야기를 하고 교감한다. 여기서 상어는 실재하는 생명이 아니라 화자가 만들어낸 상징적 허구다. 지하실이라는 장소성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으로, 도시 속 소외를 보여주며 이곳에서 역사 속 인물들이 상어와 소통했다는 점에서 인간의 발전시켜온 문명에 대한 야만성을 드러낸다.
왕웨이롄이 그려내는 인물과 사건 들은 대단하거나 장황하지 않다. 서늘하고 침착한 문체로 현대사회의 균열을 응시하고 소설로 그려내는 데 뛰어난 작가다. 동시대성을 담지한 그의 소설은 철학적인 사유와 문체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이야기한다. 또한 그의 소설은 대개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며 화자의 이름을 명명하지 않는다. 화자의 이름을 비워둠으로써 현대인의 보편적 고립과 갈등을 담아내며 그 자리에 수많은 ‘나’를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