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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를 주운 겨울 상세페이지

늑대를 주운 겨울작품 소개

<늑대를 주운 겨울> <키워드>
판타지물, 서양풍, 시대물, 인외존재

얼음으로 뒤덮인 잿빛 도시를 떠도는 음유시인 루벤
그리고 그에게 주워진 늑대인간 아일.

“죽으려고 누워 있었던 건데 왜 주워 온 거야.”
“네가 살려 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으니까.”

떠돌고 쫓기는 삶에 지친 한 사람과 한 마리가
서로에게 기대며 온전해져 가는 이야기.

“누군가와 함께 다닐 준비가 되질 않았어. 좀 기다려 줘.”
“그럼 기다릴게.”
“뭐?”
“네가 날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그냥 조용히 없는 것처럼 따라다니기만 할게.”

어느새 늑대로 변한 아일이 웅크린 내 품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러자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또륵 떨어져 내렸다.
급히 훔쳐 내려 했으나, 그보다 더 빨리 아일이 내 위로 올라와 눈가를 부드러운 혀로 핥았다.

“루벤, 안아 줄 테니까 오늘은 그냥 편히 잠들어.”


출판사 서평

〈 본문 중에서 〉

(1)개를 줍다
겨울날의 어느 고요한 거리, 어느 이름 모를 술집 앞에서 나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늘어진 채로 얼어 죽어 가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앞엔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커다란 회색 개가 길게 누워 있다. 녀석의 몸에서 새어 나온 따뜻한 선혈이 갓 내려앉은 새하얀 눈송이를 붉게 물들였다. 저 정도 출혈이라면 살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저승으로 함께 갈 길동무가 생겼으니 그냥 이대로 죽어 버리자, 눈을 감아 버리자, 그렇게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녀석이 살고 싶다는 듯이 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코에서 뿌연 숨결을 뿜어내는 것을 보자 어쩐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잠들려는 순간에 누군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면, 어느 누가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나는 딱딱하게 굳은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웠다. 그러곤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내가 자신을 만질 때까지 노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저 짐승의 눈빛일 뿐인데 나는 그 안에서 언어로 다 표현 못 할 복잡한 감정을 읽었다. 슬픔, 애절함, 고통, 비통함, 애원 등등. 만약 이 차가운 밤을 넘겨 살아남을 수 있다면 녀석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우선 손을 뻗어 녀석의 매끈한 회색 털 위에 쌓인 눈을 털어 냈다. 녀석은 내 손이 자신의 털가죽에 닿을 때마다 크르르 위협적으로 울다가 터는 작업을 두세 번 반복하자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저 반항할 힘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냥 그 반응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내 손길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녀석을 들어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무거웠다. 구부리고 앉아 허리에 힘을 주며 다시 힘껏 들어 올리자 눈이 후두둑 떨어지며 녀석이 들렸다. 그러고 나서야 무거운 이유를 알았다. 눈 속에 파묻혀 있어서 몰랐는데 들어 올리고 보니 크기가 상당했다. 내 키가 평균보다 살짝 큰 정도인데, 녀석을 들어 올렸을 때 높이가 내 가슴까지 왔으니 개치곤 상당히 파격적인 크기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런 녀석을 어깨에 이고 눈길을 걸었다. 가는 길에 주머니에 몇 개 들어 있지 않은 동전으로 성냥을 샀다. 언 손을 호호 불어 녹이던 성냥팔이 소녀가 상냥하게 물었다.
“사냥꾼님, 늑대를 잡으셨군요?”
“늑대? 이건 개고 난 사냥꾼이 아니야. 음유시인이란다.”
그리 말하자 숨이 내 어깨에 얹어진 개가 크르릉 하고 가볍게 울었다. 마치 내 말에 항의라도 하는 듯했다.
소녀는 시체인 줄 알았던 짐승이 소리를 내자 놀란 것인지 급하게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한참 지나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으니 다시 슬금슬금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래도 좋으시겠어요. 가죽이 비싸 보여요.”
그러자 녀석은 이번에도 크릉 하며 울었다. 녀석의 목 울림으로 인해 어깨에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아이가 겁먹지 않도록 입꼬리를 살짝 끌어당겨 웃으며 말했다.
“본인 앞에선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
도축하게 되면 비계라도 좋으니 고기를 조금만 나눠 달라는 소녀를 뒤로하고 근처 여관 마구간으로 향했다. 개는 일단 밖에 내려놓고 여관 안에 들어서서 주인장에게 1브론즈를 넘기자 그는 내게 마구간에서 자도 좋다고 허락했다.
마구간 안에는 돈 많은 여행자들이 타고 다니는 혈통 좋은, 아마 나보다 비쌀 말들이 묶여 있었다. 그 사이로 개를 들쳐 업고 들어가자 말들이 발광하며 날뛰었다. 지푸라기가 말발굽에 치여 사방으로 흩어지고 고삐를 묶어 놓은 기둥이 흔들거렸다. 이러다간 쫓겨날 판이었다.
다시 추운 곳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곤란해하던 찰나 녀석이 내 어깨 위에서 다시 목을 울리며 울었다. 우우― 하고 낮고, 길게 하울링 했다. 그러자 다행히 말의 발광이 잦아들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녀석을 따뜻해 보이는 지푸라기 위에 내려놓고 문을 닫았다. 바람이 차단되어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따뜻해졌다. 생존이 보장되자 우린 다시 서로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많이 다쳤네.”
뭐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개에게 말을 걸었다. 메마른 입술이 갈라지며 피가 터졌다.
“치료해 줄게.”
나는 조심스레 녀석의 목덜미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까 눈을 치워 낼 때 가만히 있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녀석은 갑자기 내 손을 물어뜯을 듯 달려들었다.
내 재산과 다름없는 손가락이 뜯겨 나갈 뻔했다. 하마터면 길거리 예술가에서 길거리 거지가 될 뻔한 것이다. 과장 없이 녀석의 송곳니는 내 손가락 두 개 합친 것보다 굵고, 길었고, 날카로웠다.
“자존심이 상해? 아니면 나를 못 믿겠어?”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는데도 나는 계속 물었다. 남이 보면 영락없는 미친놈이겠지만 말을 건 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녀석이 내 말을 어쩐지 알아듣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도울 수 없어. 요즘 먹고살려고 필사적이라 사나운 유기견을 돌봐 줄 정도로 한가하지 않거든.”
먹고살려고 필사적이긴커녕 아까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내던지려고 결심했던 주제에 나는 뻔뻔하게도 그렇게 거짓말했다. 녀석은 코웃음인지 아니면 그냥 콧김인지를 흥, 하고 내뱉으며 내게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나도 더 이상 녀석의 상처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녀석의 엉덩이 쪽에 기대 앉아 체온을 조금 나눠 받으며 잠을 청했다. 녀석은 그것조차 싫었는지 복슬복슬한 꼬리털로 내 얼굴을 두세 번 때렸지만 무시했다.
그러나 오래 잠들지 못하고 어두운 새벽에 도로 일어나고 말았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낑낑대는 소리가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 댄 탓이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워낙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듬더듬 벽을 짚고 가서 마구간 한편에 걸려 있는 등에 아까 산 성냥으로 불을 붙이자 내부가 조금 밝아졌다.
어둠이 가시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찾아다닌 것은 아까 들쳐 업고 온 개였다. 녀석은 괴롭게 낑낑대고 있었다.
“왜 그래?”
녀석은 아까처럼 공격적으로 이를 드러내지 않고 숨만 힘겹게 헐떡였다. 잘 보니 눕혀 놓은 짚단이 온통 녀석의 피로 물들어 있었다.
녀석은 여전히 손대지 말라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눈빛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손을 뻗었다.
복부 쪽의 털을 헤집자 길게 물어뜯긴 상처가 있었다. 꿰매지 않으면 회복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의 상처였다.
나는 급하게 여관에 들어가서 여급에게 실과 바늘, 독한 술 한 잔을 내어 달라 부탁했다. 자다 깬 여급은 조금 싫은 티를 내다가 내 절박한 표정을 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들고 나는 재빨리 마구간으로 돌아왔다.
나를 다시 보자 녀석은 누워 있지 않고 비척비척 일어났다. 그러곤 위협을 가하듯 이를 드러냈다. 그러나 두렵진 않았다. 저것이 죽음을 앞둔 짐승의 마지막 발버둥임을 알기 때문이다.
“착하지. 가만있어.”
녀석은 좀처럼 긴장을 풀지 않았다. 콧잔등에 잔득 주름을 잡으며 이를 드러냈고, 도발적으로 내 눈을 마주보고 있었다. 잔뜩 긴장감이 감도는 공기는 피부를 찌를 듯 따갑게 느껴졌다.
“구해 주려고 그러는 거야. 진짜야.”
개랑 대화하는 내 모습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녀석은 아까보다 더 험악하게 나를 노려봤다. 당장 달려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저런 반응을 보니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둘 걸 하고 후회가 됐다. 그랬다면 적어도 고기든 가죽이든 나왔을 텐데 말이다.
제대로 열이 받은 것처럼 한 차례 낮게 으르렁거린 녀석은 내게 한 걸음 내딛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녀석은 힘없이 옆으로 픽 쓰러지더니 물 밖에 나온 고기처럼 숨을 꼴딱였다.
나는 안심하고 녀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내가 자신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울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곤 안쓰럽게도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포기라도 해 버린 듯했다.
그 뒤엔 녀석의 몸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었다. 일단 털을 헤집고 감염을 막기 위해 물린 상처들을 불로 지졌다. 녀석은 다시 사납게 날뛰었으나 나를 공격하지는 않았다. 위쪽을 지진 후엔 복부 쪽의 길게 난 상처를 불에 달군 바늘로 꿰기 시작했다. 마지막엔 술을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천 인형을 수선한 듯한 엉터리 바느질 실력이었지만 꽤 괜찮은 치료법이란 건 증명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수없이 몸을 수선해 온 내가 멀쩡히 살아 있으니 나 자신이 산 증인인 셈이었다.
이마 위로 흐르는 식은땀을 옷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네가 내일까지 살아 있으면 내가 살린 거야.”
완전히 지쳐 버려서 몸을 짚단 위로 던지듯 누웠다. 문틈으로 어스름한 빛이 비집고 들어왔다. 치료하는 동안 날이 밝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제라도 잠들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오래 감고 있진 못했다.
“죽으려고 누워 있었던 건데 왜 주워 온 거야.”
십대 후반 소년? 청년? 그 정도 연령대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갑자기 들려왔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누군가 숨어 있던 건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사람 그림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있는 거라곤 대답을 기다리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 회색 개뿐.
“방금 네가 말했어?”


저자 프로필

펜화

2016.07.2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여운을 남기고 싶은 작가


저자 소개

펜화

주로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소설을 좋아하는 동심 글쟁이.

목차

프롤로그
(1)개를 줍다
(2)개를 버리다
(3)침묵하는 개
(4)음유시인 수집광
(5)개를 들인다는 것은……
에필로그
외전-음유시인을 주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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