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이 나를 숨 쉬게 해.
모든 것을 가졌지만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채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살던 예린.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시드니의 황폐한 사막에서 생명력 넘치는 이준을 만나게 된다. 오만방자하고 날을 잔뜩 세운 자신의 겉모습에 속지 않는 이준에게 흥미를 느낀 예린은 그를 자신의 발밑에 두고 싶었다. 그러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의 행동에 예린은 점점 안달하게 되는데…….
▶잠깐 맛보기
“죽어.”
“예쁜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데.”
“죽어! 죽어! 죽어!”
이준이 표정을 바꿔 차게 식은 눈으로 예린의 눈을 직시했다. 조금 전 룸에서 보았던 초점 없이 허공을 떠돌던 공허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와 대조적인 분노로 일렁이는 예린의 눈이 이준을 집어삼킬 듯 강렬하게 마주했다.
틀렸어. 죽음을 입에 담기엔 넌 삶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그때나 지금이나.
이준이 볼을 늘어트리던 손을 펴 붉게 물든 예린의 뺨을 감쌌다. 닿을 듯 말 듯 예린의 입술 위에 제 입술을 올려 두고 이준이 목소리를 낮춰 부드럽게 말했다.
“차라리 살고 싶다고 말해. 살려 달라고, 살고 싶다고 그때처럼 부탁해 봐. 그게 더 진짜 같으니까.”
지그시 그녀를 바라보던 이준이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 망설임 없이 비상구를 빠져나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또, 버려졌다. 놈에게 벌써 두 번째 버림을 받았다. 너 따위가 뭔데, 날 버려.
처음 볼 때부터 재수가 없었다. 다시 보니 더 재수가 없다.
“미친 놈. 왜 다시 나타났어! 왜!”
메말라 사라졌던 눈물이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더럽게 재수 없는 놈.”
살고 싶다고. 살아야겠다고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놈을 본 그날. 그 사막에 홀로 버려졌을 때,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삶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동안 죽고 싶다고 몸부림쳤던 모든 것들이 그저 투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그래서 놈이 더 미치게 짜증스러웠다. 그녀가 가슴 깊은 곳에 꼭꼭 숨겨 두었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게 만든 그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 놈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