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버킷리스트, 서유럽 3개국을 가다
우리는 살면서 한번쯤은 유럽여행을 꿈꾼다. 이 책의 저자는 아내와 함께 그동안 꿈꿔왔던 서유럽 3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광과 저자의 솔직하고 담담한 여정이 그려진다. 대다수의 유럽여행기가 단순히 유적지 설명에 치중하지만 이 책은 유적지에 가서 ‘보는 것’에 치우치지 않고 어떻게 감상하고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함께 전달한다. 저자의 유쾌한 생각도 엿볼 수 있고 직접 찍은 사진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읽는 맛을 더한다. 유럽여행의 여정과 감상을 솔직하게 풀어놓음으로써 독자는 직접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서유럽의 매혹적인 풍경과 함께 이들의 좌충우돌 유럽여행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누구나 똑같은 일상생활 속에서 새로운 일탈을 꿈꾼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일탈은 여행으로 그 중에서도 낭만이 흐르는 유럽으로 훌쩍 떠나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20대 때는 시간은 많지만 돈이 없어서 선뜻 여행을 떠나지 못하다가, 30대가 되면서부터는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떠나지 못한다. 이처럼 현실의 제약에 갇혀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 책을 통해 유럽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유명한 곳을 여러 군데 가서 겉핥기식으로 다니는 여행보다는 조용하고 여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의 첫 장을 펼쳐보자.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떠난 유럽여행기가 일상에 지친 당신의 마음을 힐링해줄 것이다. 유럽여행의 주인공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지금 바로 서유럽 3개국의 매력에 흠뻑 취해보자.
■ 책 속으로
앞의 모니터를 보니 비행기는 두바이를 지나고 있었다. 낮이라면 그 모습을 하늘에서 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현지시각으로 새벽 4시 15분이었다. 도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바닷가에 위치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생각하니 수에즈운하가 생각나고 수에즈운하를 생각하니 초등학생 때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의 내용은 수에즈운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었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곧 착륙할 모양이었다. 2월 8일 금요일 아침은 중동에서 맞이하게 될 것 같았다. 서울은 이미 아침을 지나 낮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 연휴에 많은 사람들은 들떠 있을 것이다. 드디어 도하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조종사가 베테랑인 것 같았다. 도하의 대합실에 앉아 있었더니 더웠다. 파카를 벗어 의자에 걸쳐 놓았다. 무심코 앞을 보았더니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은 젊은이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_ 본문 중에서
베르사유궁전을 나오니 넓은 정원이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끝까지 걸어가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빠듯한 시간 때문에 가까운 곳만 산책했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도 무척 컸다. 베르사유궁전 앞쪽에는 마차박물관이 있었다. 말발굽 모양으로 된 건물이다. 이 건물을 예전에 마구간이던 곳이다. 베르사유궁전으로 온 많은 이들을 태우고 왔던 말들의 호텔이었던 셈이다. 버스를 타기 전 잡상인이 와서 에펠탑 열쇠고리를 사라고 했다. 직원들에게 선물하기에는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잡상인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파리에도 이런 것을 경험하니 색달랐다. 잡상인은 까만 피부색의 흑인이다. 아프리카인인 것 같았다. 일자리를 구하러 파리로 왔을 것이고 호구지책으로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도 아프리카인이 술집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것을 봤다. 글로벌 시대라서 선진국에 돈 벌로 오는 아프리카인들이 많은 것 같았다. _ 본문 중에서
첫 코스는 개선문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의 가이드 책을 사보면서 그 규모를 알게 되었다. 매우 놀라운 규모였다. 그 놀라운 규모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했다. 개선문이 바로 그런 곳이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렸다. 전날 가이드가 파리는 비가 와도 폭우 같이 내리는 경우가 없고 그냥 부슬부슬 온다고 했는데 오늘 아침이 바로 그렇다. 우산을 쓰기도 애매한 그런 비다. 혹시 몰라서 우산은 가지고 내렸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을 위한 문이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치렀던 전쟁들이 벽면에 기록되어 있다. 순간 ‘나폴레옹이 패배한 워털루 전쟁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가이드가 답을 주었다. 나폴레옹이 영국의 웰링턴에게 패한 워털루 전쟁은 없단다. 벽면에는 많은 장군들의 이름도 기록되어 있단다. 바닥에는 프랑스가 참가한 전쟁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6·25 전쟁도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_ 본문 중에서
자동차로 샹젤리제 거리를 통해서 콩코르드광장으로 향했다. 콩코르드광장으로 가는 길에 엘리제 궁이 보였다. ‘엘리제’는 ‘낙원’이라는 뜻으로 예전에는 궁이었는데 지금은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다. 엘리제 구에서 근무하는 프랑스 대통령은 건물 자체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콩코르드광장의 가운데는 오벨리스크가 있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상이 2개 있는데 그 가운데에 기요틴을 설치해 프랑스 혁명 당시 많은 귀족들을 처형했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기요틴의 희생양이었다. 그래서 콩코르드광장은 ‘피를 뿌리는 광장’이라고 불렸다. 지금은 화합을 뜻하는 ‘콩코르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광장의 주위에는 8개의 석상이 있다. 프랑스의 8대 도시들을 지키는 여신들이다. 센 강을 끼고 보이는 건물이 매우 멋있었다. 마치 상해의 외탄을 보는 것 같았다. 콩코르드광장에서 법원으로 향하는 다리는 콩코르드다리다. _ 본문 중에서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은 이곳에도 있었다. 설명을 들은 대로 한 명의 여자만 옷 색깔이 달랐다. 그림 설명을 들으면서 당시 교황 비오 6세가 어디에 앉아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실제로는 참석하지 않은 나폴레옹의 어머니와 나폴레옹의 형제들, 누이들도 어디 있는지 알게 되었다. 조세핀의 딸과 그 딸의 손을 잡고 있는 나폴레옹 3세의 어렸을 적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내가 각별히 좋아하는 나폴레옹의 그림이라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모나리자의 그림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모나리자의 그림은 유리로 보호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스티커도 붙어 있었다. 소매치기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모나리자의 그림 근처라고 한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유감스럽게도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오르세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는 안내판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오면서 유리 피라미드의 꼭짓점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점심은 달팽이 요리를 먹었다. _ 본문 중에서
센 강에서 봤던 에펠탑을 직접 오르기로 했다. 일단 에펠탑을 올라가려면 오래 기다려야 했다. 표를 끊는 데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에펠탑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도 기다려야 했다. 몽마르트 언덕이 100m가 조금 넘는데 그 언덕이 보이는 걸로 봐서 에펠탑 전망대의 높이는 최소한 100m는 넘을 것 같았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에펠탑의 높이는 꼭대기의 텔레비전 안테나를 포함하면 320m 정도였다. 엘리베이터가 어떻게 이동하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사선으로, 그다음에는 직선으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시내에서 고층건물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모두 7~8층 규모의 옛날 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파리는 단독주택이 별로 없다고 했다. 대부분 주상복합인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한쪽을 보니 샹드마르스 공원이 보였다. 반대쪽에는 샤요 궁이 두 팔을 벌린 듯 있었다. 아내는 노트르담대성당을 가보지 못해서 아쉬워했다. 아내와 파리에 올 날이 앞으로 있을까? _ 본문 중에서
밀라노에서의 첫 번째 목적지는 두오모성당이었다. ‘두오모’는 주교가 있는 대성당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역마다 두오모성당이 있다. 그렇다면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밀라노 두오모성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고 밀라노의 두오모를 처음 알았다. 일본영화 특유의 잔잔함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 두 주인공의 답답한 행동에 내 마음도 답답해졌다. 두오모성당은 낮에 봤으면 좋았을 뻔했다. 그리고 성당의 위에 올라갔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다시 알아보니 내가 착각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온 두오모는 피렌체의 두오모였다. 밀라노의 두오모성당에는 전망대도 없는 곳이었다. 두오모성당의 화려함은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성당의 외관이 화려하면 내부는 소박하고, 반대로 외관이 소박하면 내부는 화려한 편이다. 하지만 두오모성당은 외관과 내부 모두 화려하다. 5개의 문 중 하나의 문은 일 년에 한 번 교황께서 오실 때만 열린다. _ 본문 중에서
베네치아는 외부의 적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일종의 피난처 구실을 한 곳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난처였지만 이후에는 전란이 자주 발생하자 아예 주거지의 역할로 바뀌었다. 갯벌에 나무를 박고 그 위에 돌을 얹어 건물을 올리고 살았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소금을 만들어 팔았고 이것이 제법 돈이 된 모양이다. 사람들이 몰려와서 도시는 확장되고 그래서 오늘날의 베네치아가 되었다. 11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라서 모든 이동수단은 배다. 버스도 배, 택시도 배. 유일하게 이용할 수 있는 차는 유모차란다. 그래서 웃었다. 베네치아에 들어갈 땐 우리가 탄 관광버스는 체크포인트에서 입장료를 내야 했다. 베네치아뿐만 아니라 피렌체도 그렇고 로마도 그렇다. 가격도 꽤 세다. 20~30만 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이 제도를 처음 만들 때 주변 국가에서 뭐라고 했는데도 이탈리아는 그냥 강행했다. _ 본문 중에서
골목을 거쳐 드디어 마르코광장에 도착했다. 마르코성당의 기둥은 색깔이 제각각이었다. 십자군 전쟁 때 전리품으로 가져온 것으로 기둥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르코광장에 있는 300년 된 카페에서 여유롭게 앉아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었지만 그럴 엄두도 못 낼 추위와 폭설이었다. 신발과 양말이 전부 젖었다. 그나마 등산화를 신어서 다행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운동화를 신을까 했는데 더 힘들 뻔했다. 다음에 여행을 가게 되면 신발을 하나 더 챙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르코성당은 산마르코, 우리말로 마가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성당 이름에 성인의 이름을 붙이려면 그분의 유해를 모셔야 한다. 성베드로성당은 베드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고 산마르코성당은 마르코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원래 마르코 성인의 유해는 이집트에 있었다. 이것을 베네치아 상인들이 몰래 빼돌렸는데 이슬람 병사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유해 위에 이슬람에서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얹어 위장하는 수법으로 무사히 베네치아로 모셔왔다. _ 본문 중에서
두오모성당을 나와 시뇨리아광장으로 향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의 집도 보고 예전에 오피스 건물로 사용한 건물도 보였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을 많이 행사한 가문이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왕가, 프랑스의 부르봉왕가와 함께 유럽의 3대 가문이다. 메디치 가문은 교황청의 자금을 관리함으로써 그 부를 키워나갔고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가문이 되었다. 메디치 가문이 예전에 살았다는 건물의 1층은 개방되어 있었다. 2층으로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이곳의 2층에는 양쪽 벽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한쪽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이고 다른 한쪽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은 생동감이 넘치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것은 섬세하다. 2층도 다음에 피렌체에 가게 되면 꼭 가볼 것이다. 다비드상도 있었다. 다비드상은 미켈란젤로가 26세 때 만든 작품이다. 혈관이나 근육의 표현이 풍부해 보였다. 오피스 건물 쪽으로 난 길을 통해 베키오다리를 봤다. _ 본문 중에서
우리가 처음 간 곳은 벨베데레궁전 뜰이다. 벨베데레궁전은 교황 클레멘스 9세의 개인 정원이다. 가운데는 분수가 있고 주위에 각종 조각상이 놓여 있다. 그 중에서 라오콘 상은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고 한다. 돌로 만든 조각상이 근육과 핏줄의 모양까지 그대로 드러났다. 라오콘 상은 당시 유럽에 획기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눈길이 가는 것은 다른 조각상이었다. 정력을 상징하는 신이었는데 남성의 성기가 발기된 채로 표현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조각상을 많이 보았지만 조금은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물론 노골적이지 않게 살짝 가리는 센스를 발휘해두었다. 우리는 피오 클레멘티노 전시관으로 향했다. 첫 번째 방은 동물의 방이다. 이탈리아 건국신화에 나오는 늑대가 전시되어 있다. 두 번째 방은 뮤즈의 방으로 토르소가 있다. 토르소는 머리도 없고 다리도 없다. 몸통만 있는 토르소가 유명한 이유는 인체를 정확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지난번에 의사들과 이 자리에 온 적이 있었는데 모두들 놀랐다고 했다. _ 본문 중에서
전차경기장에서 다시 차를 타고 포로 로마노로 향했다. 포로 로마노는 로마인의 광장이란 뜻이다. 오늘날의 포럼이 ‘포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곳을 본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유럽여행에서 가장 기억나는 곳을 꼽으라면 나는 포로 로마노를 꼽겠다. 물론 많은 건물이 파괴되는 바람에 본래의 모습을 유지한 것이 많지 않지만 이곳을 보는 순간 옛날의 로마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시저가 죽은 원로원 건물에서는 브루투스가 “시저를 사랑했지만 로마를 더 사랑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개선문에는 승리한 로마 병사가 전리품을 가득 싣고 의기양양하게 행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로마에 왔다는 것이 정말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우리 집에 걸어둬야겠다. 캄피돌리오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가운데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상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캄피돌리오광장에서 내려가는 길이 우리 눈에는 경사진 길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계단이라는 점이다. _ 본문 중에서
다음은 콜로세움이다. 티투스 황제가 전쟁으로 노예 10만 명을 데려와 5년 동안 지은 운동장이다. 건물은 길이 188m, 폭 154m의 크기다. 이곳에서 수많은 이벤트들이 펼쳐졌다. 나무를 심고 짐승들을 풀어 검투사와 대결을 하거나 검투사들끼리 대결을 펼쳤다. 로마인들은 결투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제일 압권은 이곳에 물을 채워 모의 해상훈련을 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나중에 설명을 들었는데 해상훈련은 콜로세움이 아닌 다른 곳에서 했다고 한다. 정확히 어떤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로마인이야기』를 다시 한 번 차분히 읽어볼 생각이다. 하지만 어디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땅에서 물을 받아 해상훈련을 했다는 그 자체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현재의 콜로세움은 온전하지 않다. 절반 이상이 헐어 있다. 한때 베드로성당을 비롯해 성당을 짓는 붐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_ 본문 중에서
오르비에토는 고대 에트루리아인이 만든 도시다. 로마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에트루리아인들은 마치 선지자적인 느낌을 준다. 로마인들에게 지적인 문화를 알려준 그런 느낌이다. 『로마인이야기』 1권에 에트루리아 이야기가 나온다. 로마가 건국될 당시 이탈리아의 북쪽은 에트루리아가, 남쪽은 그리스의 영향권이었다. 두 민족의 특성상 에트루리아는 방어에 적합한 높은 지역에 도시를 건설하고 그리스는 해변에 도시를 건설했다. 로마가 건국될 당시 에트루리아는 막강한 세력을 가졌지만 이후 로마에 바통을 넘기고 만다. 오르비에토는 ‘느림의 도시’다. 지난번 남도의 한 지역에서도 슬로우시티를 추진했다. 아마 오르비에토를 딴 모양이다. 우리들은 늘 ‘빨리빨리’만을 강조하며 살아왔다. 그런 우리들에게 ‘느림’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는 로마에서 10년 넘게 살았다고 했다. 이탈리아의 가이드들 대부분 성악을 공부하러 왔다가 한국에 일자리가 생기지 않아 이곳에 눌러 앉는 경우가 많다. _ 본문 중에서
성당에 들어갔는데 피에 젖은 신부의 미사복이 안 보였다. 한 바퀴를 쭉 돌고 다시 한 바퀴를 돌아도 없다. 중앙에 안내하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보니 직접 안내를 해주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피가 잔뜩 묻어 있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묻어 있지 않았다. 그냥 희미하게 묻어 있는 미사복을 유리관 안에 진열해 놓았다. 성당을 나와 골목을 배회했다. 중세시대 그대로의 골목이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가게에서 쇼핑도 하고 길가에 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음식도 먹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려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내려 케이블카를 타기 전 부근에 있는 성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매우 멋졌다. 이곳은 예전에 적의 침략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던 요새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권이 확보되어야 했다. 그것이 지금은 훌륭한 경치를 볼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탈리아 가이드가 버스에서 내리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행은 내 인생에 새로운 씨앗을 뿌린다.” _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