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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론 상세페이지

유한계급론작품 소개

<유한계급론> 어째서 사람들은 부를 과시하도록 진화했는가

과시적 소비와 여가를 일삼는 유한계급의 본질을
역사적 · 진화론적으로 파헤친 문제적 텍스트의 귀환

오마카세, 파인 다이닝, 호캉스…. ‘명품을 소비하는 청년 세대’와 관련된 말이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주머니 사정 빤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리해서 지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과, SNS를 통해 자기를 전시하는 게 당연한 문화 속에서 나름 합리적인 소비라는 입장이 엇갈린다. 경제성장의 속도가 갈수록 주춤해지고 사회 전반적으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해지는 지금, 오마카세 같은 ‘과시적 소비’가 부상하고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자신의 재정적 여력을 꼼꼼히 따지면서도 비싼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기꺼이 돈을 쓸까? 그저 유명인을 따라 하는 게 일상이 된 사회의 일시적 현상인 걸까?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쓴 『유한계급론』은 1899년 출간 이래 자본주의 사회를 풍자하는 우화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많은 이가 부자들의 과시적 소비 행태를 거리낌 없이 묘사한 베블런의 글에 매료되었고, 이 책을 부유한 계급의 약탈적인 행태와 대기업의 횡포, 부와 소득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에 돋보기를 댄 ‘소비의 사회학’으로 읽었다. 하지만 베블런이 주목한 것은 인간이 어떤 경로로 특정한 제도를 형성하고 또 제도의 진화 속에서 자신들의 본성을 발현하거나 억제해왔느냐 하는 점이었다. 『유한계급론』의 부제가 ‘제도 진화의 경제적 연구’인 이유다.

그런 점에서 『유한계급론』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미국 사회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베블런은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왜 유한계급처럼 약탈적이고 기생적인 계급이 출현하고, 많은 사람이 계급 격차에도 불구하고 유한계급의 소비 행태인 과시적 소비를 모방하는지 역사적이고 진화론적으로 면밀하게 분석했기 때문이다. 휴머니스트에서 새로 출간한 『유한계급론』은 대안적 경제를 꾸준히 고민해온 경제학자 박종현 교수가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번역하고 『유한계급론』에 대한 최신의 연구를 풍부한 역주와 해설에 반영해 재탄생한 것이다. 독자들은 오늘날의 소비 행태와 인간 본성을 재기 넘치게 파헤친 이 책을 통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통찰력을 발휘하는 고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출판사 서평

1. 지금까지 우리는 베블런을 어떻게 이해해왔는가
- ‘시대의 이방인’이라는 오해를 뛰어넘자 드러난 베블런의 진면목

1857년 노르웨이 이민자들의 자녀로 태어난 소스타인 베블런은 오랫동안 ‘시대의 이방인’이자 ‘올림푸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초연함’을 고수하는 오만한 천재로 알려져왔다. 《파워 엘리트》를 쓴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베블런을 전형적인 외부자(outsider)로, 저명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기득권에 맞서는 투박한 개척자로 해석했다. 베블런의 첫 책이자 그에게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유한계급론》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오랫동안 읽혀왔다. 미국 사회를 날카롭게 묘사한 비평서이자 우화로, 또 한계효용학파가 주도하는 주류경제학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사회학적·인류학적 접근을 모색한 책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하지만 베블런을 이단적인 학자에 머무르게 했던 세간의 인식과 달리, 베블런의 실제 삶은 훨씬 더 학계의 중심에 놓여있었다. 칼턴칼리지와 존스홉킨스대학, 예일대학, 코넬대학 등 여러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최고의 학자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베블런은 철학과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을 두루 익혔고, 미국 최고의 연구 중심 대학인 시카고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유명 저널에 이론적 작업과 실증적 연구를 여러 편 올렸다. 1906년 봄 베블런이 스탠포드대학 경제사회과학부 교수 후보에 올랐을 때 한계효용학파 경제학자인 앨린 앨봇 영이 총장에게 한 “미국의 경제학자들 중 학문의 폭과 분석의 섬세함에서 베블런보다 뛰어난 사람은 없다.”라는 보고가 베블런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유한계급론》을 미국 사회에 대한 우화나 ‘소비의 사회학’을 다룬 저작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게 일면적이다. 베블런은 당대의 미국, 즉 남북전쟁 이후의 미국에서 야만 문화로의 회귀를 읽었다. 사람들이 전쟁에 익숙해지면서 약탈적 사고 습관이 부활했고, 부족주의가 연대의식을 대체했으며, 모두에게 유용성을 제공하는 것보다 남들의 시샘을 불러일으키는 행태가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한계급론》은 야만 문화의 성행과 대기업의 횡포, 부와 소득의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이해해보려는 경제학적 작업이었다.

“발전 단계가 낮은 사회의 관습과 문화적 특색이 보여주는 증거에 따르면, 유한계급 제도는 원시적인 미개 단계에서 야만 단계로 점차 이행하는 과정에서, 좀 더 정확히는 평화로운 생활 습관에서 항상 호전적인 생활 습관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출현했다. (…) 유한계급 제도는 가치 있는 활동과 가치 없는 활동을 구별하던 앞선 단계의 차별에 따른 결과물이다. 이러한 오래된 구별에 의하면 공훈(功勳, exploit)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일은 가치 있는 활동이 되고, 공훈의 요소가 전혀 없는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일은 가치 없는 활동이 된다.”
- 1장 〈서론〉, 21~22쪽

“베블런이 경제학자로 성장한 시기는 근대 미국의 형성기였다. 북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대규모로 유입되었고 중서부 목초지로의 이주가 본격화되었으며, 산업화·기계화·도시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또한 자본주의적 기업의 법인적 형태가 본격화되고, 대량 소비를 자극하는 도구가 출현하는 등 미국의 제도적 인프라가 근본적인 변형을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데 베블런에 따르면, 미국에서 남북전쟁 이후의 시기는 야만 문화로의 회귀 현상이 발생한 시대다. 사람들이 전쟁에 익숙해지면서 약탈적 사고 습관이 다시 등장했고, 부족주의가 연대의식을 대체했으며, 모두에게 일상의 유용성을 제공하려는 충동을 대신해 시샘을 유발하는 구별의 감각이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1870년대부터 준약탈적 사업 습관을 선호하는 정서, 신분에 대한 강조, 전반적인 보수주의의 물결이 퍼져 나갔고, 1880년대에는 이러한 물결이 더욱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베블런은 이러한 변화를 세기말에 출간된 《유한계급론》 속에 반영했다.”
- 〈옮긴이 해제〉, 457~458쪽

2. 베블런에게 《유한계급론》은 어떤 책이었는가
- ‘제도 진화의 경제적 연구’라는 야심 찬 기획의 실현

《유한계급론》은 보통 제목으로만 알려져있다. 하지만 원래 이 책에는 ‘제도 진화의 경제적 연구(An Economic Study in the Evolution of Institutions)’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베블런이 오랜 숙고 끝에 붙인 이 문구는 책의 주제를 명확하게 요약한다. ‘제도 진화의 경제적 연구’는 인간의 경제 제도가 어떻게 출현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는지 파악하는 것에 《유한계급론》의 목적이 있음을 드러낸다. 여기서 베블런은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왜 유한계급이 출현하고 과시적 소비가 나타나는지를 진화론적으로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베블런에 따르면, 유한계급은 폭력과 기만으로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음으로써 지배적인 위치에 오른 야만인이 산업사회에서 진화한 결과다. 그리고 인간의 자기중심적이고 약탈적인 본성에 따라 경쟁심과 호전성, 자기과시 본능을 발휘하는 유한계급의 대척점에는 인간의 집단 고려적이고 평화적인 본성에 따라 부모 성향, 장인 본능, 호기심 본능을 발휘하는 산업 계급이 있다.

베블런의 논의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들 계급을 도덕적으로 평가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기중심적·약탈적 본성과 집단 고려적·평화적 본성 모두 인간에게 내재해있고, 각각의 본성에 따른 여러 본능 중에서 장인 본능은 약탈적 본성과 평화적 본성 모두 나름의 방식대로 키워 내기 때문이다. 베블런은 평화로운 미개 시대를 상찬하고 폭력적인 야만 시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분석을 대신하지 않는다. 그보다 미개 시대와 야만 시대, 수공업 시대를 거쳐 기계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소유권에 기반을 둔 유한계급 제도가 정착하며, 이 과정에서 금전적 제도로서의 ‘사업(business)’과 산업적 제도로서의 ‘산업(industry)’이 공존하고 갈수록 산업이 사업에 대해 우위를 행사하는 양상을 포착한다.

그렇다면 유한계급을 비난하기 위해 끄집어낸 것으로 알려졌던 과시적 소비 및 여가의 성격과 이를 분석한 베블런의 진의도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는 그저 남들보다 우위에 서고 싶다는 세속적 욕망의 표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유한계급이 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의무이고 다른 계급이 사회의 유지와 보존을 위해 따라야 하는 문화이자 규범인 것이다. 베블런이 거듭 강조하는 제도는 바로 이와 같은 문화, 규범, 관습의 총체이며, 이것이 진화하는 과정을 경제학적으로 밝히는 데 《유한계급론》의 존재이유가 있다.

“유한계급 신사는 (…) 이제 단순히 공격성을 띠고 성공한 수컷이 아니다. 즉, 힘과 자원 그리고 용맹으로 가득한 남자인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한계급 신사는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면 취향도 연마해야 하는데, 소비할 재화 중에서 고급품과 저급품을 정교하게 판별하는 것이 새로운 의무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다양한 풍미를 지닌 고급 음식, 주류나 장신구, 멋진 의상이나 건축물, 무기, 게임, 춤꾼, 마약류의 감식가가 된다. 미적 감각을 연마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요구에 응하려고 유한계급 신사는 자신의 한가한 삶을 고되게 갈고닦음으로써 과시적 여가에 어울리게 생활하는 법을 익힌다.”
- 〈4장 과시적 소비〉, 97쪽

“약탈적 생활 습관에서 비롯된 기질은 경쟁 체제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생존과 생활 향상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 그러나 산업적으로 더 성숙한 사회가 되면서 경제생활의 진화는 이제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의 경쟁적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선진적인 산업 공동체에서는 기업을 중심으로 집단 전체의 역량이 크게 증대하기에 생활 수단이나 생존권을 놓고 경쟁을 벌일 필요가 없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바로 지배계급의 약탈적 성향으로 인해 전쟁과 약탈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경우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전통이나 기질 이외의 다른 요인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하는 일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 〈9장 고대적 특성의 보존〉, 264쪽

3. 새로운 《유한계급론》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대안적 경제를 고민하는 경제학자의 충실한 번역과 해설

이번에 새로이 《유한계급론》을 번역한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마르크스의 화폐이론과 케인스의 금융이론으로 학위를 받고 국회도서관 금융 담당 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입법과 정책의 생산 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해왔다. 경상국립대에 부임한 이래 사회연대경제 분야에서 좋은 삶의 가능성을 찾고 있는 옮긴이는 경제적 삶에 대한 사회적 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제도학파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베블런을 꾸준히 탐독해왔다.

박종현 교수는 《유한계급론》이 지금까지도 미국 사회에 대한 우화나 소비의 사회학으로 읽히는 데 문제의식을 갖고, 베블런이 이 책을 쓸 때 고민했던 ‘제도 진화의 경제학’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번역에 공을 들였다. 《유한계급론》이 고전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간 본성과 경제 제도의 변화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본 동시대적 작업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옮긴이는 이를 위해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번역했고, 《유한계급론》과 베블런의 생애에 대한 최신 연구를 주석과 해제에 적극 반영했다. 이 책에 짙게 깔려있는 진화론의 역사적 맥락부터 당시의 경제학에 대한 베블런의 관점, 베블런이 주로 언급한 개념, 여성 참정권 운동과 정착촌 운동 등 당대의 민감한 현안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해설함으로써 독자들이 《유한계급론》을 더욱 생동감 있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은 인간 사회를 진화론에 입각해 면밀하게 분석한 《유한계급론》을 통해, 오늘날 더욱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유한계급과 과시적 소비의 본질을 이해하고 개인의 자기중심적 본능을 모두의 공생을 위해 움직이게 할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유한계급론》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유한계급과 자본가가 지배하는 ‘악한 사회’를 향해 분노를 터트리거나 근면 계급과 노동자가 주도하는 ‘선한 사회’를 촉구하는 것과는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베블런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의 임무는 변화의 조건이나 메커니즘을 과학자의 냉철한 태도와 인과적 방법에 기초해 최대한 엄정하게 해석하는 것이었다. 다만 우리가 《유한계급론》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날지 여부는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들의 사고 습관이나 제도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 〈옮긴이의 글〉, 474~475쪽

“오늘날 우리 사회는 (…) 격렬한 경쟁심을 내면화한 사람들이 서열을 가르면서 타자에 대한 증오와 갈등을 키우는 가운데 모두가 불행해지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몰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그동안 가져왔던 경제적·사회적 삶의 방식을 새롭게 바꿔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시샘을 유발하지 않는 관심에 집중하고 타고난 장인 정신과 한가로운 호기심을 최대한 북돋고 한껏 발휘하면서,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의 즐거움과 긍지와 보람을 느끼는 세상을 만들어가야만 한다. 베블런의 통찰에 따르면, 그것은 사람들의 사고 습관이 얼마나 바뀔 것인지, 타고난 자기중심적 본능과 경쟁심이 공동체의 발전을 향해 움직이도록 이끌 규범과 제도를 어떻게 세울지에 달려있다.”
- 〈옮긴이의 글〉, 475~476쪽

4. 옮긴이 인터뷰
- 연대와 호혜, 장인 정신을 권장하는 조직의 생존 경험이 쌓일 때 ‘거대한 전환’이 가능하다

(1) 《유한계급론》이 출간된 지도 124년이 지났습니다. 그럼에도 왜 지금 《유한계급론》을 읽어야 할까요? 이 책과 우리의 시대적 상황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은 야만의 복귀와 만연한 증오,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기후위기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겠는데요. 《유한계급론》은 우리 시대의 야만적 기원과 변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철저하게 비판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오늘날 미국 사회는 자유주의에 기반을 두면서도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여성 혐오 등 비자유주의적 유산에 깊이 오염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블런의 관점에 따르면, 이러한 유산은 미국인이 약탈적이고 폭력적인 야만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군사화된 자본주의, 경쟁적으로 조직화된 이윤 중심의 비즈니스 기관(부재자 소유권의 중심인 투자은행, 헤지펀드, 영리기업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정치 기관, 공공 정책 및 군사력)이 대표적이죠. 이러한 성향이나 기관이 미국 사회의 초석인 권력·명예·부의 불평등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야만성이 과거에 비해 평화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 안에는 타인을 정복하고 지배하며 압도하려는 충동이 새겨져 있죠.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치가 급속하게 양극화되고 증오의 정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시샘을 유발하는 경쟁심이 계속 자극받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부채질하고 있고요.

(2) 확실히 《유한계급론》은 오늘날의 야만성을 이해하는 데 적합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네요. 베블런은 야만 시대의 진화적 결과로 유한계급이 등장했다고 보는데요. 유한계급은 구체적으로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유한계급이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지요.

이 책에서 말하는 유한계급은 산업적 직무에서 면제되며 명예가 따르는 활동을 별도로 배정받는 특권 계급을 뜻합니다. 유한계급은 사회의 발전 단계에 따라 모습이 다릅니다. 고대 왕국으로 대표되는 초기 야만 시대와 중세 봉건제로 대표되는 후기 야만 시대에는 전사 계급과 사제 계급이 전형적인 유한계급이 됩니다. 야만 시대부터 근대까지 유한계급에 속하는 특색을 모두 보여주는 사람은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야만인의 두 가지 특성인 난폭성과 기민함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가운데 이를 과시해 부와 명성을 움켜쥐었죠.

트럼프 외에도 오늘날의 유한계급을 대표하는 인물로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등이 떠오릅니다. 이들은 《유한계급론》의 표현을 빌자면 ‘산업의 수장(captain of industry)’이죠. 베블런이 산업의 수장에 대해 묘사한 바와 우리에게 친숙한 사업가들이 얼마나 비슷한지 비교해봐도 재밌을 겁니다. 저명한 펀드매니저, 유명 연예인, 운동선수도 오늘날의 대표적인 유한계급이고요. 현대의 유한계급은 패션, 고급 주택, 고급 휴가, 유명 인사와의 교제를 SNS에 과시합니다. 물론 우리는 유한계급이 서열을 가르고 시샘을 자아내기 위해, 곧 사회적 지위와 신분 관계를 재생산하기 위해 부를 과시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하죠.

(3)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을 포함한 여러 저작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온 바는 무엇인가요? 특히 그에게 진화론이 갖는 위상은 남다른 것 같은데요. 베블런의 관심사와 진화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합니다.

베블런은 경제생활이 시대를 초월한 법칙에 따라 펼쳐진다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단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는 경제생활이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맥락 그리고 역사적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이 과정에서 관습과 문화, 제도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경제적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사회적·경제적 환경도 부단히 변화하는데, 경제학은 제도가 환경 변화에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하는지를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블런은 당시 발전 과정에 있던 진화론의 도움을 받아야만 경제학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어요. 진화론은 우연에 의한 자연선택 메커니즘을 통해 생명체가 진화한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입증했으니, 경제학은 진화론이 확보한 개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 8장 〈산업적 활동의 면제와 보수주의〉의 첫 문단에서 베블런과 진화론의 관계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니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4) 선생님께서 ‘옮긴이의 글’에 말씀해주신 것처럼 집단 연대감과 장인 정신, 한가로운 호기심이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덕목을 어떻게 만들고 키울 수 있을까요?

《유한계급론》에 따르면, 집단 연대감과 장인 정신, 한가로운 호기심은 근대 산업사회의 정신에 부합하는 인간 본성입니다. 따라서 이들 본성이 확산된다면 근대 산업사회는 한층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근대 산업사회의 규범은 기본적으로 유한계급이 좌우하는데, 이들은 서열을 매기고 시샘을 유발하는 관심, 경쟁심, 약탈적 본능을 선호하니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베블런은 산업사회의 정신에 부합하는 본성이 확산되는 게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봤습니다. 그는 기계를 제작하거나 사용하는 엔지니어가 이러한 성향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봤고요. 유한계급 중 자연을 사랑하거나 사물의 이치를 파헤치는 데 큰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서도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오늘날로 가져오면 변화는 삶터와 일터의 두 차원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삶터에서는 독서클럽이나 풀뿌리 시민자원모임을 통해 호혜와 연대, 집단 연대감을 체험하고 훈련할 수 있을 것이고요. 일터에서는 열린 소통, 직원의 권한 강화, 신뢰 확립에 기초한 고몰입 경영이나 참여지향적 경영을 실행해볼 수 있겠어요. 직원협동조합이나 사업자협동조합 같은 제도를 활용한다면 이러한 방향으로 더욱 용이하게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연대와 호혜, 장인 정신, 한가로운 호기심을 권장하는 조직이 경쟁심과 약탈적 본능, 사업의 논리를 강조하는 조직과의 경쟁에서 생존하는 경험이 쌓이고 널리 알려진다면 ‘거대한 전환’이 본격화될 수 있겠지요.


저자 프로필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

  • 국적 미국
  • 출생-사망 1857년 7월 30일 - 1929년 8월 3일
  • 학력 예일대학교 철학 박사
    코넬대학교 대학원 정치경제학과 석사
    존스홉킨스 대학교
    미네소타 칼턴 칼리지 학사
  • 경력 미주리대학교 강사
    스탠퍼드대학교 부교수

2014.11.0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저 : 소스타인 베블런 (Thorstein Veblen)
19세기 미국사회와 경제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미국의 자만심을 뒤흔든 독창적 경제학자. 베블런은 1857년 위스콘신 주 카토 부근의 한 개척농가에서 태어났다. 1880년 칼턴 칼리지를 졸업한 그는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잠시 철학을 공부했지만 예일 대학교에서 1884년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수직을 얻을 수 없었던 그는 가족이 사는 농촌으로 돌아와 독서와 집필작업을 했다. 베블런은 1892년이 되어서야 시카고 대학교의 전임강사직을 얻을 수 있었다.

1899년 그는 첫 번째 저서이자 최고의 역작인 <유한계급론>이 출간되자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 책은 기존의 고전경제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두 가지의 교리적 진리, 즉 ① 자본가의 이익은 사회의 이익과 일치한다. ② 경쟁체계는 경제를 진보시키는역동성을 제공한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학술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이 책은 경제이론 뿐 아니라 사회학과 역사학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기업론>(1904)을 통해 미국의 기업제도에 이단적이라고 할 만한 직격탄을 날리고 그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 유명세 덕분에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의혹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와는 무관하며 마르크스의 체계는 지속력도 없고 사고력도 부족하다고 단언했다. 베블런은 미주리 주립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집필에 더욱 열중해 <제작본능과 산업기술의 실태>(1911) <독일 제국과 산업혁명>(1915)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 기간에 대한 연구>(1917) <미국의 고등교육>(1918) 등을 펴냈다.

그는 사망하기 전 10여 년간을 뉴욕에서 진보적인 ‘새로운 사회연구소’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집필한 책으로는 <기득권과 산업기술의 현황>(1919) <소유권 부재와 근대의 기업>(1923) 등이 있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아이슬란드 전설을 영어로 번역하여 <락스다엘라 사가>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예견했던 대공황이 엄습하기 얼마 전인 1929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근방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저서 <변화하는 우리의 질서에 관한 단상들>은 그가 죽은 뒤 1934년에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늘 그를 정치적 급진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생각했지만 정작 그는 어떠한 형태의 정치적 행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비관주의자였다.

역 : 박종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학부 때는 경제사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원에서는 마르크스의 화폐이론과 케인즈의 금융이론으로 논문을 썼다. 국회도서관에서 금융담당 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입법과 정책생산 과정을 관찰했고 현재는 진주산업대에서 화폐금융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미국식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적 대안』(공저), 『케인즈의 경제학』(공저), 『빅셀 이후의 거시경제 논쟁』,『경제의 교양을 읽는다』(공저)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내재적 금융불안정성과 투자의 사회화", "완전고용과 선한 삶", "한국형 소액금융의 모색과 과제" "사회투자로서의 대안금융"이 있다. 최근에는 대안금융과 대안적 경제조직의 가능성에 주목을 하고 있으며, 대안적 제도주의 경제학의 분석틀을 우리 사회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데도 관심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1장 서론
2장 금전적 경쟁
3장 과시적 여가
4장 과시적 소비
5장 생활의 금전적 표준
6장 취향의 금전적 규범
7장 금전 문화를 표현하는 복장
8장 산업적 활동의 면제와 보수주의
9장 고대적 특성의 보존
10장 근대에 살아남은 용맹의 유산
11장 행운을 믿는 마음
12장 종교 의례의 준수
13장 시샘을 유발하지 않는 관심의 부활
14장 고등교육과 금전 문화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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