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 해룡(청명) - 동해를 다스리는 용왕의 아들. 10년 후에 금정이 왕이 되지 못하면 잡아먹기로 어린 금정과 언약을 맺었다. 용궁에서의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던 찰나 금정을 만나 인간 세상으로 떠났다. 그동안 해룡은 금정을 보살피고 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지켜 준다. 자라나는 금정을 보며 이유 모르게 제 마음도 조금씩 변하게 된다.
수 : 금정(강목 대군) - 나라의 대군. 태어나기 전 해룡에게 배 속의 아이를 바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어머니로 인해 혼인을 물러 달라 찾아갔다가 되레 그를 황궁으로 데려오게 된다. 권력욕도 없는 그지만, 매번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해룡에게 놀림받는 신세다.
▷ 이럴 때 보세요 : 순수한 연하수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 들어가는 영물 공을 보고 싶을 때.
▷ 공감 글귀 : “소중히 여기고, 곁에 두고 싶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싶습니다.”
해룡전(海龍傳) : 왕을 만드는 방법
작품 정보
- 해룡은 썩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겠느냐!
- 나오지 않으면 동해 바다의 물고기를 싹 잡아 씨를 말리겠다!
겨울 날, 바다 밖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된 동해 용왕의 아들, 해룡.
바깥이 시끄러운 통에 육지로 올라간 그는 태황의 자손인 강목 대군, 금정을 만난다.
영물인 제 앞에서 달달 떨면서도 큰소리치는 소년을 놀리는 데 재미가 든 해룡은 10년간 금정의 곁에서 머무르기로 결심하는데…….
“내 십 년간 네 말은 무엇이든 들어주마.”
***
“왕이 되게 해 줄까?”
겁에 잔뜩 질린 인간 아이가 무슨 말인지 채 생각하지도 않고 되는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스스로 움직여 놓고 깜짝 놀랐는지 갑자기 눈이 크게 뜨였다.
“아니다! 아니야! 그건 아니다!”
아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해룡의 붉은 입술이 시원하게 호를 그리며 올라갔다.
“왕이 되고 싶다고?”
“아니라니까!”
아이는 정말 놀랐는지 손사래까지 쳐 가면서 아니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가벼운 무게에 맞춰 바닷가의 고운 모래가 폴락폴락 춤을 추며 날렸다. 그리고 해룡은 이제 아이를 놀리는데 재미가 붙었다.
“너를 왕으로 만들어 주면 내게 무얼 해 줄 테냐?”
해룡의 짓궂은 질문에 결국 아이가 으아-, 하고 눈물을 터뜨렸다. 해룡은 아이의 눈물을 크게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으아아아!”
아이가 발버둥을 쳤다. 이미 기분이 좋아진 해룡은 아이가 무슨 반응을 하든 신경도 쓰지 않고 제 세상에 빠져 있었다.
“천간(天干), 그래. 천간이 기본이니 십 년간 너를 지켜봐 주겠다.
십 년 동안 네 옆에 있어 줄 터이니, 어디 한번 왕이 되어 보거라.
나를 등에 업고도 왕이 못 된다면…….”
해룡이 몸을 기울여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귓가에 들리는 속삭임에 아이는 자지러지듯 울음을 크게 터뜨렸다.
“내 너를 잡아먹겠다.”
[본문 중]
“청명 님.”
어느새 감겨졌던 해룡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검푸른 눈동자가 흐린 빛을 내었다.
“연모란 무엇입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해룡은 할 말을 잃었다. 연모라……. 해룡도 오랫동안 잊고 있던 단어였다. 마음을 말이나 글로 표현해 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이든 알고 있을 것 같았던 해룡이 말을 멈추자 금정이 꼬물꼬물 몸을 움직이며 해룡을 채근했다.
“청명 님, 연모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던 해룡이 답했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말이 와닿지 않았는지 금정은 해룡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익숙한 체향이 금정을 휘감았다. 살며시 감긴 눈 위로 가벼운 온기가 닿았다가 떨어졌다. 말캉한 감촉. 금정은 해룡의 옷깃을 더 꼬옥 움켜쥐었다.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소중히 여기고 곁에 두고 싶은 마음은 어릴 적 몰래 키웠던 강아지에게도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것이 연모인가. 그렇다면 연모는 금정이 생각하는 것보다 쉬운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