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왜관은 15세기 초에 설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의 수도와 세 곳의 항구를 포함해서 모두 네 군데에 설치된 적도 있었다. 왜 조선은 왜관을 설치하여 일본인들을 통제하려고 했을까? 지금부터 6백 년 전의 조선과 일본의 교섭을 추적하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저자의 뛰어나면서도 치밀한 역사사료의 분석으로 독자들은 한일관계의 역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사회와 격리된 공간으로서 닫혀 있기를 바랐지만, 실제로는 조선 정부의 기대와 달리, ‘왜관’은 두 나라의 사람과 재화 그리고 문화와 정보가 교차되고 교류하는 열린 공간으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이처럼 좀 더 다양한 시각과 자료가 동원된다면, ‘왜관’의 역사는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나타나게 된다. 130년 전까지 부산 일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왜관’의 생생한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의 한일관계, 더 나아가 미래의 양국관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재미’를 덤으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쇄국 시대의 ‘일본인 마을’(니혼진마치)〉이다. 이 부제를 보고 ‘글쎄?’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의 에도 바쿠후는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재임 때(1630년대) 강력한 해외통제 정책인 ‘쇄국령’을 공포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일본인은 해외로 나갈 수 없게 되었고, 나아가 그들의 해외 거주는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법령 때문에 그 이전부터 동남아시아 각지에 있었던 ‘일본인 마을’은 존재 가치를 상실하여 점차 소멸되는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그런데 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일본인 마을’이 실제 존재한 곳이 있었다. 한반도의 남단 부산에 무려 10만 평에 이르는 광대한 부지를 가진 ‘왜관’이 그곳이다. 에도시대의 전 기간은 물론, 메이지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아닌 외국 땅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마을’이 그곳이다. 물론 이것은 일본의 바쿠후가 공인한 일이다. 그 무렵 한일관계를 독점하고 있던 대마도 소우 씨 가문이 주민들의 왜관 왕래와 행동을 관리하고 있었다. 에도시대의 일본에서도 이와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규슈의 서쪽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라는 곳에 세워진 네덜란드 상관이 그렇고 중국 상인들이 머물렀던 숙소, 규슈의 남쪽 끝에 위치한 가고시마성 주변의 유구관(琉球館) 역시 같은 부류의 시설이다. 왜관은 그 조선식 버전이었던 것이다. 나라가 다르고 시대에 차이가 있으며 그러한 시설이 만들어진 과정이나 운영 방식 등이 가지각색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이든 동아시아 국제사회에 공통되는 거점교류를 위한 시설이었다. 왜관은 길고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창설은 15세기 초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과 같은 호텔이 있을 리 없었던 시절,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을 응접하기 위하여 조선 왕조가 수도에 설치한 객관(客館)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왜관이 조선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은 에도시대 양국의 외교 실무나 무역 등이 일본이 아닌 조선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같은 시기 나가사키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무역은 네덜란드나 중국 사람들이 일본으로 들어가서 하던 무역이었다. 그러나 일본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교류를 한 것은 조선이 유일하며 그 터전으로서 제공된 것이 왜관이었다. 왜관의 긴 역사 속에서 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1678년(숙종4, 延?6) 부산포의 초량(草梁)는 곳에 설치되어 200년에 걸쳐 존속한 초량왜관이다. 극히 초기를 제외하고는 에도시대의 거의 전 시기 동안 존재하고 있는 점, 그와 함께 역사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양질의 사료가 풍부하게 남아 있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에도시대 260년 동안의 한일관계는 일찍이 없던 선린우호의 시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 전에 있었던 전쟁(임진·정유왜란)에 의하여 상실되었던 신뢰를 회복하고 선린외교를 지향하며 그것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양국인의 빈번한 교류, 말하자면 ‘무대 뒤’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현장이었던 왜관을 다시 살펴보지 않고서는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 실태가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책은 왜관 자체보다는 이 특수한 마을과 이런저런 형태로 관련을 맺으면서 꿋꿋하게 살아간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유념하였다. 거기에는 역사의 전면에는 등장하지 않으면서 양국 사이의 교류에 종사해온 수많은 무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왜관의 전문 연구 서적이라기보다는 근세 한일관계사의 입문서로서 가볍게 읽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