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말기는 ‘대동아전쟁’이라는 광풍이 불던 시대였다. 일제는 어떤 의심이나 저항 없이 전쟁에 기꺼이 몸을 던질 줄 아는 주체를 만들어 내려 했다. 신시대의 전망, 충량한 군인과 황민의 열망을 담은 담론들이 사회로 퍼져나갔다. 제국의 명령은 단지 이념을 주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념의 주입은 감정의 주조와 함께 이루어진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당대 사람들이 공유할 감정 형상을 제시하여 제국의 의도를 교묘하게 섞어 놓는다. 이런 의미에서 감정은 사회학적 연구에서 말하듯, 사회문화적 학습의 결과물이다. ‘건전’ 담론은 감정이 논리와 경험의 총체적 산물임을 증명한다. 건전하고 명랑한 몸과 마음이 바로 주체가 지녀야 할 ‘좋은 자세’로 기획하려는 의도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민지 말기를 사유하기 위해서는 이념 체제가 아닌 감정 체제로써 ‘건전’을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만 건전 체제가 어떻게 식민 주체들의 감정을 구획하여 그들을 완전한 전쟁 주체로 만들려 했는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지점은 감정 체제를 사유함으로써 단단한 이념의 틀에서 체제를 전유하고 내파(內破)하려는 다양한 가능성도 찾아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식민지 말기 한국소설이 지닌 ‘감정 동학(emotional dynamics)’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식민지 말기를 이데올로기가 아닌 감정의 동학으로 읽어내는 작업은 시대와 문학을 협력-저항의 이분법적 프레임 안에서 독해하는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이다.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이념을 내면화시켜 조종했는지보다, 개인이 사회에 어떤 대응 행위를 돌려주었는지 그 태도를 보려는 것이다. 이는 식민지 말기 한국 사회가 ‘건전’ 감정을 호명하는 전시 체제의 뒤편에서 건전에 대응하는 여러 갈래의 감정을 생산하고 있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 책은 식민지 말기 소설의 감정을 감정의 구조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살필 수 있는 ‘감정 동학’에 입각하여 분석하면서,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감정 구조와 잭 바바렛의 배후 감정, 그리고 윌리엄 레디의 감정 체제와 감정 주체를 전제로 둔다. 이는 전시 체제의 조선 사회가 부여한 건전의 감정을 개인이 각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전유했음을 파악하는데 유효하다. 다양한 감정 경향을 분석하고 그 양가성을 밝혀, 담론구성체로서 감정이 소설과 어떻게 길항하는지 보여줄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소설을 분석하는 틀로서 감정 동학의 유의미함을 증명하고, 협력/저항, 개인/사회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진행되어 온 식민지 말기 소설의 감정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채만식, 박태원, 이태준 세 작가의 소설을 연구대상으로 선택했다. 당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하나의 감정 체제와 대면하는 각기 다른 감정 동학의 형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들은 식민지 시기 한국 문단의 대표 작가이자 1940년대 말까지 창작활동을 펼친 작가들이다. 본 논문은 각 작가의 소설을 통해 건전 체제에 대응하는 주체의 내면 감정, 생활의 감정, 개인과 사회의 길항 감정을 다룬다. 문학적 예술성을 추구하는 단편소설과 ‘나’에 침잠하는 사소설, 독자의 흥미를 끄는 소재를 바탕으로 사회상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연재소설은 식민지 말기의 세 작가가 공통으로 다룬 분야이다. 다양한 형식의 소설 창작은 전쟁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 건전의 감정 체제를 내면화하길 요구하는 당대의 명령을 전유하는 방법이자 이에 대응하는 감정 동학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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