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3.03.15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를 편역하며
이 책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연보(年譜)를 편역한 것이다. 연보란 어떤 인물의 출생부터 사망 때까지의 행적을 연도별로 기록한 것을 말한다. 기전체(紀傳體)가 아닌 편년체(編年體)의 개인 역사서인 셈이다.
서애선생(이하 서애로 부른다) 연보에는 초고본(草稿本) 연보와 간본(刊本) 연보가 있다. 1970년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는 서애 종가(충효당)에 보존되어 오던 <초고본서애선생연보(草稿本西厓先生年譜)> 상하(上下) 2권(二卷)을 영인(影印)하여 간행한 바 있었다.
그 서문(序文)에 “서애 종가(宗家)에는 4종(四種)의 초고본(草稿本) 연보가 소장되어 있다. 하나는 셋째 아들인 수암 류진(修巖 柳袗) 이 초안한 연보초기(年譜草記)(4책)이고, 또 하나는 간행 연보와 체재(體裁)가 동일하나 그 내용이 훨씬 상세한, 즉 간행본(刊行本)의 기본이 된 것이라 추측되는 초고본이며, 기타 2종(二種)이 있으나, 이는 아마도 행장(行狀)을 찬술(撰述)한 정경세(鄭經世) 선생과 이준(李埈) 선생이 수암공과 더불어 연보 자료로 작성한 초고본으로 보인다. 이 4종 가운데 수암공의 연보초기가 내용에 있어서 가장 상세하고 또 사료적 가치도 풍부하지만 애석하게도 묵선(墨線)으로 삭제한 부분이 많아 판독하기 곤란하여 영인(影印)에 붙이지 못하였다. 이제 영인에 붙이는 서애선생 연보(2책)는 간행본 연보의 기본이 된 초고본으로서 체제와 내용에 있어서 간행본과 거의 같으나 내용에 있어서 훨씬 상세하고 충실하다”라고 했다.
서애전서(西厓全書) 권일(卷一) 간본편(刊本篇)에 수록되어 있는 연보는 초고본을 뒷날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선생의 교정(校正)을 받아 간행한 간본 연보이고, 서애전서 권3(卷三) 부록편(附錄篇)에 수록된 연보가 간행본의 기본이 되었던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이다.
본 편역서는 이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를 처음 편역한 것이다. 즉 간본연보를 교정할 때 하는 불필요한 글자나 글귀를 지우는 산삭(刪削)이 되기 전의 사실이 실려 있다. 간본연보는 1977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초출(抄出) 편역한 바 있으나, 초고본과 비교해보면 많이 간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고본 서애 선생 연보>야 말로 가장 풍부한 내용을 갖추고 있다. 다만 일부 친속(親屬)에 관계된 원문 기록은 그 당시와 지금의 사회적 체제 변동이 있음에 따라 최근 풍산류씨 세보(世譜: 2007년)의 기록을 참고하여 수정 증손(增損)하였다.
팔순의 나이를 넘긴 본 역자가 한학을 익혀 류성룡 선생의 연보(年譜)를 편역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 책은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가 불의에 왜적에게 침략당하여 20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두 달 만에 평양성이 함락되어 나라의 운명이 명재경각에 이르렀다. 이런 전시 상황에서 전시총사령관 겸 전시 재상으로서 전세를 역전시켜 7년간의 전쟁을 이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서애 류성룡이 어떤 사람인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순신이 바다에서의 싸움에서 32전 32승을 거두어 완벽하게 왜군을 이겼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육지에서의 전쟁, 자기 집의 사유노비를 전쟁에 징집하기를 거부하는 이기적 사대부들과의 전쟁, 그리고 원군을 보낸 것을 매개로 조선의 직접통치를 노리는 중국과의 외교전쟁을 이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서애 류성룡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진하다. 서애가 조선 국가와 백성들에게 정치, 외교, 국방, 민생, 학문, 문학 등 다방면에 끼친 공훈은 아직 다 밝혀져 있지 못하다. 그의 진면목에 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며, 사계(斯界)의 연구가 가일층 희구(希求)되는 바이다.
본 연보를 편역하면서 본문에 나오는 인물과 주요 사항에 대해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900여 개의 각주를 달았다. 본 연보의 편역과 각주가 서애 연구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역자에게는 더 이상의 기쁨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 최근 서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에 참여하는 학자도 점증하는 추세에 있다. 서애학회가 창립되어 본격적인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또 지난해 2022년은 서애 탄생 480주기(8주갑)가 되는 해이기도 한데, 이때 초고본이 번역되어 출판하게 된 것은 서애 류성룡의 진면목을 이해하는 데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격려해주고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다. 한학을 좀 익혔으나 부족한 점이 많은데, 책 출판 과정에서 격려와 지도 편달을 아끼지 않으신 서애학회 송복 회장님과 서애학회 회원 여러분께 이 지면을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특히 이 책을 출간하면서 옛날 책을 현대적 감각의 책으로 거듭나도록 편집하는 데 여러모로 도와주신 서애학회 서재진 부회장에게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풍산 류씨 문중에서도 두 차례나 원고를 정독하며 교열에 노구(老軀)의 몸을 아끼지 않은 동주(東柱)님께도 많은 빚을 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원문 강독을 함께 한 온지회 회원 여러분과 출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수고를 아끼지 않은 대하(大夏), 종하(宗夏), 덕하(德夏), 을하(乙夏) 제공과 창해(昌海), 한익(漢翊)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뜻을 올리는 바이다. 방대한 번역을 마치고 보니 잘못된 곳이 있지나 않을까 두렵기 짝이 없다. 독자 여러분의 질정(質正)을 바라마지 않는다.
2023년 3월
류영하(柳寧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