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2023.8.9
인류 역사에서 모든 철학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얻었다고 생각하는 진리가 보편성을 지니는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각자가 스스로 생각하는 진리가 다른 이들의 그것과 차별성을 가지면서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흘러 온 것이 곧 철학사이다. 즉 철학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진리로서의 각 철학사상의 흐름이다.
우리는 어떤 개별적 철학사상에 주목해서 그 철학을 이해할 수가 있고, 이에 거기서 말하는 진리관에 동의도 하며 때로는 전폭적으로 지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철학사상을 관조한다면, 그 사상은 그저 어떤 시점에 갑자기 생겨나듯이 나타난 것이 아닌, 지난 세월의 많은 철학사상들이 흘러온 흐름의 연장선에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어떤 철학사상을 이해하려면, 그 사상에만 주목해서는 그 사상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사상은 그 사상과 연계된 다른 사상들과의 영향 관계의 맥락 속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철학사상을 독립적으로 이해하려 하면, 비유컨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여, 그 사상이 어떤 연유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는지 그 맥락도 모른 채 내용만 피상적으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이해할 수도 있다.
철학사는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처럼 이것과 저것이 서로 인연因緣에 따라 연결되어 있는 총체이다. 철학은 무엇이 진리인가를 탐구하는 반성적 사고이며, 철학사는 그렇게 진리라고 여겨진 사상들의 역사적 흐름의 총체이다. 따라서, 철학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철학체계가 되므로, 우리는 철학사를 관조하며 그 중의 어떤 철학적 요소들은 철학사 속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그 해석의 결과가 다를 수 있다. 즉, 사관史觀에 따라 역사 해석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철학사 역시 어떤 철학사관哲學史觀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그 내용전개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서, 철학사 저작마다 그 철학사가의 해석관점이 철학사 내용구성에 영향을 미침을 기존의 여러 철학사 저작에서 알 수 있고, 기존의 ‘중국철학사’들도 그러하다. 필자 역시 나름대로의 ‘중국철학사’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본 ‘중국철학사’에서는 최초의 중국철학자를 ‘공자孔子’로 간주한다. ‘서양철학사’의 시작이 ‘탈레스’로부터이듯이 중국철학사의 시작은 ‘공자’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 이는 물론 기록에 의거한 것으로서, 기록 외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이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알려진 자료상으로서는 그렇게 해석된다. 그런데, 중국철학사의 경우 공자가 ‘노자老子’에게 ‘예禮’를 물었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노자가 비록 조금의 차이지만 중국 최초의 철학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관점으로는, ‘노자’의 실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을 정도로 불확실함이 있어서 이에 동의하지 않으며, 관련 문제는 본문 속 ‘노자’ 부분에서 상세히 언급해 두었다.
필자는 중국철학사를, 많은 이들이 그러듯이, 고대철학시대, 중세철학시대, 근대철학시대로 나눈다. 그런데, 기존의 ‘중국철학사’ 저작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있어서, 그 구체적 내용에 있어서 각 철학 유형들을 어느 시대에 편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같지 않다. 본 ‘중국철학사’에서는 공자로부터 시작된 선진先秦의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를 ‘고대철학시대’로 본다. 탈레스로부터 시작된 서양철학사의 중세 이전 시대에 상응한다.
그리고 진秦에 의한 통일 이후 한漢으로 이어진 시대, 즉 진한秦漢시대의 철학시대를 ‘중세철학시대’로 잡는다. 그것도 그 중의 ‘전기前期’로 간주하여, ‘전기중세철학시대’로 본다. 이는 서양철학사 중 신앙 우위의 ‘교부철학시대’와 상응한다고 본다. 중국도 이 시대에는 우연인지 필연인지 ‘천인감응天人感應’적 종교 또는 정치신학적 성향의 사상이 있었다. 또한 정치적으로도 마침 양 권역은 제국帝國의 시대여서, 마치 정치적이든 사상적이든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리고 서양철학사에서는 이후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한 ‘후기중세철학시대’인 ‘스콜라철학시대’가 있었듯 중국철학사도 유사하게 전개되는데, 그것은 위진魏晉 ‘현학玄學’ 시대 및 수당隋唐 ‘불교佛敎’ 시대에서 다음 송대宋代의 ‘성리학性理學’ 시대까지가 서양철학사와 그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形相’과 ‘질료質料’의 사상이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철학자(또는 신학자)에 의해 수용되었듯이, 성리학에서도 유사하게 ‘리理’와 ‘기氣’로 세계를 설명한 것이다. 즉 위진 현학에서 성리학까지가 중국철학사 중 ‘후기중세철학시대’라는 것이다. 양 권역의 이러한 사상들은 서양이든 중국이든 그 시대의 정치사회체제 및 통치이데올로기와도 관련된다.
필자는, 중국철학사의 근대정신은 ‘심학心學’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그래서 서양철학사의 근대적 자아를 상징적으로 말한 데카르트의 위치에 해당되는 중국의 철학자를 육구연陸九淵으로 본다. 중국철학사에서 중세의 정점에 선, 중국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역할을 한 주희朱熹(주자朱子)는 당시 ‘아호鵝湖’라는 곳에서 근대정신의 시작을 알리는 육구연과 논쟁을 했다. 육구연 철학의 의의는 ‘본심本心’이라는 근대적 주체의 자각이다. 육구연의 사상적 취지를 이어받아 ‘심학’을 종합집대성한 이가 명대明代의 왕수인王守仁, 즉 왕양명王陽明으로서, 그는 중국철학사에 있어서 근대적 도덕정신을 발양한 대표자이며, 그가 주장하는 근대적 주체가 곧 ‘양지良知’이다.
필자는 처음 철학을 공부할 때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우선 호감이 가는 철학사상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곧 어떤 사상은 그 사상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고구마줄기처럼 철학사 속에서 계속적으로 연계되어 이어짐을 느꼈고, 공부 범위도 그에 따라 확장되었다. 더구나 대학에서의 강의도 필자 혼자서 중국철학사 전체를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그 환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는 필자 관점의 ‘중국철학사’를 써 보리라 생각했고, 그동안의 논문주제도 중국철학사 전반에 걸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박영사’에서 ‘중국철학사’ 집필을 제안해 왔고, 그 제안을 수락하여 이제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필자의 본 ‘중국철학사’는 이러한 집필 배경 속에서, 그동안 여러 주제에 걸쳐 집필해 온 필자의 기존 저술과 더불어, 연구결과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강의안으로 존재하던 중국철학사 속의 여러 내용을 기본 토대로 하여, 그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본서의 내용은 필자의 기존 저작물의 내용과 새로운 원고 내용이 모두 포함됨을 밝혀 둔다. 이제 집필을 끝내고 보니, 올 봄이 가면서 여름을 준비하는 금정산의 푸른빛도 더욱 짙어지게 되었다. 끝으로 이번 ‘중국철학사’ 집필을 제안하고, 출판의 기회를 주신 ㈜박영사 측에 감사드리며, 필자의 집필 소식에 그동안 성원해 주신 주위의 여러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2023년 늦봄과 초여름 사이 어느 날
금정산 기슭에서
지은이 정해왕 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