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2023.8.30
통일을 대비한 보건의료역량 개발을 위해 2014년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가 설립되었고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통일보건의료센터는 한반도 통일 전후 남북한 주민의 전인적인 건강 향상을 위하여 보건의료 분야 전반에 걸친 연구, 교육, 대외협력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으며, 북한 보건 의료와 관련된 연구,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매월 1회 통일보건의료세미나를 진행하고, 매년 세브란스 통일의 밤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 기획단 활동 및 비무장지대와 판문점 견학 프로그램, 통일의 밤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난 10년간의 통일보건의료센터 활동을 담아 소중한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크게 총 4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탈북 북한주민과 의사들이 실제로 북한에서의 체험을 정리하였고, 2부는 센터에 소속된 연구자들이 향후 통일보건의료 영역에서 이루어져 나가야 하는 다양한 과제들을 연구한 내용을 묶었으며. 3부는 코로나-19 팬데믹 관련하여 남북보건의료협력과 남북관계변화 등에 대해 다루고 있고, 4부는 탈북민 정착지원 활동가에 대한 지원프로그램 운영 경험을 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부록으로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가 지나온 10년간의 발자취를 담았습니다.
오랜 분단으로 북한의 보건의료는 제도, 건강문화, 질병관, 의료인력 양성체계 등 여러 측면에서 매우 달라져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건강격차 및 의료문화 이질성 극복 등, 통일 후 의료상황에 대비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합니다. 이 책이 앞으로의 큰 성과를 위한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센터활동과 이를 담은 책을 발간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 책의 발간을 주관하시면서 모든 정성을 아끼지 않으신 전우택 교수님과 박용범 소장님, 그리고 모든 집필진,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러한 성과가 있기까지 센터설립과 발전을 위해 힘써 주신 이철, 정남식, 윤도흠 전임 의료원장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8월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윤 동 섭
서문
“90년대 (북한에서) 파라티푸스 돌 때 콜레라도 돌았어요. 그 때 집 없는 사람을 우리 엄마가 6개월 거둬주었어요. 집이 없어서 애 엄마하고 애 셋이 한 밤 중에 우리 집에 왔거든요. 그런데 내쫓지도 못하고… (우리) 엄마가 마음이 좋으니까. 그런데 그 엄마하고 아이들이 콜레라에 걸려가지고, 어느 날 설사를 하는데 쌀뜬물을 쏟는 것처럼 (대변을) 쏟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판이 다 벗겨지고… 그래서 비닐을 깔고 마루에… 그리고 병원을 가자하였는데, (병원에 갈려면)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니까 기운이 없어서 가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못 먹고 굶주리니까 우리도 기운이 없는 거예요. 그래 못 데려갔어요. 그 다음날 새벽에 (그 사람들이) 미동이 없는 거예요. 보니까 죽은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울어줄 사람도 없고… 그래도 사람이 죽은 걸 알려는 되잖아요. 동사무소에 알렸더니 관도 없는데… 그냥 꽃제비들 (죽으면 안치하는) 병원에 가져다가 사체실에 넣으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우리) 엄마가 그렇게는 못한다. 애들도 있고, (죽은 여자의) 남편도 있고. 남편은 이미 전에 죽어서. 그런데 병원에 가서 사체실에 갔더니 시신을 밟고 안쪽으로 갔어야 했어요. 그랬더니 진물이 막 있으니까 물이 줄줄줄 흐르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넣어 놓았는데, 엄마가 맘이 안 좋으니까, (죽은 아이들의) 그 고모가 있었는데. 관이라도 해서 묻어줘야 할 거 아니냐 (그랬어요) 그게 96년이었어요. 겨우 널을 얻어서 관을 만들고… (그 여자) 남편 있는데다 묻어줬었어요”
한 사회가 붕괴되었을 때, 그래서 그 사회 안에서 어떤 보건의료적 활동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고통 속에 있게 되고, 어떤 죽음을 죽어야 하였는지를 그 탈북자 분은 조용히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큰 애가 90년도 생인데 제가 집에서 출산을 했는데 저희 아이가 밤낮으로 계속 우는 거예요. 그때 친정집에서 출산을 했는데, (저희) 엄마가 애가 너무 우니까 어디 가서 병원 의사를 데려다가 물어보니까 약이 없어요. 그런데 애가 ‘바람이 들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애가 바람이 든 걸 뽑아야 되는데 약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어디어디 알아보고 해서. 그것도 동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쑥을 절구에 다 쪄서 비닐 장막에 쭉 깔거든요. 그리고 거기다가 아이를 감쌌거든요, 그랬더니 아이가 바람이 싹 빠져가지고, 그렇게 했더니 아이가 제 정상으로 해서. 그 다음부턴 울지 않았던 경험이 있었고…”
이 이야기가 고려시대 이야기인지 아니면 조선시대 이야기인지 구분이 안 되는, 민간요법들에 의지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이어졌다.
“저는 89년도 그 때 이유 없이 계속 머리가 아팠거든요. 머리가 아픈데, 일단은 열도 나기는 하지만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누워서 계속 벽에다 머리를 찧었거든요. 우리가 평소 가는 진료소는 리(里) 진료소가 아니라 공장에 있는 진료소이거든요. 그래서 거기 의사가 왕진을 왔다가 침도 놓고, 처방을 해도 낫지 않으니까 일단 시(市) 병원으로 의뢰서를 해주더라구요. 그래서 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내가 입원한 호실에는 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입원을 했더라구요. 그런데 그냥 거기서(는) 일반적으로 간단한 주사나 놓고 하는데, 회복, 완치가 되는 게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 호실 환자 중에 그 남편이 그 시병원에(서 일하는) 그런 부인이 입원을 했는데 그때 그 부인은, 소련의 벌목 가는 사람들이 내다파는 약이 있었는데 시가가 850원을 했거든요. 그 때 쌀 1kg 5원인가 할 당시에 약이 그러면 대단한 가격이었거든요. 그 약 이름이 제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부인은 그 약을 구입하여) 그걸 혈관투여를 했거든요. 포도당에 희석을 해가지고. 그런데 그 분이 그걸 맞고 금방 회복해서 나간 거예요 (퇴원한 거예요). 그래서 (저의) 엄마가 면회를 왔는데 ‘엄마 저기 있던 여자는 그 주사를 맞고 나갔다’ 이렇게 했더니 우리 엄마가 바로 (나가서) 세 통을 사온 거예요. 그래서 저도 그 세 통을 맞고 그냥 바로 그 자리로 낫더라니까요. 그래서 그 때 그렇게 퇴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도 90년대 전이었는데. 그때도 개인이 좋은 약을 써야만이 빨리 회복할 수 있었어요. 병원 약으로는 낫는 게 쉽지 않았어요.”
어느 사회나 그러하듯이, 질병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현상만이 아니었다. 그 생물학적인 현상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경제적 구조들과 정치 역학, 그리고 크고 작은 특권들과 돈의 움직임이라는 사회적 현상이 생물학적 현상과 함께 있었다. 무상의료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회적 덕목으로 자랑스럽게 선전하던 북한에서도, 그 안의 인민들은 그와는 전혀 다른 생존법칙을 따라야 했다.
이 책의 1부(1~2장)는 탈북한 북한주민들(1장)과 북한의사들(2장)이 실제로 북한에서 체험하였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그 동안 나와 있던 북한 보건의료 관련 자료들이 주로 북한과 국제기구에서 출간된 ‘정책과 숫자 중심의 문건들’을 토대로 만들어졌던 것이라면, 본 내용들은 실제 그 안에서 살았고 활동했던 사람들의 경험을 정리하고 분석하였다는 점에서, 기존 자료들과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들은 본 연구팀이 2021년에 <통일과 나눔> 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수행한 “북한 의료인 출신 북한이탈주민 및 일반 북한이탈주민을 통하여 보는 북한주민들의 건강의식과 건강행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 연구를 통하여 남한에 들어와 계시는 탈북민 중 북한에서 의료인으로 활동하셨던 19명(의사 6명, 치과의사 3명, 약사 3명, 간호사 7명), 그리고 비의료인 출신 탈북민 20명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이 서문의 앞에 소개된 이야기들도 그 때 비의료인 출신 탈북민들이 하셨던 말 중 일부분을 옮긴 것이다.
2부(3~8장)는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에 소속된 연구자들이 향후 통일보건의료 영역에서 이루어져 나가야 하는 다양한 과제들을 의학, 치의학, 보건학, 간호학, 약학 분야에서 연구한 내용들을 묶은 것이다. 특히 소아과 전문의로서 연세의료원 의료선교센터에 계시는 최원규 박사님이 의료선교적 차원에서의 통일보건의료 과제를 써 주신 것에 깊이 감사드린다.
3부(9~10장) 내용 중 10장은 전 세계 및 남한과 북한이 모두 코로나-19 앞에서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2022년에 <통일과 나눔> 지원을 받아 진행된 “팬데믹 시대의 남북보건의료협력과 통합방안”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 연구를 통하여 실제로 북한에서의 코로나-19 상황 전개 및 북한의 그에 대한 대응, 그리고 향후 북한과 남한, 국제사화와의 협력 방안을 정리하였다. 백신에 대한 국제 지원을 거절한 가운데 2022년 코로나-19의 유행기간을 지나갔던 북한이었다. 바이러스의 낮은 치사율 때문에, 일단은 어느 정도 경하게 그 기간이 지나갔지만, 향후 언제든지 세계적 팬데믹은 다시 있을 수 있고, 향후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가 유행할 경우, 북한은 감염과 그 대응에 있어 매우 취약할 수 있기에, 이 연구 내용이 향후 북한과의 보건의료 협력에 있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9장은 남북 관계가 극도로 경색되어 있는 현 시점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한반도 위기가 남북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한 내용이다.
4부(11~13장)는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가 2019년과 2020년 두 해 동안 <통일과 나눔> 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탈북민 정착지원 실무자 역량 강화 및 소진대응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다. 이 프로그램은 남한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을 지원하는, 즉 “Help for Helper program”이라는 뜻에서 “H2 program”이라 명명하였었다.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정착 지원을 하고 계신 활동가들 중 북한출신 10명, 남한 출신 10명을 매년 선발하여, 이 분들이 가지고 계신 공통의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모두가 겪고 있는 탈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문적인 훈련도 받도록 해 드리며, 그 분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추후에도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2019년 프로그램은 아직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운영되었기에 오프라인 현장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었고, 2020년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인하여, 온라인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운영하였다. 이 결과물이 향후 탈북민들의 남한 사회 정착 지원을 하고 계신 분들과 그 관련 기관들에 의미 있는 참고 자료가 되기를 기대한다.
10년 전인 2014년, 연세의료원에서는 향후 한반도에서 전개되어야 하는 통일보건의료 관련 활동과 그 준비를 위하여 통일보건의료센터를 설립하였다. 그 설립을 허락하시고 격려하여 주셨던 이철 의료원장님, 그리고 설립 이후 센터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정남식 의료원장님, 윤도흠 의료원장님, 윤동섭 의료원장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센터 설립 시에서부터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김원호 명예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지난 10년 동안 센터의 의학, 치의학, 간호학, 보건학, 약학 각 영역에서 운영위원으로, 그리고 이 책의 저자로 수고하여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특히 필자의 뒤를 이어 통일보건의료센터 소장으로 수고하여 주셨던 박용범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다수의 통일부 프로젝트 등을 통하여 통일보건의료에 대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신 의과대학 내과학교실의 염준섭, 강영애 교수님, 인문사회의학교실의 이훈상, 이혜원 객원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센터가 처음 만들어 질 때 간사로서 큰 수고를 하여준 최성경 박사님과 그 이후에 간사로 수고하여 주신 손인배 박사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이 책이 만들어 지도록 수고하여 주신 인문사회의학교실의 신보경 박사님에게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1, 3, 4부가 구성되도록 지원하여 주셨던 <통일과 나눔> 재단에도 깊이 감사드린다. 언제나 책의 출간에 흔쾌히 동의해 주시고 아름다운 책으로 만들어 주시는 박영사 모든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지난 10년간의 통일보건의료센터 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가장 큰 수확은 ‘사람’이었다. 한국 보건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연세의료원 안에 통일을 바라보고 준비하고자 하는 교수, 직원, 대학원생, 학부 학생들이 새로이 많이 만들어 진 것이다. 앞으로 이 분들의 활동을 통하여 우리나라와 세계가 준비하여야 하는 ‘통일보건의료의 미래’가 더 튼튼히 구축되기를 기대한다. 연세의료원 통일보건의료센터가 설립된 2014년과 같은 해에, 통일보건의료학회가 창립되었었고, 지난 10년간 이 영역에서의 중심적 역할을 하여 왔다. 학회를 통하여 함께 활동하시고 연구하신 분들의 덕분에 이 책의 많은 내용들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것에 감사드린다. 이 책의 대부분 저자들은 통일보건의료학회에서 출간하여 현재 중요한 교과서적 기능을 하고 있는 <한반도 건강공동체 준비>(제2판, 2021)의 저자들로도 참여하였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되는 이 책은 학회에서 나온 책과 그 내용면에서 중복되지 않으면서도 상호보완 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학부 학생들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전문 연구자들에게 이 책들이 교육과 연구, 그리고 현장 활동에서 의미 있게 사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북한의 날씨가 추워져도, 더워져도, 가뭄이 들어도, 홍수가 나도, 기근이 심하다는 말을 들어도, 어떤 전염병이 돈다는 말을 들어도, 북한 인민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아프다. 그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 여성들과 노인들, 그리고 청년들과 장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갖추어야 할 조건과 목적에서, 지금 남과 북은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것에 마음이 아프다. 보건의료라고 하는 것이, 한반도에서 그 아픔을 치유해 나가는 의미 있는 도구가 되기를 소망한다.
2023년 8월
통일과 치유를 소망하며
저자를 대표하여 전우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