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2023.8.31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대략 2016년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무언가 세상이 바뀌는 것 같기는 하다. 운전을 안 하는 사람은 잘 안 느껴지겠지만 자동차가 변하고 있다. 센서를 가지고 작동시키는 것 같은데 자동차가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고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밤에 고속도로를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릴 때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어두운 길을 전조등에만 의지해서 달리다보면 차선 유지에 온 신경이 곤두서면서도 안심하기가 어렵다. 반대 차선에서 차량이라도 오면 상향등을 켤 수가 없어서 차선 판독을 멀리까지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차선 유지 기능을 활용하면 이런 문제가 다 해결된다. 센싱 기술과 그에 연결된 차량 제어 기술이 장족의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디지털 전환이라는 현실이 성큼 다가와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늘 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이 되겠지만 버스 정류장 안내판에 어느 노선의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한다는 정보가 뜨는 일을 경험하게 된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이제 핸드폰으로 택시를 부르고 택시비도 자동으로 결제할 수 있다. 굳이 어디로 가자고 말을 하지 않아도 되니 성가시지 않아서 좋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해주던 시절을 지나 머리를 쓰는 일까지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정보분석원(Financial Intelligence Unit / FIU)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금융거래 내역을 감시하다가 자금세탁으로 의심되는 움직임이 발견되면 그 사실을 검찰에 통지하게 된다. 이러한 감시업무를 수행하여 의심 거래를 걸러내는 일을 하는 것은 FIU의 인공지능(AI)이다.
머리 쓰는 일도 힘들고 귀찮은 것은 AI에게 외주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그야말로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봐주거나 아닌데도 걸고넘어지는 따위의 일이 없어서 공정성 확보에도 유리하다. 과거 모든 교통법규 위반 단속 업무를 경찰관들이 직접 현장에서 할 때는 면허증 뒤에 만 원짜리 지폐를 넣어가지고 다니다가 주면 눈감아주고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아주 먼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현재 과속단속 업무는 모두 인공지능 카메라가 맡아서 하고 있어서 속도위반을 한 사람이 경찰관이라 해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AI는 아직 사람이 아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회가 변모하고 그러다 보면 규범체계도 그에 맞추어서 적응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규범질서가 유지된다. 규범질서가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무슨 짓 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느 선까지는 해도 되는지 알 수 있어야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우리(법학을 전 공하는 사람들)는 이를 두고 예측가능성(법적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자본주의 사회를 생각해보면 항상 이윤의 극대화가 위험의 극대화를 가져온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윤을 많이 올려야 잘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위험수준을 마구 높이도록 그냥 놔두면 잘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도 지나치지 않도록 절충을 해야 한다. 적절한 이윤이 확보될 수 있 도록, 적절한 수준의 안전의 확보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을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규제'라고 부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진행되면서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고 인공지능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활 용되고 있다. AI가 사람을 대신해서 측정하고, 확인하고, 계산하고, 조치하는 등 귀찮고 힘든 일을 맡 아주고 있는데 이에 따라 새로운 유형의 위험이 등장하고 있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지만 군사로봇이 터미네이터가 되어서 우리를 다 죽이는 거 아닌가 뭐 그런 걱정도 한다. 이 책을 쓰는 이유는 AI가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이때, 그들이 새로운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분석해보고, 법적으로 어떻게 대처하고 규율하여야 할 것인지 생각하는 일을 더는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AI와 함께 살아야 하는 세상이니 이왕이면 그들과 잘 살아 보자는 말이다. 'AI와 잘 사는 법'을 찾아보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세 사람이 공동으로 책을 썼다. 두 사람은 형사법이 전공이고 한 사람은 지식재산법이 전공이다. 두 사람은 macOS를 운영체제로 사용하고, 한 사람은 Windows를 쓰고 있다. 생각하는 방향은 세 사람이 다 다른 것으로 보인다. 공통점은 기술의 발달과 법률해석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법학 전공자들은 도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반대로 법학 전공자들은 기술의 변화를 약간 인지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법학이 전공인지라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지식이 부족하다. 어쨌거나 변화하는 기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기술을 바라보는 법학자들의 심정을 비법학자들에게 잘 전달하고자 하였다. 우리도 한 번 AI와 함께 잘 살아 보기로 하자. 이 책의 출판을 흔쾌하게 결정해 주신 박영사의 안종만 회장님, 안상준 대표님과 김민규 님 그리고 편집팀의 윤혜경 대리님께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책의 교정에 힘을 써준 김다혜, 김승은, 윤혜정, 장진영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