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로니웨스턴 계열 미국 서부 영화 속 비열한 악당은 일대일의 정면 대결 대신, 몰래 무리를 지어 혈혈단신의 주인공을 괴롭힌다. 고초를 겪던 주인공이 혼자서 악당 무리를 물리치는 장면에 관객들은 환호한다. 선한 자가 악한 자에게 이겼다는 상황뿐 아니라 혼자가 여럿에게 이긴 드문 상황에도 반응하는 것이다.
집단적 습성은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국내외 인사가 한국인을 무리 습성의 나그네쥐(lemming) 같다고 말했을 때 다수의 한국인은 분개하기도 했다. 현행 형법은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폭행해서 다치게 했다면 직접 상해를 가한 가해자뿐 아니라 가해 정도가 미미한 가담자도 상해죄로 함께 처벌한다. 그만큼 소수에 대한 무리의 만행을 나쁘게 보고 있다.
연대의 뉘앙스가 좋을 때도 있다. 오히려 분열, 분파, 쪼개기, 관종(관심종자) 등의 표현이 더 부정적이다. 한국인 다수는 한국인이 단결하지 못한다는 관념을 일제의 왜곡으로 받아들인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연대는 담합으로 불리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연대는 협력으로 불린다. 무리에서 물리적인 의지뿐 아니라 정신적인 안식처를 얻는 무리 구성원들은 서로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 즉, 무리의 효과에는 힘의 증대뿐 아니라 도덕성이나 대의명분 또는 그것의 착시도 포함된다.
기원전 44년 로마 원로원 의원들 수십 명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기습적으로 난도질하여 죽였다. 이는 로마 원로원 의원의 반(反) 1인자 연대였다. 카이사르 시해의 두 주역 카시우스(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와 브루투스(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본래 카이사르의 경쟁자인 폼페이우스의 사람이었다. 내전 후 카이사르는 그들을 사면하고 포용했다. 원로원의 암살 주모자들은 자신들이 카이사르를 배신했다기보다 오히려 카이사르가 로마 공화정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행위는 로마의 발전과 정의에 부합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암살 사건 이후 주모자들은 정권을 잡기는커녕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결국 자살이나 타살로 생을 마감했다. 카이사르 암살이 원로원이라는 엘리트 연대로 실행된 것이라면, 반(反)엘리트라는 대중과의 연대로 로마 황제정이 등장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무리 짓기, 즉 연대 현상은 도덕적 가치와 별개로 현실세계의 변곡점마다 등장하여 왔다.
연대 현상은 진화로 설명될 수 있다. 혼자 힘으로 되지 않으니 무리에 기대서라도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살아남으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동물 세계에서 무리 짓기는 일상화되어 있다. 무리를 뜻하는 한자어 군(群)의 부수가 양(羊)이듯이, 포식자들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은 대체로 무리를 지어 생존을 모색한다. 큰 무리에 포함되어 있을 때에는 포식자에게 노출되기 쉬워도 잡혀 먹힐 가능성이 홀로 지낼 때보다 작다. 왜냐하면 큰 무리에 있으면 공격받을 동종의 다른 개체들이 주변에 많아 개별 개체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직접 희생될 가능성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포식동물 역시 무리 활동의 개체군이 생존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백수의 왕으로 군림하는 수사자는 일대일로 싸워 이기지 못하는 동물이 있어도 군집 생활을 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사자 간의 경쟁에서도 다수의 수사자가 연대한 무리가 그렇지 않은 무리를 물리치고 좋은 영역을 차지한다. 또 수사자와 암사자 간의 관계에서도 수사자가 암사자들과 함께 먹이 사냥에 참여하는 무리가 그렇지 않는 무리보다 더 오래 유지되는 경향을 보인다.
군집 생활로 생물계를 최종 지배하게 된 종은 바로 인간이다. 쉽먼(Pat Shipman)은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우월한 신체조건의 네안데르탈인에게 이긴 것은 개와 연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호모사피엔스 간의 경쟁에서도 연대 또는 협력하는 개체가 살아남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 또는 인간을 의미하는 한자어 인(人)이 서로 기대는 모습으로 표기된 것으로 말해진다.
대체로 다수에 편승(bandwagon)하려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오래 존속한다. 심지어 지배자에 붙어 앞잡이질을 한 사람은 지배자가 바뀐 후에도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다수로 구성된 큰 무리에서 소외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무리에 끼려고 늘 노력한다. 자기 개인이 아닌, 자신이 속한 집단의 위상으로 남에게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도 일종의 무리 현상이다. 자신이 소속 집단을 선택했든 하지 않았든 그런 인식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편승 행위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무리를 이뤄 지내는 군계(群鷄)의 삶보다 혼자 지내는 일학(一鶴)의 삶을 선호하는 개체도 존속하여 왔다. 특히 야만에서 문명으로 접어들면서 정정당당함이 중시되었고 또 무리 짓기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연대 현상은 실제로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 주변에서 투서까지 할 정도로 미워하고 이질적이던 견원지간이 잇속 투합으로 협력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고, 또 조지 오웰 『동물농장』의 나폴레옹처럼 끊임없는 이간질로 연대를 유지하면서 잇속을 챙기는 야비한 돼지도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정치사회에서 무리 짓기 또는 연대 행위는 매우 흔하다. 특정 가치로 조직화된 연대가 다른 가치를 탄압하여 공공 가치에 위배되는 경우도 있다. 공공기관 내에 존재하는 사조직의 폐해가 그런 예다. 지역 연합, 세대 카르텔처럼 선거 때에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가 교착되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시점에는 어김없이 연대가 논의된다. 어떤 정치인은 연대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 “연대만 말하면 고대는 어떻게 되냐”는 농담을 하곤 했지만, 거의 모든 정치인은 연대를 염두에 두고 정치를 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은 그 속성상 남의 것을 빼앗거나 되찾는 것일 때가 많다. 다수 힘을 획득하는 전략 또는 다수 힘 그 자체가 정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부와 마찬가지로 권력도 그 자체가 목적이면서 수단이기도 하다. 정치 또는 권력을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로 보는 이스턴(David Easton)식의 접근이 한때 현대 정치학의 주류였지만, 정치를 다수 힘의 결성, 즉 연대 현상으로 보는 정치학 이론이 꾸준하게 지속되어 왔다. 라이커(William Riker)의 규모의 원리(size principle)와 부에노 데 메스키타(Bruce Bueno de Mesquita)의 선출인단 이론(selectorate theory)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연대 이론은 한비자와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론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사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를 직접 부리지 않았다. 오히려 권무술수가 난무하는 시대와 공간에서 큰 피해를 봤다. 위선적인 권모술수를 노골적으로 글로 드러냈을 뿐이다. 연대에 관한 여러 저명 이론가들이 권모술수적 연대를 직접 행한 것은 아니다. 이 책 역시 실제 무리를 결성한 경험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무리에 끼지 않고 지적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여 분석한 결과임을 강조하고 싶다.
이 책은 연대 현상을 해부한다. 여기서 말하는 연대(連帶)는 남과 무리를 짓는 행위인데, 무리란 둘 이상의 구성원이 합치거나 협력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국어에서 연대는 관련 또는 연결을 의미하고, 연수 또는 연합이 우리가 말하는 연대에 더 가까운 단어다. 손을 잡거나 함께 합하는 현상은 단순히 서로 관련되는 현상보다 더 나아간 것이다.
연대에는 종류가 많다. 수평적 연대와 수직적 연대로 구분할 수도 있고, 의도적으로 기획된 연대와 자연스럽게 발생한 진화적 연대로 구분할 수도 있다. 또 연대는 힘의 기준에 의해서만 결성되고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규범성에 따라 가치 기준도 중요하게 작동한다. 그렇지만 연대 게임은 기본적으로 수의 경쟁이다. 바둑에서 검은 돌이 많으냐 아니면 흰 돌이 많으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듯이, 연대 게임의 승패도 얼마나 많은 힘을 규합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물론 같은 한 개의 돌이더라도 위치에 따라 그 영향력은 매우 다르다. 고수의 바둑 기사는 상대에게 여러 개의 돌을 먼저 주고도 자신 돌 간에 띠를 이뤄 이기는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부는 연대의 규모와 혜택이다. 그 첫 번째 장에서는 연대 구성원이 큰 몫을 얻기 위해 연대 규모를 가급적 작게 만드는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 한나라의 유방, 로마의 카이사르 및 옥타비아누스, 조선의 이방원, 소련의 스탈린, 북한의 김일성, 한국의 박정희 및 김영삼 등의 사례로 이를 설명한다.
두 번째 장은 연대의 결성과 유지에서 연대 전리품의 나누기가 매우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연대 시에는 파트너가 이탈하지 않을 정도로 전리품 나누기를 잘해야 한다. 연대 파트너가 너무 많아 모두에게 나눠줄 사유재가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재로 연대를 유지할 수 있다. 토목건축이 그런 공공재의 예이다. 만일 연대의 전리품이 너무 공공재적이라 누구나 다 향유할 수 있는 반면 연대 참여에는 큰 대가를 감수해야 한다면 누구나 참여를 주저하게 된다. 이럴 경우엔 연대 참가자만 공유할 수 있는 클럽재로 연대, 즉 집단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제2부는 연대 파트너와 양태에 대해 논한다. 잘 지내다가도 철전지원수가 되기도 하고 또 원수처럼 지내다가도 협력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고들 한다. 세 번째 장인 숙적과의 연대에 관한 논의에서는 서로 앙숙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면 풍랑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기도 한다는 오월동주, 메이지 유신을 가능하게 했던 앙숙 사쓰마번과 조슈번 간의 동맹,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 걸쳐 치열하게 서로 싸운 독일과 프랑스 간의 화해 협력 등의 사례를 서술한다.
네 번째 장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을 경계하여 지리적으로 멀리 위치한 강자와 연대한다는 원교근공의 차원에서 연대 현상을 다룬다. 고대 삼국시대의 동맹, 19세기 아관파천, 18세기 미국과 프랑스 간의 동맹, 1970년대 중국과 미국 간의 수교, 1990년대 쿠웨이트의 해방 등을 설명한다.
다섯 번째 장은 대중과의 연대를 설명한다. 로마 및 프랑스의 황제, 미국 루스벨트, 프랑스 드골, 독일 히틀러, 중국 마오쩌둥, 아르헨티나 페론 등의 1인자가 보여준 대중과의 연대를 소개한다. 프랑스 공화정 시절의 드레퓌스 사건은 1인자뿐 아니라 정파 세력들 간에도 대중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경쟁 양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연대 파트너의 외연 확장에 관한 여섯 번째 장에서는 이질적인 상대와의 제휴, 다른 후보와의 단일화, 중도와의 연대, 개방 등을 다루고 있다. 또 표면적으로 연대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론 연대의 속성을 지녀 연대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현상을 서술한다. 의회 표결에서 상대 정파와 주고받는 식의 협력인 로그롤링, 선거에서 싫어하는 강력한 후보를 견제하여 당선 가능성이 있는 차선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전략적 쏠림, 서로 입장이 다른 강경파와 온건파가 적절하게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여 나은 결과를 얻는 이면적 협력 등을 예시한다.
제3부는 연대 결속과 와해의 매개에 대해 논한다. 일곱 번째 장에서 연대의 유도 전략으로 되갚기와 내리갚기 그리고 의사소통을 설명한다. 또 연대 결성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적 또는 정서적 요인을 정리해본다. 여덟 번째 장에서는 연대 이탈의 유도 전략으로 내부 고발과 꼭두각시 낙인을 소개한다. 연대의 공고화 전략으로 표준화를, 또 공고화된 연대의 와해 전략으로 판 바꾸기를 제시한다. 이 책 마지막 장에서는 연대의 여러 법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았다.
이 저서는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다(NRF-2014S1A6A4027683). 연구자들은 대개 마감에 임박해서 벼락치기로 원고를 작성하기도 하는데 저자 또한 그런 습관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한국연구재단에서 부여한 3년의 연구기간 내내 매주 분석하고 작성하여 약간의 숙성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렇게 된 이유는 저자의 자발적인 성실함보다는 언론매체에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일종의 강요된 일정 때문이었다. 저자의 게으름이 연구결과물에 미칠 악영향을 배제해준 중앙선데이에 감사를 드린다. 이 책 많은 부분들의 초고는 중앙선데이에 이미 게재된 바 있으며, 그 사실은 본문에서 따로 표기하지 않았다. 또 연구보고서를 읽고 의견을 주신 익명의 한국연구재단 평가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학술적으로 매우 독창적인 연구결과를 담고 있기 때문에 논문 형식의 연구서적으로 출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현상에 관한 담론이기 때문에 널리 읽힐 대중서적으로 출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 가운데에서 방황하다 두 가지 목적 다 잡으려는 욕심은 이루지 못하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구성으로 출간하는 게 아닌가 싶다.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