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WTO 체제가 출범한 이래로 세계무역체제는 무역관련 분쟁에 대해 갖는 강제관할권을 토대로 다른 국제재판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례를 축적해오고 있다. WTO는 명시적으로 영미법계 국가들에서와 같은 선례구속의 원칙(stare decisis)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천명하고 있지만, 패널들과 상소기구에 의해 나오는 보고서들은 이후의 평결들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후의 패널들 및 상소기구가 선례에 제시된 논증들을 그대로 따르고 있으므로 이들은 WTO법의 acquis를 구성하는 하나의 축으로 평가 받아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WTO법은 무역자유화를 제1의 목표로 삼고, 이를 위축시키는 법적 또는 사실적 조치들을 위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WTO협정의 부속서로 구성되어 있는 각종 협정들 역시 무역에 방해가 되는 여러 가지 요소를 억제하기 위한 규범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통상은 국제사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대응해야 할 궁극의 목표일 수는 없으며, 우리는 기후변화 문제를 포함하여 환경보전과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과제를 통상문제와 함께 조화롭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전 지구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WTO의 패널들과 상소기구는 지금까지 환경보전과 보호를 위한 회원국의 조치들이 WTO 규범들과 충돌하는 여러 경우들에 대해 다룬 바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WTO에 있어 환경적 고려가 ‘예외’적으로 필요한 조치에 해당하는지 심사하는 과정으로 나타나지만, 보다 근본적인 측면을 보면, 무역과 환경은 가치로서 서로 갈등을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무역과 환경의 갈등 양상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큰 스펙트럼에서 본다면, 자유무역론자와 생태론자의 견해가 다를 수 있고, 더 좁게는 국제환경법학자와 국제통상법학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다. 모두 균형과 타당성을 내세우지만, 우리는 각자가 가진 입장에 따라 이것을 평가하는 척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사례집은 WTO 분쟁해결 사례들 중 무역과 환경의 갈등에 대해 다룬 것을 추리고, 이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평석을 실은 것이다. 이들 중에 오래된 과거의 사례에 관한 것들도 있고, 비교적 최근의 것들도 있다. WTO가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현재의 접근방식은 과거와는 다소 다르고, 학자들이 두 가치를 보는 시각과 규범적 평가 역시 다르다. 이 사례집은 환경에 대한 WTO의 태도 변화라는 통시적 접근과 각 학자들의 다양한 관점에 대한 망라적 집약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아무쪼록 이 사례집을 접하는 독자들이 이곳에 실린 여러 글을 통해 나름의 균형감각을 가지고, 무역과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본 사례집을 위해 편저자는 WTO 분쟁사례를 잘 정리하면서도 이에 대한 깊이 있는 평석을 제공하는 논문을 선별하여 각 장으로 편성하고, 저자 선생님들께 논문의 업데이트와 그간의 발전에 대한 증보를 부탁드렸다. 대부분의 장은 이렇게 업데이트가 된 것이고, 일부 평석은 저자의 동의하에 변경 없이 그대로 실려 있다. 아쉽게도 연락이 닿지 않거나 허락을 받지 못한 원고는 싣지 못했는데, 이는 향후 사례연구 제2권에서 반영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책의 출간을 허락해주신 박영사 안종만 회장님, 우리 연구센터의 도서발간 사업을 위해 지속적으로 애써 주시는 조성호 이사님께 우선 감사드린다. 또 이 책의 편집과 교정작업을 담당해주신 김민주 선생님과 책을 위한 행정업무로 수고해주신 송병민 과장님께도 감사의 뜻을 전한다.
2018년 6월
편저자들을 대표하여
박덕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