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러시아어’ 학습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문제는 대학에서 오랜 기간 러시아어를 가르쳐 온 저자에게 항상 고민의 대상이었다. 항상 느껴왔던 점은 학습자들이 ‘정확한 러시아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론적으로만 대략 알고 있는 문법 위에, 단순하게 외운 단어들과 상투적인 회화 표현들이 방향성 없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 러시아어를 이미 1~2년 공부한 학습자들의 대체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러시아어 텍스트의 의미를 수동적으로 이해하는 것 이외에는 능동적인 측면에서의 체계적인 어휘 사용과 정확한 구문 형성이 힘든 것이 당연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외국어 학습 방법론의 전문가가 아닌 학습자들이 러시아어를 1~2년 배웠을 때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한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저자는 산만하게 나열된 러시아어 지식을 정리, 체계화하고 그 바탕 위에서 다양한 어휘와 구문의 정확한 사용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중급 러시아어 학습의 요체라고 믿게 되었다. 외국어 학습의 궁극적 목표는 타인의 생각을 이해한 후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이기에, 어휘와 구문 구조를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중급의 외국어 구사 능력은 난해한 지문을 통해 대량의 단어들을 무원칙하게 익히거나 특이한 회화 표현들을 많이 암기함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표준적이며 동시에 실용적인 언어는 지나친 문어체나 구어체를 지양하는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근거해 이 책은 표준적인 어휘와 구문의 정확한 사용법 터득을 통해 중급의 독해와 작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기 위해 씌어졌다. 난해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구어적인 스타일이 아닌, 표준적인 구어체와 문어체가 중급 수준에서 적절히 혼합된 독해 텍스트로 저자는 라흐마노프(Л. Рахманов)의 중편소설 До?мик на боло?те(늪가의 작은 집)을 선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가스 괴저병이라는 참혹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미생물학자 안드레이 꼬스트로프와 그의 딸 발랴에게 생기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내용의 흥미로움과 함께 중급 수준의 실용적인 어휘와 구문들이 자주 반복된다는 점 때문에 독해 텍스트로는 안성맞춤으로 여겨졌다. 독일군의 포위 중에서도 알료호프 늪지대(Алёховские боло?та) 속의 한 늪가에 위치한 실험실에서 불굴의 의지로 백신 개발에 헌신하는 모습은 이념을 초월하는 감동을 주기도 한다. 간혹 느껴지는 소비에트 시대의 분위기는 좋은 러시아어 문장을 읽는 흥미로움으로 인해 충분히 상쇄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의 초판은 경진문화사에서 2005년에 발간된 바 있다. 그 후 지금까지 이 책으로 공부했던 분들이 직접, 간접으로 보내 온 의견들을 대하면서 저자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책을 개정해야겠다는 필요성과 책임감을 느꼈다. 초판의 제목은 중급 러시아어-늪 속의 작은 집이었으나 ‘늪 속’이라는 개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개정판에서는 ‘늪가의 작은 집’이라는 부제를 쓰기로 했다. 소설 텍스트를 독해 지문으로 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러시아어 사용법의 주요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여 능동적인 작문 능력 배양으로까지 연결하는 방식은 초판의 것을 그대로 유지했다.
각 장의 ‘주요 어휘 및 구문’ 부분에서는 독해 지문에 나타난 중요한 어휘와 구문들의 사용법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부분의 취지는 문법 사항을 기계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어휘나 구문이 쓰이는 전형적인 상황들을 실용적인 예문을 통해 심도 있게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확한 러시아어 구사를 위한 핵심 내용이면서도 실제로는 학습자들이 가장 많은 오류를 범하는 ‘약한 부분’들을 찾아내 보여주고자 했다. 학습자들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그리고 독학을 하는 학습자들까지도 염두에 두어 이 부분은 가능한 한 상세하게 설명하려 애써 보았다. 저자는 이 부분의 러시아어 예문들을 학습자들이 최대한 암기해 두기를 권한다(이 부분의 주요 러시아어 어휘들은 이 책 말미의 ‘주요 어휘 색인’에 정리되어 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초판에서 제시되었던 항목들 중 미진했던 부분의 설명이나 관련 사항을 많이 보충하고 더 명료한 형태로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어 예문들을 상당수 추가하거나 기존 예문들을 좀 더 실용적인 스타일로 수정했다. 또한 학습자들의 능동적 학습을 위해 독해 지문에 대한 전체 해석은 주지 않는 대신, 지문 중 의미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문장들은 초판에서보다 좀 더 많은 분량의 해석을 어휘, 구문 설명 부분에 제시하였다.
각 장의 마지막 부분인 ‘연습 문제’는 ‘주요 어휘 및 구문’의 내용을 주로 하고 독해 지문의 여타 어휘들을 가미하여, 배운 내용을 작문을 통해 실제로 구현해 보는 부분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정확한 문장을 통해 표현될 수 없는 문법 지식, 단순히 외워서 나오는 정형화된 회화 표현은 안정된 러시아어 실력이 될 수 없기에 배운 내용을 이 부분을 통해 확실하게 다져 체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습자들의 어려움을 고려해 난이도가 높은 작문 문제들에는 괄호 안에 주요 어휘를 힌트로 주었다. 또한 이번 개정판에서는 그간 이 책으로 학습한 분들의 의견을 반영해 연습 문제의 해답을 책 말미에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