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대 경제학이 소위 한계혁명(marginal revolution)이라 불리는 변화를 경험한 이후 경제학의 이론 전개를 위하여 수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하였고, 경제학 교과서들에는 점점 더 많은 수학적인 내용들이 그 지면을 차지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미적분학 정도의 수준이었겠지만, 현대 경제학에서는 세부 전공에 따라 최적제어이론, 대수기하학, 확률적 미분방정식 등의 내용이 거리낌없이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현상이 수치적 자료로 통계화되어 있고 이에 대한 수학적통계학적 분석능력을 기르는 것이 경제학 전공자가 당연히 짊어져야 할 의무가 된 시점에서 경제학 전공자를 위한 기초수학 교과서에 대한 수요는 언제나 존재했고, 따라서 시중에는 훌륭한 선생님들께서 집필한 꽤나 많은 경제수학 교과서들이 이미 출판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경제학을 위한 수학 교과서를 시장에 내 놓는 행위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기는 힘들 것이나, 그래도 나름대로의 차별화를 통해 학문적 다양성의 향상에 소소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자기 위안을 해 본다.
본 교과서가 다른 경제수학 교과서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경제학의 여러 문제들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수학적 기법들의 수리논리적 배경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수록하고자 한 점에 있다. 물론 수학 전공자들이 하는 것처럼 모든 내용을 최소한의 공리로부터 연역하여 논리적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술하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대학원 레벨의 경제학을 공부해야 할 학생들이 학부 고학년이 된 이후 수학 공부를 기초 미적분학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불상사는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였다.
이 책으로 경제학을 위한 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최소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생 수준의 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 경제학과 관련하여 이미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라면 더 편하게 공부할 수 있음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고, 가능하다면 경제학원론 수준의 경제학 용어들에 관하여 친숙해 있기를 권장한다. 경제학과 관련된 내용들은 대부분 예제로 등장하고, 초급의 경제학 교과서에서 서술되는 것만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가끔은 통계학 용어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이 기초통계학을 이미 공부한 상태일 것이라 생각하여 통계학 관련 내용을 따로 소개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정리의 증명들은 가능하면 본문에 서술해 놓았지만 전체적인 내용 전개 과정에서 위상수학 등 당장은 불필요하거나, 너무 자질구레하거나, 또는 너무 난이도가 높은 것들은 부록에 따로 수록하였다. 충분히 수학에 관한 성숙도가 쌓인 이후 부록을 다시 읽어 보면 왜 해당 내용들을 본문에서 빼 놓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수학 교과서에서 삼각함수 관련 내용들을 후반부에 따로 독립시켜 놓고 있는데, 이는 기초 경제학에서 삼각함수의 미적분이 등장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논리 전개의 통일성 때문에 삼각함수를 처음부터 피하지 않고 서술하고 있는데, 경제학을 위한 수학을 처음 공부하는 독자라면 삼각함수 관련 내용을 건너 뛰면서 공부해도 무방하다.
연습문제는 대부분 과제나 시험문제로 출제되었던 것들이고, 실력 향상을 위해서 빠짐없이 모두 풀어보기를 권한다. 대부분의 연습문제 풀이를 부록에 상세하게 제공하고 있지만, 일단 풀이를 참고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 봐야만 본인이 무엇을 잘 모르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모든 의미있는 공부는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 사이의 경계를 확정해 가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하며, 그 종착점의 성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은 저자가 지난 20년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경제수학 강좌를 운영하면서 사용한 강의노트를 그 기초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50쪽 가량의 강의 요약본에 불과했는데, 매 학기 내용을 보강하면서 연습문제들을 업데이트하다 보니 이제는 그럭저럭 - 본의 아니게 - 책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여러 모로 부족함만이 넘실대는 저자의 날림 강의를 열심히 수강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피드백을 제공해 준 모든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또한 이 책의 출판을 위해 옆에서 응원해 주신 선후배 동료 분들께도 감사의 뜻을 표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KTUG.org’에서 제공한 TEXLive 2018 버전으로 제작하였고 나눔글 꼴과 은글꼴을 이용하였다. 관계된 분들께 감사드린다.
긴 시간 동안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병마와 싸웠지만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두 친구,
이융 교수와 윤종관 상무를 추억하며
2024년 8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