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판발행 2024.09.10
초판발행 2023.01.13
<서문>
감사하게도 형법 판례집(형법판례총론?형법판례각론)을 2년 만에 다시 개정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사이에도 대법원은 사회 변화에 맞추어 주요한 판결을 다수 내렸습니다. 가장 의미 있는 판결로, 2022. 12. 22. 대법원은 한시법의 추급효와 관련하여 60여 년간 견지해 왔던 동기설을 폐기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20도16420 전원합의체 판결). 이 판결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그동안 법원은 ‘동기설’이라는 법리로 제1조 제2항의 입법 취지를 형해화하여 왔으나 이번 판결로 죄형법정주의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하지만 대법원은 동기설을 폐기하면서도, 유형에 따라 제1조 제2항의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래 성범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크게 변화되면서 법원도 성범죄의 성립범위를 계속 확장해 오고 있습니다. ‘기습추행’의 인정(2015도6980), ‘행위자의 성적 의도’의 배제(2013도5856),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 심리 시에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고려 요청(2018도7709) 등은 이러한 흐름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습추행’이 아닌 ‘폭행?협박 선행형’의 강제추행의 경우도 폭행?협박의 의미를 완화하기에 이릅니다. 기존의 항거불능이나 항거곤란할 수준의 폭행?협박이 아니라 일반 폭행?협박죄의 그것과 같은 정도이어도 강제추행죄는 성립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이제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의 신체에 대해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여 추행한 경우에도 범죄는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최근 대법원은 사건 심리에 있어서 ‘성인지감수성’을 충분히 고려하되 그러한 관점이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히어, 무죄추정의 형사법 대원칙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재산범죄로 넘어와서는, 최근 헌법재판소는 71년간 유지되어 왔던 ‘친족상도례’에 대해 2025.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형법 제328조(친족 간의 범행과 고소)의 적용을 중지하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헌법재판소 2024. 6. 27.자 2020헌바341 결정). 헌법재판소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수인 가능한 수준의 재산범죄에 대한 형사소추나 처벌에 관한 특례의 필요성은 인정하였으나, 현행 규정은 너무 넓은 범위의 친족 간의 범죄에 대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여 구체적 사안에서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형해화시킬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10여 년 동안 재산범죄와 관련된 큰 흐름으로, 대법원은 일련의 판결을 통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것이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아닌 통상의 계약관계에 있어서 ‘배임죄’나 ‘횡령죄’의 성립을 부정해 오고 있습니다. 그 선상에서 대법원은 채권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채권양도 통지를 하는 등으로 채권양도의 대항요건을 갖추어 주지 않은 채 채무자로부터 양도한 채권을 추심하여 수령한 금전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2. 6. 23. 선고 2017도3829 전원합의체 판결). 이는 형사처벌이 사법(私法)상 권리의무관계를 보호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변경된 입장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한 판결입니다.
지금은 유튜브 시대입니다. 형사 판례를 발표하는 학생들 중에도 종종 유튜브를 활용하는데, 듣는 이들의 집중도가 높았습니다. 관련 영상을 통해 판례를 압축적으로,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이번 개정판에 QR을 통한 관련 영상들을 연결하였으니, 사건과 법리를 이해하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개정 작업에도 초판의 편집을 맡아주신 윤혜경 대리님과 기획을 도와주신 김한유 과장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24. 8. 18.
박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