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판 들어가는 글
2009년 8월 『산업조직론』을 출간한 지 만 12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그 10년에 2년을 더하니 세상이 아날로그 경제에서 네트워크 경제, 디지털 경제로 바뀌는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가 일어나고 있다. 산업생태계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한 한 담기 위해 이번 개정판을 준비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해 패러다임 전환은 더욱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비대면거래와 대면거래가 공존하겠지만, 비대면거래가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Metaverse)는 가상세계와 현실이 뒤섞여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세상을 뜻하는데, 관련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AI, 메타버스, 블록체인, 클라우드 컴퓨팅 등 기술 발전은 산업생태계를 완전히 바꿀 가능성이 크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Tesla의 Elon Musk는 SpaceX를 설립하여 인류의 화성 이주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고, Amazon 창업자 Jeff Bezos의 Blue Origin은 2021년 7월 Bezos 본인을 포함하여 우주여행 티켓을 구입한 최초의 민간 우주관광객을 태우고 인류 역사상 첫 민간 상업우주여행을 실현하였다. Bezos에 앞서 Virgin Group의 Richard Branson 회장은 자신의 기업 Virgin Galactic에서 제작한 유인 우주선 ‘VSS Unity’를 타고 지구 고도 88.5km까지 올라가 미세중력을 체험하고 귀환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한편, 지구 전역에 초고속 우주인터넷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Elon Musk의 목표는 SpaceX를 통해 실현되고 있다. 2021년 3월 스타링크 위성 60개를 한꺼번에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리고 1단 로켓을 지구로 재착륙시켜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Elon Musk나 Jeff Bezos 등은 돈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카카오의 김범수, 배민의 김봉진 등과 같이 전혀 새로운 유형의 자본가들이 출현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이들은 교육 불평등 같은 사회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쓰겠다고 했다. 우리나라 기업가와 기업구조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업이다. 기업은 경쟁을 통하여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좋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근로자를 고용하여 일자리를 만들며, 소득을 제공하여 국민경제를 성장시킨다.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고 강화하여 이러한 기업 경영을 더욱 제약하는 것은 경제회복을 더디게 하고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코로나19로 1년 늦게 개최된 2021년 7월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남녀 모두 혼성 및 단체전 양궁에서 금메달을 땄다. ‘공정’과 ‘기회의 평등’이 만든 33년 무패는 양궁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 대한 공정거래정책에도 당연히 적용될 것이다. 국내 시장경쟁이 제대로 기능해야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제대로 된 경쟁력을 갖고 경쟁할 것이다. 때로는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넘어 혁신을 거듭하는 경우도 있다. Amazon의 Jeff Bezos나 Tesla의 Elon Musk가 바로 그러한 혁신가이다. 정부 규제개혁의 방향은 투명하고 일관된 정책을 통해 시장경쟁을 유도하여 기업경쟁력을 높이고, 기업가들의 혁신을 북돋우는 것이어야 한다.
글로벌 전기차시장을 생각해 보자. 현재는 2003년 창업한 Tesla가 주도하고 있지만 전기차시장에 기존 자동차메이커인 Mercedes-Benz, BMW, Volvo, GM뿐만 아니라 Apple, MS 등 빅테크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 현대차 및 기아차는 이러한 기업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차세대 전기차시장을 둘러싼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러한 경쟁의 과정에서 기업들은 효율적·혁신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들의 경쟁 결과 소비자들은 한 번 충전으로 오래 주행할 수 있는 좋은 품질의 전기차를 보다 싸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경쟁의 결과 독점이나 과점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독점을 지키기 위해, 과점시장에서 선두기업이 되기 위해 기업들은 사실 부단히 혁신을 이루어야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플랫폼 독점의 경우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은 독점이 무조건 비난받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를 다루고 있다. 경쟁은 항상 좋고, 독점은 항상 나쁜 것인가? 물론 일반적으로 독점은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특정 시장의 독점의 경제적 효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대한 판단은 case by case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온라인 플랫폼의 경우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하다. 사용자가 많아질 경우 오히려 소비자후생이 극대화될 수 있다. 온라인 서비스는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는 ‘전환비용’이 낮아서 그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쉽지 않다. 독점 기업도 혁신하지 않으면 독점이 지속되기 어려운 구조이다. 그러나 플랫폼 독점의 경우에도 혁신이 아니라 불법행위나 불공정행위를 통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안 될 것이다. 미국 법무부는 2020년 10월 Google이 경쟁자의 시장진입을 막고 독점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하였다고 Google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연방거래위원회(FTC)와 주요 주정부가 2020년 12월 Facebook을 상대로 경쟁을 저해하는 불공정행위를 하였다고 반독점 소송을 제기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시장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인 소비의 경우도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가 소유를 포기하고 일정 금액을 내고 정기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아보는 ‘구독경제’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가전제품, 생필품 중심에서 자동차, 그림, 가구 등으로 그 영역이 계속 확장하고 있다. MZ세대의 경우 자동차를 소유하는 대신 차량구독 서비스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구독경제의 경우도 서비스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네트워크 효과에 의해 서비스 가격은 낮아지고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구독경제도 공유경제의 한 모습이다. 이처럼 공유경제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공유경제는 재화나 서비스를 소유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 서로 공유하는 활동이다. 공유경제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연결된 네크워크를 통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만들거나 소비할 수도 있고, 필요한 곳에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으며, 원하는 것을 학습할 수도 있다. 중고 교환 및 매매도 공유경제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때로는 무료로, 때로는 중고교환으로, 때로는 현금결제를 통해 재화와 서비스의 재분배가 이루어진다. 이처럼 소비와 소비자의 행태도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정부는 과거의 아날로그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우리 경제가 상당히 우려된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영국의 J. M. Keynes가 정부의 적극적 시장개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Keynesian Economics가 태동되었다. 그러나 Keynes는 당시 경제가 극히 어려워지면서 급속도로 퍼진 사회주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았다. Keynes는 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정부가 시장개입을 할 경우는 예외적 상황일 경우에만 시장개입을 인정하였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으로 미국 등은 경제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였지만, 기업 규제 등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정책으로 돈을 풀고 거두어들이는 등 유동성을 조정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각종 규제법안들의 남발로 소비자후생은 감소하고 기업들의 경영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제2판을 준비하면서 지난 12년 동안 일어난 산업생태계의 변화를 가능한 한 담고자 했다. 기존 사례연구를 모두 바꾸었다. 산업조직론의 이론 부분도 관련 장들 및 제14장을 통해 그 변화의 방향을 그려보고 보완하고자 했다. 플랫폼 독점을 다루었고, MZ세대의 구독경제 등 공유경제를 새롭게 포함시켰다. 네트워크 경제 또한 논의를 보충하였다. 제11장 지식재산권의 경우에도 이론 부분뿐만 아니라 BTS, 아이유 저작권 등 최신 사례를 통해 그 중요성을 살펴보았다.
2009년 발간된 이래 많은 사랑을 해주신 교수님들과 학생들께 감사드린다. 사례의 인용을 허락해 주신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신문, 한국경제신문의 책임자들께도 감사드린다. 책 개정을 줄곧 기다려주시고, 출판을 맡아 주신 율곡출판사 박기남 사장, 편집과정에서 공을 들여 주신 방조일 선생께 감사드린다.
2021년 8월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