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발행 2025.02.28
<역자 서문>
나는 이 책의 2017년 판을 김지은 변호사로부터 선물받았다. 김지은 변호사는 원저자가 일하고 있는 미국의 특허전문 로펌에서 수년간 일하고 있었다. 생명공학을 포함한 이공계 학생들에게 특허법을 가르치는 나에게 이 책이 유용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 책을 선물로 준 것이다.
이후 강의 준비를 하면서 이 책을 종종 참고했는데, 그동안 봐 왔던 다른 법률 책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먼저, 외형적으로 과학도서 같았다. 미국 법대를 다니며 공부했던 특허법 교과서들은 천 페이지를 넘는 권위적인 느낌의 하드커버 본이었다. 그에 반해, 이 책은 500페이지가 안 되는 페이퍼백으로, 밝은 파란색 표지에는 DNA 이중나선구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책의 내용도 전형적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특허법 책들은 특허의 역사, 특허법 이론, 특허법의 경제학, 특허 시스템 등에 대한 설명이나 특허성 요건들의 개별적인 논의로 그 틀을 구성한다. 그러나 이 책은 곧장 각 요건들이 실제 사건들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기술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즉, 그 요건들의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재판 과정에서 그 요건들이 생명공학 청구항에서 적용되는 구체적인 예를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원저자가 직접 맡았던 사건들의 경험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용이한 실시요건의 랜드마크 사건이었던 in re Wands와 함께 원저자의 로펌이 맡았던 유명한 사건들도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원저자가 특허변호사로서 출원 및 소송을 맡아 치열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화학 및 생명공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치밀하게 법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터득한 깨달음과 통찰을 정리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독자는 원저자와 같은 길을 가는 생명공학 특허 실무자일 것이다. 더불어 법에 익숙하지 않은 과학기술자에게 친화적인 쓰인 이 책은, 앞으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새로운 발견이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나의 학생들과 같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법은 근본적으로 과학과 법의 학제간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루는 특허법 책들은 대부분 법 전문가들을 위한 법률 서적으로 쓰여졌다. 따라서 이공계 연구자들에게는 상당히 장황하고 많은 논의들이 비실용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었다. 반면에 이 책에서는 각 사건의 특정 이슈에 대한 논의가 관련 기술을 포함하여 항목별로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공계 연구자들이 곧장 논의의 초점으로 가서 해당 이슈가 해당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해석되는지 손쉽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2008년부터 카이스트와 서울의대에서 첨단 과학기술의 혁신을 추구하는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에게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을 가르치면서, 이공계 학생들이 특허법에 대한 흥미가 매우 크고 이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매우 큰 반면, 막상 공부하는 데는 어려운 점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연과학 및 공학은 법과 그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전자는 발전 혹은 진보에, 후자는 절차에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법률가와 과학자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데, 이는 변호사와 과학자가 문제 해결을 할 때 직면하는 상황과 제약조건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전의 위대한 과학자들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들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려고 하는 과학자들은, 동일한 법조항에 대해서도 사건의 상황에 따라 그 해석과 적용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기는 상당히 힘들다. 더욱이 판례법의 비중이 커서 해석 및 적용에 있어서 성문법 체계에서 보다 훨씬 큰 유연성 내지 불확실성을 함유하고 있는 미국 특허법은 이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평화롭고 공평한 분쟁해결을 추구하는 법이 불변의 우주의 진리를 추구하면서 한 가지 정답을 찾고자 하는 과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이러한 많은 어려운 점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미국 특허법을 이해해 보려고 끝까지 노력한 것은, 오직 자신들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허의 순기능을 가장 여실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예는 코헨과 보이어의 특허이다. 유전자 재조합기술을 사용하길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허 라이선스를 허가함으로써 지구상에 최초로 바이오테크놀로지라는 산업 분야를 만들어 내었고, 이로부터 호르몬치료제, 생물학적 의약품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PCR, RNA interference, 각종 진단법과 치료용 항체들, CRISPR 등 그 뒤를 이은 중대한 업스트림 발견들도 그 뒤를 이어 우리의 생명과 더욱 건강한 삶에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첨단 과학기술자들에게, 이 책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특허법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그들의 노력의 결과물인 첨단의 지식과 기술을 널리 전파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24년 12월 26일
대표역자 김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