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발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기업 현장에 있는 여러 조직의 구성원들로부터 우리 조직에서 행해지는 회의가 너무 비능률적이고 효과적이지 않다, 심지어는 왜 회의를 하는지 모르겠다 등등의 말을 들을 때마다 제대로 된 솔루션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기력감을 느끼곤 한다. 조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집단이다. 그리고 조직은 효율적인 조직운영을 위해 팀이나 파트를 만들거나 특정한 목적을 가진 TF를 만들어 끊임없이 목적 달성을 위해 움직인다. 그런데 대부분 조직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는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만나거나 일시적으로 만나 협업하는 상황에서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관점과 생각들을 훌륭하게 정리하여 하나의 결과물로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 정서상 많은 조직의 구성원들은 상사나 상급자가 있는 상황에서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그리고 아직도 일부 조직의 리더는 회의 상황 등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구성원들에게 따를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문화에 익숙해진 조직은 왜 쓸데없는 회의를 하는지 의문을 가진 구성원들을 놔둔 채 묵묵히 기존의 관성을 유지해 나가면서 개선책이나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프로세스가 중요하다. 좋은 결과물에는 좋은 프로세스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종종 좋은 프로세스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는 소홀한 경우가 많다. 많은 조직에서 소통과 협업을 이야기한다. 소통과 협업은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데 있어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통과 협업의 중요성을 잘 알면서도 소통과 협업의 질을 높이는 프로세스를 고민하는 것에는 약하다. 각기 다른 의견과 아이디어를 하나로 잘 만들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훌륭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세스를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협업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이를 뒷받침해 줄 테크닉을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스킬을 퍼실리테이션이라고 부른다. AI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출현하고 Gen-Z 세대가 점차 조직의 주력이 되는 상황에서 퍼실리테이션은 모든 회의를 주재하고 참여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소통과 협업을 위한 기본 스킬이 되어야 한다.
소그룹 퍼실리테이션이라는 책은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기업이나 조직에서 일어나는 소그룹 단위의 모든 회의, 토론, 학습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지침서이다. 본 책에는 앞서 언급한 퍼실리테이션을 위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본적인 원리와 퍼실리테이션을 위해 필요한 테크닉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소그룹 단위에서 회의할 때 우리는 참석자들이 말하는 표면적인 내용과 이면적인 내용,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관계들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또 고려하면서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최적의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세스에는 객관성을 담보하는 참여적인 테크닉이 요구된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테크닉만을 활용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원리는 이해하지만 테크닉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데 비효율적일 수 있다.
또한 조직개발의 일환으로서 Process Consultation은 조직의 내부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해 설계된 컨설팅 방식을 의미한다. 이 접근법은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주로 인간관계, 의사소통, 팀워크, 리더십 등과 같은 프로세스를 진단하고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Process consultation은 컨설턴트가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보다는, 조직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을 취한다. 이 책의 내용은 Process Consultation을 실행하는 데도 매우 유용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Kolb 교수님은 내가 아는 한 최고의 퍼실리테이션 스킬을 가지고 계신 분이셨다. 유학 시절에 Kolb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언어적으로 다른 학생들과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모든 수업이 퍼실리테이션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실제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본 책의 번역을 위해 힘써주신 많은 분이 있다. 먼저 본 책의 번역 과정에서 조언과 도움을 주시고 꼼꼼하게 수정을 해 주신 박철용 전무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전무님과의 영감 있는 대화를 통해 본 책의 쓰임새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용기를 내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번역 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열정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도와준 박순원 선생님께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드린다. 박순원 선생님의 헌신으로 본 책의 번역이 완성될 수 있었다. 또한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시면서 어려운 부분을 해결해 주신 박영사의 이선경 차장님과 안상준 대표님, 그리고 이 번역서가 나올 수 있도록 최종적으로 도움을 주신 박영스토리의 허승훈 과장님과 배근하 차장님, 노현 대표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소그룹 퍼실리테이션이라는 책이 협업과 소통으로 힘들어하는 우리나라 모든 조직과 구성원들에게 힘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2025년 2월
대표 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