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대학원 생활 가이드북이다. 논문에 진심인 대학원생이 헛걸음을 줄이고, 낙담하지 않고, 전문가로 살아남기 위한 대학원 생활 가이드북이다.
배움이 깊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책을 내는 것은 무모하고도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일임을 알고 있다. 그래도 용기를 내는 것은 새로운 연구를 고민하는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필자의 연구 분야 관련이 있다. 나의 주된 연구 분야는 북한 문화이다. 좀 더 나눈다면 북한 문화정책이다. ‘분단 이후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를 가졌던 남북이 분단 상황에서 서로 다른 체제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한 연구가 어느덧 30년에 이르렀다.
돈도 안 되는 연구 주제에 관심을 둔 이유는 시간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은 오랜 역사와 언어, 문화를 공유했다. 하지만 80년을 아무런 소통 없이 보냈다. 공유하였던 언어, 문화가 차이나고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언어는 생각보다 빠르게 달라진다. 영어를 보자. 오늘날 영어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 영국식 영어가 있고, 미국식 영어가 있다. 여기에 호주 영어, 남아프리카공화국 영어가 따로 있다. 한국식 영어인 콩글리시도 있다. ‘핸드폰’, ‘그룹사운드’ 등은 콩글리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어도 다르지 않다. 좀 더 객관적인 표현으로 하면 ‘한국어’가 맞을 것이다. 예전의 국어와 오늘의 국어가 다르다. 한 뿌리였던 한국어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난다. 중국 조선족의 한국어가 다르고, 남한의 표준어와 북한의 문화어가 차이 난다.
한국문학이라는 개념도 복잡해졌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문학’이라는 개념은 통용되기 어려워졌다. 재미교포가 영어로 쓴 작품을 한국문학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조선족 동포가 한글로 쓴 문학작품은 또 어떤가? 재일교포의 문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가의 국적이나 민족, 언어를 가지고 한국문학이라고 개념 짓기 모호하다. 한강 작가의 영문판은 한국 작품의 번역이므로 한국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글로 쓰면 한국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해외동포나 한국인이 영어나 다른 언어로 썼다고 한국 문학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 문화 연구는 인생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북한을 인문학적 고민으로 시작한 분야였다. 깊은 고민없이 뭔가 애국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연구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선행 연구도 없었고, 마땅한 자료도 없었다. 자료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북한 자료는 특수자료이다. 특수자료를 찾는 접근 자체가 제한되었다. 적어도 북한 문화 연구는 개척자의 입장이었다.
독해는 더 난감했다. 북한은 정치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정치적인 맥락 없이 텍스트틀 읽는 것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바늘 찾기였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북한 연구만큼이나 자료를 찾기 힘들고, 텍스트 읽기와 독해가 난해한 분야가 있을까 싶었다. 텍스트에 대한 접근과 해석에 대한 고민은 상당했다.
북한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북한 문건을 찾아 읽고, 영화나 드라마, 공연을 보고, 문맥을 읽는 작업을 손에서 뗀 적이 없다. 200여 편의 논문과 글을 썼고, 그와 비슷한 만큼의 책을 썼다. 숱한 헛걸음이 있었다. 결과로 맺지 못하고, 너무도 뻔한 결론으로 허망하게 수고를 날린 것도 부지기수다. 어쩌다 북한 연구나 통일에 관심을 두는 얼마 안 되는 ‘존귀한 후학’을 만나면, 말리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경험을 나누는 일이라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는 작업은 온전히 모래에서 바늘 찾기를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대학원 생활이란 별다를 게 없다. 자료를 찾고, 찾은 자료를 열심히 읽고, 지형을 찾아 좌표를 설정하는 과정이다. 북한 연구를 하면서 대학원생을 위한 글쓰기를 고민한 엉뚱하지 않은 이유다.
북한 문화 분야는 연구 성과가 그렇게 많이 축적되어 있지 않다. 전문가도 별로 없다. 고민이 있어도 참고할 자료나 선생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논문에 대한 방황과 고민이 컸다.
학부에서 리포트를 잘 썼다고 칭찬만 들었던 학생이 대학원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주장하지 못하고, 다른 논문이나 글을 잘 주워 모으고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생은 아직 충분히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다. 어디를 가든 초행길이다. 시행착오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시행착오 없는 학문적 전진이란 없다. 시행착오가 두렵다면 시작하지 않는 게 좋다.
학문의 세계는 많은 실패의 발자국이 남지만 남기는 발자국만큼 길이 열리고 세계가 넓어진다. 공부만이 주는 매력이다.
몇 년을 묵었던 원고였다. 애당초 출판을 염두에 둔 글이 아니었다. 폭염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여름 끝자락에서 잔소리처럼 늘어놓았던 글을 잘 다듬어 주었다. 책답게 만들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2025년
유별났던 여름이 유발나지 않는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걱정을, 아침저녁 희미하게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의 힘으로 밀어내듯
한 켠의 무게를 덜어낸다.
우직한 황소상 뒷편 연구실에서
전영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