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포기하지 않는다. 아름다웠을 내 미래를……!.”
『폭탄』 『로스트』 『스완』 등으로 자신만의 색을 견고히 구축한 오승호가 이번에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장장 6백 페이지가 넘는 장편 대하 추리소설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가 그러하다. 오승호는 2015년 『도덕의 시간』으로 재일 동포 작가 최초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일본 추리 소설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명망 있는 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업계의 새로운 거장으로 자리를 굳건히 했다. 특히 2020년 『스완』으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과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동시에 석권한 데 이어 본 작품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로 2년 연속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재일 한국인 3세 작가로서 모든 작품에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녹여낸 오승호 작가는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에서도 마찬가지로 그 면모가 돋보인다. 주인공 가와베는 옛 친구 사토시의 의문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추적하며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5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장대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 긴 시간을 채우는 키워드들은 개발에서 소외된 시골 마을, 재일 한국인 차별, 학생 운동의 흥행과 실패, 버블 붕괴 등 일본 근현대사를 구성하는 큼직한 사건들이다. 이러한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이 한데 얽히며 작품은 전개된다. 일본 근대 작가들의 문학을 통한 암호 해독, 여러 갈등과 추격전,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는 긴 서사 속으로 독자들을 빠져들게 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거대한 운명 앞에 순응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맞서 싸우고 종국에는 돌파구를 찾아냄으로써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상처는 각자도생만으로는 완전히 해결할 수 없으며, 연대와 협력, 우정과 유머 등이 그들에게 들이닥친 어려움을 극복하는 핵심 수단이 된다.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는 이러한 메시지를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필체로 그려낸다. 긴 호흡으로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는 1995년 후지와라 이오리가 발표한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은 1995년 제41회 에도가와 란포상과 이듬해 제114회 나오키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전설적인 작품이다.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두 상을 동시에 거머쥔 사실은 일본 추리문학계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 학생 운동과 전공투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사건과 이를 살아가는 개인들 사이의 운명과 고뇌를 다룬 이 소설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에 한 출판사 편집자가 오승호 작가에게 이 작품을 오마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이에 대한 답으로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블루홀식스가 출간한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을 곁들여 읽는다면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의 매력을 한층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운명에 맞서 노래하는 모든 존재를 위해
오승호(고 가쓰히로)는 2015년 『도덕의 시간』으로 제6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는 현재 일본에 존재하는 장르 문학 관련 상에 전부 한 번씩은 수상하거나 후보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실력 있는 젊은 작가다. 특히 일본 최고 권위를 자랑하며 작가 평생 후보 명단에 단 한 번 이름 올리기도 힘든 것으로 알려진 ‘나오키상’ 후보에 2020년 『스완』, 2021년 『우리들의 노래를 불러라』, 2022년 『폭탄』으로 총 세 번 올랐고, 세 번 다 아쉽게 수상을 놓쳤다. 그 외에 2018년에는 연쇄 살인범의 출소 후 복귀로 혼란에 빠진 도시의 모습을 그리며 ‘인간은 어디까지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살인자와 공생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묵직한 주제를 다룬 사회파 미스터리 『하얀 충동』으로 제20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수상했다. 또한 사상 최대의 유괴 사건을 그리며 오야부 하루히코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장편 『로스트』, 요시카와 에이지 신인상 후보에 오른 본격 미스터리 『마트료시카 블러드』, 데뷔 5년 만에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장편 부문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은 『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 등의 작품이 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래, 출간한 저서 대부분이 문학상 후보가 된 오승호(고 가쓰히로). 그는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명실상부한 미스터리 천재 작가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졸업 전에 취업 준비를 일절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겠지’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 생활이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한 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취미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영상 제작에서는 실패한 경험이 있었으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 즉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기어코 그는 아르바이트에서 해고당한 그 실패를 성공으로 역전시킨다. 오승호 작가의 작품 속에 늘 등장하는, 무언가와 고군분투하는 등장인물은 현실 속 오승호 작가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배경을 딛고 작가로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오승호 작가는 『우리의 노래를 불러라』 출간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을 계속할 의미가 있을까? 내가 글을 쓰는 이상, 이 질문에 답하고 싶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쓴다는 오승호 작가는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을 오마주해보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직접 경험하지 않은 학생운동을 내가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전작 『스완』이 일본추리작가협회상과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동시에 수상하면서, “좁은 공간을 무대로 한 미스터리는 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주인공을 통해 시대를 그리는 더 큰 규모의 이야기에 도전해 보자”라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심에서 탄생한 작품이 어떤지 꼭 읽어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