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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작품 소개

<금오신화> 한국 전기체 소설(傳奇體小說)의 효시이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등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원래는 이 5편이 작자가 지은 전부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이 5편밖에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그것도 국내에는 필사본밖에 없고 일본에서 간행된 것이 1927년 《계명(啓明)》 제19호에 최남선(崔南善)에 의하여 소개되었다.



《금오신화》의 소설적인 특성은 첫째,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재자가인적(才子佳人的) 인물이라는 점, 둘째, 문장 표현이 한문 문언문(文言文)으로 사물을 극히 미화시켜 표현한 점, 셋째, 일상적·현실적인 것과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을 그린 점 등인데, 이는 전기소설(傳奇小說)의 일반적인 성격이며 이런 점에서 중국소설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영향이 있었음을 보게 된다. 나아가서 이들 작품 세계는 인간성을 긍정하고 현실 속에서 제도(制度)·인습(因襲)·전쟁·인간의 운명 등과 강력히 대결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한편, 한국 소설의 발달과정에서 볼 때, 그때까지 조신설화(調信說話)에서 최치원(崔致遠) 설화를 거쳐 《국선생전(麴先生傳)》에 이르러 소설의 단계에 접근하였으며, 《금오신화》에 이르러 소설이라는 문학양식을 확립시켰고, 새 출발의 전기를 맞게 되어, 그 이후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책속으로

들보 위에 떡을 던지니

창공에 흰 무지개 손 뻗어 어루만지네

동해의 부상(扶桑)은 멀고 멀어 천만 리라

인간 세상 굽어보니 손바닥과 똑같네.



들보 아래에 떡을 던지니

어여뻐라 봄의 밭 이랑 아지랑이 껴 있네

성스러운 물 한 줄기 이곳에서 길어다가

온 누리에 비와 같이 뿌려보면 어떠리.



(중략)


원컨대 이 집을 이룩한 뒤에 화촉의 밤을 맞아서 만복이 함께하고 온갖 상서로운 것이 모두 모여들어 요궁(瑤宮)와 옥전(玉殿)에 구름이 찬란하여 원앙 이불과 봉황 베개에 즐거움이 한없으리라."



한생은 글쓰기를 마치자 곧 용왕에게 바쳤다.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세 손님에게 그 글을 보이니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용왕은 한생을 위하여 윤필연(潤筆宴)7)을 열었다. 한생이 물었다.

"저 많은 신(神)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높으신 성명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용왕은 말했다.


저자 소개

출생-사망: 1435 ~ 1493

본관: 강릉

호: 매월당·동봉·청한자·벽산

별칭: 법호 설잠, 시호 청간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서울

주요저서:《금오신화》《산거백영》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선 전기의 학자이다. 유·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탕유관서록》, 《탕유관동록》등을 정리했으며 《산거백영》을 썼다.



본관 강릉(江陵). 자 열경(悅卿). 호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 법호 설잠(雪岑). 시호 청간(淸簡).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私邸)에서 부친 김일성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神才)로 이름이 높았다.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無雨雷聲何處動 黃雲片片四方分)”라는 시를 읊었다 하며,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에게 불려가 총애를 받았다.



15세 되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가에 몸을 의탁했으나, 3년이 채 못 되어 외숙모도 별세하여 다시 상경했을 때는 아버지도 중병을 앓고 있었다. 이러한 가정적 역경 속에서 훈련원 도정(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그의 앞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이어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이라 하고 전국으로 방랑의 길을 떠났다. 북으로 안시향령(安市香嶺), 동으로 금강산과 오대산, 남으로 다도해(多島海)에 이르기까지 9년간을 방랑하면서 《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 《탕유관동록(宕遊關東錄)》 《탕유호남록(宕遊湖南錄)》 등을 정리하여 그 후지(後志)를 썼다.



1463년(세조 9)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 사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1465년(세조 11)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하였다. 2년 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圓覺寺)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召命)을 받고도 거절,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

목차

작품소개: 금오신화
저자소개: 김시습
1편.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2편.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
3편.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4편.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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