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마약 빼고 다 해봤네요.”
정형외과 의사인 혜주는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시달리다 결국엔 환자를 잃고 상실감에 터져버린다.
그에 잠시 휴가를 내고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이모를 만나러 간다.
공항에 도착한 혜주.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이모네 집으로 갈 생각으로 호텔을 가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괴한들 때문에 완전히 일정이 뒤바뀌게 된다.
자기 캐리어와 마약뭉치가 담긴 캐리어가 뒤바뀌는 사고 때문에 마약단속국 경찰 하담과 엮이게 되고, 처음에는 하담을 괴한들과 대립하는 어떤 갱일 거란 생각에 차갑게 대한다.
그러나 점차 위험하고도 아찔한 여행을 지속하면서 혜주는 하담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데....
“당신 미쳤어?! 내가 도망가라고 한 거 안보였어?!”
“와요? 아직도 뒤에 쫓아와요?!”
캔디가 뭐라고 하던지 나는 지금 제대로 반박할 이성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발은 아까부터 최대로 액셀을 밟고 있는 중이었고 두 손은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핸들을 꽉 붙잡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시선을 떼면 바로 전봇대에 부딪칠 상황이었다.
“아니 의사라며! 그렇게 상황파악이 안 돼? 기껏 도망치라고 해줬더니…!”
“아, 닥쳐요. 좀! 뒤에 쫓아오냐구요! 그것만 말해요!”
“안 와! 안 오니까 내가 안에 들어왔지!”
“지, 진짜요? 그럼 따돌린 거예요?”
“아. 위험하게!”
내가 혹시나 싶어 고개를 뒤로 돌리려 하자 캔디는 한 손으로 내 뺨을 쥐고선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았다. 나는 꽉 누르고 있던 엑셀을 조금씩 풀고 속도를 조절했다. 미친 듯 내달렸던 속도가 줄고 안정감이 생기자 나는 참았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와… 죽는 줄 알았네.”
“하, 참….”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캔디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What kind of woman do this?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아. 남이사.”
“남이사?”
“남 말하지 말라구요. 그러는 자기는 잘한 줄 알아요? 어떤 미친놈이 자기 방탄조끼를 남한테 주고서 총 앞에 서요?”
“미친놈이라니? 우린 어떤 경우에서도 민간인의 목숨이 우선이야.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어.”
“저도 그렇거든요? 내가 가면 죽을 게 뻔한데, 어떻게 그를 무시하고 가요?”
“어휴….”
또 저런 식이지. 캔디는 말을 말자는 식으로 짜증을 내고서는 온몸으로 짜증을 표출하며 좌석에 앉았다.
“그럼 역시 알고 있었던 거죠?”
“뭘?”
“그 사람들이 우리 옆에 있었다는 거요.”
“…….”
바로 입 다무는 거 봐. 진짜 그랬던 거야? 다 알면서도 그런 짓을 했다고?
“미쳤나 봐! 진짜 제정신이에요? 아무리 직업정신이 투철해도 그렇지…!”
“아, 의사라며!”
어디다 대고 짜증이람. 내가 한 마디 하려고 하자 캔디는 한숨을 쉬고선 뒷말을 이었다.
“살아있으면 또 몇 명은 살렸겠지.”
“…….”
…말하는 거 하곤. 따질 마음도 사라지게 하네.
“어쨌든 고마워요. 덕분에 여러 번 목숨 건지네요.”
“…남이사.”
뭐야. 고새 그거 배웠다고 써먹는 거야? 캔디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거 그럴 때 쓰는 말 아니거든요.”
“그래? 그럼 말고.”
내가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캔디도 같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한차례 긴장이 풀린 후라 그런지 한 번 터진 웃음은 끊길 줄을 모르고 계속 새어나왔다. 아직 어둠은 밝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 길은 멀었지만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있잖아요, 캔디.”
“왜.”
“어렸을 때 잘못을 숨겼을 때보다 지금이 더 세게 심장이 뛰어요.”
“좋은 거야?”
“아뇨….”
“그럼 나쁜 거?”
“잘 모르겠어요. 엄청 뛰는데 이러다 심장마비가 오면 어떡하죠?”
이제야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이 실감이 났다. 내가 불안함에 핸들을 꽉 쥐자 캔디는 조심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그를 토닥였다.
“괜찮아. 넌 잘했어. 다 지났으니까 숨 크게 쉬어.”
나는 캔디의 숨소리를 따라 크게 숨을 들이 내쉬었다. 타인의 체온이 닿아있고 이윽고 숨소리도 나란히 맞춰지자 세차던 심장박동도 조금씩 원래의 속도를 되찾았다. 캔디는 자상하게도 내가 원래 호흡을 되찾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될 때까지 날 계속 바라봐주었고, 내가 마지막으로 길게 호흡을 내뱉자 핸들을 잡고 있는 내 손 위를 가볍게 잡아 토닥여주었다.
“…잘했어.”
차분하고 깊은 캔디의 목소리, 입꼬리에 살짝 걸린 미소, 내 손을 토닥이는 체온, 꽉 쥔 핸들 사이로 느껴지는 긴장감, 울리는 차 안, 떨리는 심장박동….
어쩐지 이젠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