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자살 시도로 끝내 세상을 등진
‘일본의 천재 작가’이자 ‘영원한 청춘 문학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대표작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인 1948년 6월 13일, 도쿄 미타카를 흐르는 강 다마가와조스이玉川上水에 애인과 함께 뛰어들어 자살한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 공교롭게도 그의 시신은, 살아 있었다면 서른아홉 살 생일을 맞이했을 6월 19일에 수습되었다. 평생에 걸쳐 자살을 거듭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하다 기어이 목적을 달성한 그가, 목숨을 끊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해 문예지 『전망』에 연재하고 있던 작품이 바로 『인간 실격』이다.
소설가로 짐작되는 화자의 서문과 후기, 그리고 오바 요조라는 청년이 쓴 수기 세 편으로 구성된 『인간 실격』은 소설가가 우연히 보게 된 ‘기괴한’ 사진 석 장 속 인물, 즉 스물일곱의 모르핀중독자 요조가 거쳐온 삶의 각 시기를 암시하며 시작된다. 점점 나락에 빠져들며 주저앉게 되는 주인공 요조의 행적이 다자이 오사무의 생애와 두루 겹치는데다 의미심장한 자기 고백으로 이루어져 일종의 ‘유서’처럼 읽혀온 이 자전적 소설은 작가의 비극적 죽음과 맞물려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후 일본에서 젊은 시절 홍역처럼 앓기 마련인 ‘청춘의 문학’으로 자리잡은 『인간 실격』은 지금도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 되어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변주되며 새로운 독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문학동네는 우울과 파멸의 작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다자이의 밝고 유쾌한 면모를 보여주는 소설집 『쓰가루·석별·옛날이야기』를 출간한 데 이어, 그의 마지막 완성작이자 명실상부한 대표작 『인간 실격』을 홍은주 번역가의 치밀하고 섬세한 번역으로 선보인다.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세상과 불화하며 소외되어 파멸해간 주인공 오바 요조.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수치심을 일깨우며 폐부를 찌르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지금 우리에게도 생생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창작을 향한 열정을 꺾지 않았던 작가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마지막 결정체
일본에서 쇼와시대(1926~1989)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메이지시대(1868~1912)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유독 사랑받는 다자이 오사무. 일본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로도 일컬어지는 그는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의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생 시절에 동인지를 만들고 습작하며 일찌감치 작가의 꿈을 키워왔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 내력에 혐오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좌익 운동에 투신하는가 하면 자살을 수차례 기도하고 약물 중독이 극심해져 병원에 강제 수용되는 등, 다자이는 자기 파괴적인 파란만장한 인생사로도 유명하다. 그가 왜 자살을 그토록 여러 번 기도했는지는 추측이 난무하지만, 어려서부터 병약하고 심약해 자살 충동이 컸던데다, 부모님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여러 형제자매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탓에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어필하려 애썼다는 점, 난관을 만나면 돌파하기보다 회피하려는 성향을 지녔다는 점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미시마 유키오,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같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작가를 일본문학사에서 여럿 찾을 수 있지만, 다자이처럼 그리 길지 않은 생애 동안 비상한 의지로 죽음의 행위를 줄기차게 시도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죽음과 자살이란 주제는 다자이의 작품세계 곳곳에 등장하며,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다.
미수에 그친 자살 시도는 이후 작품 소재로 쓰이곤 해서, 특히 20대 초반에 카페 종업원과 함께 가마쿠라 바다에 뛰어들지만 혼자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경찰 조사를 받은 사건은 「광대의 꽃」(첫 창작집 『만년』에 수록)을 비롯한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며 『인간 실격』에도 주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그만큼 다자이에게 죽을 때까지 엄청난 죄책감을 안겨준 사건인데, 어떤 연유로 자살하려 마음먹었고, 혼자 살아남은 이후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가 소설 속 요조의 고백에 투영되어 있다. 죽기 한 해 전에 발표한 『사양』으로 인기 작가로 자리잡았으나 심신이 점점 피폐해지던 그는 야심찬 의욕으로 마지막 힘을 다해 쓴 『인간 실격』을 남기고 세상을 떠남으로써 자살의 구체적 동기가 무엇인지 당사자에게서 직접 알아낼 기회를 차단해버렸다. 그저 우리는 다자이가 남긴 작품을 통해 그것을 추정해볼 수 있을 뿐인데 그 첫머리에 놓이는 것이 바로 『인간 실격』이다.
“아무튼 인간들 눈에 거슬려선 안 된다, 나는 무無다, 바람이다, 하늘이다”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 요조가 돌아본 ‘부끄러운’ 생애
일본 도호쿠의 시골에서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자란 오바 요조. 남들 보기에 행복의 조건을 모두 갖춘 듯한 그는 인간과 인간의 삶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고통스럽고 전혀 행복하지 않다. 그런 속내를 감춘 채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으로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한 내면을 숨기며 살아갈 뿐 부모형제에게조차 고민을 털어놓거나 도움을 구하지 못한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익살꾼으로 인기를 얻지만 그 거짓된 연기가 하필 체격도 빈약하고 백치 같은 급우에게서 들통나자 요조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비밀이 탄로날까봐 입단속을 시키려 의도적으로 다가간 다케이치에게서 그는 두 가지 예언, 즉 여자깨나 홀리겠다는 예언과 위대한 화가가 될 거라는 예언을 듣는다. 도쿄의 고교에 진학해서는 여섯 살 연상의 미술학도 호리키를 따라 술, 담배, 매춘부, 전당포를 가까이 하게 되고 좌익 운동에도 가담하며 위태로이 살아간다. 생활고로 괴로워하던 중 긴자의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종업원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녀와 함께 바다에 뛰어들어 동반 자살을 기도하지만 혼자 살아남는다. 죄의식에 휩싸인 채 방황하다 아이가 딸린 잡지사 기자, 스탠드바 마담에게 차례로 얹혀산다. 그러다 스탠드바 인근의 담뱃가게 아가씨인 순진무구한 요시코를 만나 결혼해 만화가로 일하면서 모처럼 평범한 일상을 누리며 행복을 느낀다. “이러다 어쩌면 나도 머지않아 차차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비참하게 죽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은 것도 잠시, 아내 요시코에게서 일어난 끔찍한 일을 무력히 지켜보기만 하고는 폭음과 약물 중독으로 다시금 수렁에 빠지고 마는데……
다자이의 유서이자 자화상으로 읽혀온
일본 전후 문학의 독보적인 작품
『인간 실격』은 다자이가 또다른 대표작 『사양』을 탈고한 직후 구체적으로 구상해 1948년 3월부터 5월까지 집필해 완성한 작품이다. 갑자기 착상했다기보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치밀히 기획한 작품으로, 마치 죽음을 예감한 듯 지난 ‘부끄러운 생애’를 돌아보며 과오를 낱낱이 고백하는 수기 형식으로 썼다. 자전적 요소에 얼마간의 허구를 뒤섞고, 효과적인 액자소설 형식을 취했다. 불면증과 결핵 악화로 쇠약해져 각혈하는 와중에도 『인간 실격』을 사력을 다해 완성한 다자이는 『전망』 6월호에 서문과 첫번째 수기, 두번째 수기를 발표하고 나서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사양』이 전후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 반열에 오른 다자이의 충격적인 죽음은 아내와 세 아이를 두고 애인과 동반 자살했다는 점을 부각한 자극적인 보도로 전해지며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실격』의 나머지 분량은 ‘유고’ 형태로 발표되어 『전망』 7월호에 세번째 수기의 1이, 8월호에 세번째 수기의 2와 후기가 게재되었다. 그리고 7월 25일 지쿠마쇼보에서 미완의 단편 「굿바이」와 함께 출간된 『인간 실격』은 패전 후의 허망함과 가치관 혼란 속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던 젊은이들에게 특히 어필하며 반향을 일으켰고 일본에서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떨쳤다.
『인간 실격』에서 보듯, 특유의 자의식 과잉과 자기 연민으로 인해 다자이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기 마련인 굴욕과 자기혐오, 소외감을 너무나 통렬하게 마음에 와닿도록 묘사한다는 점에서 시공을 초월해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생전의 다자이를 만난 적 있고 그의 작품이 싫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결국 다자이의 재능을 인정한 미시마 유키오가 “나 자신이 가장 숨기고 싶어했던 부분을 일부러 드러내는 유형의 작가여서” 생리적 반발을 느꼈노라고 술회했을 정도다. 다자이는 무겁고 암울한 이미지가 강한 작가이긴 하나,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 입담 좋고 유머러스한 면모도 지니고 있다. 『인간 실격』에서는 요조에게 호감을 품고 다가오는 하숙집 딸, 좌익 운동의 동지인 여자고등사범학교 문과생과의 일화, 맛없는 초밥집 주인장 묘사 등에서 그런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 읽는 맛을 더해준다.
새로이 태어나는 젊은 독자층의 지지를 받으며 ‘영원한 청춘 문학’으로 자리매김한 『인간 실격』은 나날이 생명력을 더해가고 있다. 2009년 다자이 오사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영화, 애니메이션, 라디오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호러적 상상력을 발휘해 『인간 실격』을 색다르게 각색한 이토 준지의 만화가 2017년 발표되어 화제를 모았다. 『인간 실격』을 집필하고 자살하기 직전의 다자이와 세 여자(아내, 다자이의 혼외자를 낳은 오타 시즈코, 다자이와 동반 자살한 야마자키 도미에)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2019년 공개되기도 했다. 활발한 미디어믹스로 인지도를 더욱 높인 『인간 실격』은 세계 각국에 번역 소개되어 인간의 소외감과 고독을 정면에서 응시하는 작품으로서, 여전히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