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소설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가 그려낸
심장이 얼어붙고, 내려앉고, 뒤틀리는 감각
삶과 이성을 뒤흔드는 ‘두려움’이라는 음침한 환영
추리소설의 선구자이자 공포소설의 대가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어셔가의 몰락」이 문학동네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1832년 단편 「병 속의 수기」를 처음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에드거 앨런 포는 1849년 사망할 때까지 20년이 채 되지 않는 비교적 짧은 기간 작품을 발표했지만, 미국문학과 세계문학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현대 장르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물론, 보들레르, 말라르메, 도스토옙스키 등 문학의 거장들에게 영감을 주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어셔가의 몰락」은 1839년 처음 잡지에 발표된 뒤 포의 단편 25편을 엮은 『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이야기』에 수록된 작품으로, 기이하고 음산한 저택에서 비이성적 공포와 광기에 시달리는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고딕소설과 환상문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낡은 저택의 벽면을 가로지르는 균열과 뒤이은 저택의 붕괴, 그리고 인간의 이성과 정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겹쳐 그리며 정교한 심리적 공포를 완성해낸 이 작품은 무성영화부터 넷플릭스 시리즈까지 여러 차례 영상화되면서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와 관객에게 섬뜩한 전율을 선사해왔다.
아구스틴 코모토의 강렬한 화풍으로 그려낸
어셔가의 저택, 그리고 인간 내면의 공포와 불안
작품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는 아르헨티나 출생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인 아구스틴 코모토의 삽화로 더욱 강조된다.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등장인물의 고뇌와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냈던 작가는, 베테랑 작가다운 과감한 필치로 「어셔가의 몰락」 속 공포와 심리를 완벽하게 그려 보인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견딜 수 없는 우울감”을 불러일으키는 어셔가의 저택, 정교하게 구축된 인간 내면의 균열과 불안,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재는 강렬하고 극적인 삽화로 표현되어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어셔가를 떠올릴 때
나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도저히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였다.”
어느 흐리고 적막한 가을날, 화자인 ‘나’는 어린 시절 친구인 로더릭 어셔가 살고 있는 외딴 저택을 찾아간다. 얼마 전 로더릭이 자신의 심각한 질병에 대해 토로하며 화자와의 만남을 통해 활력을 얻는다면 병세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그 편지에 선명하게 드러난 초조와 불안을 읽은 화자는 어셔가의 저택을 방문하고, 검고 불길한 호수 옆에 자리한 저택의 음산하고 침울한 외관을 보고 불가사의한 우울감을 느낀다.
로더릭은 병적으로 예민한 감각에 시달리며 쇠약해진 상태였다. 시각, 후각, 촉각 등 거의 모든 종류의 감각에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며 그 두려움의 환영과 사투를 벌이다 삶과 이성을 내던지는 날이 곧 오리라는 비관적 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이 저택이 지닌 어떤 힘이 자신의 정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로더릭의 우울에는 그가 다정히 아끼는 누이 매들린이 오랜 지병을 앓고 있고 곧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도 영향을 끼쳐왔다. 일반적이지 않은 증세를 보이며 점차 쇠약해져가던 매들린은 이미 병에 굴복해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고, 화자가 저택에 머물고 있던 중 세상을 떠난다.
로더릭은 가족 묘지가 너무 멀어 누이의 시신을 저택 본채의 지하실에 2주간 안치할 거라며 화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화자는 로더릭과 함께 시신을 관에 넣은 뒤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로 옮긴다. 그리고 얼마 뒤, “폭풍이 몰아치기는 하지만 황량하게 아름다운 밤, 공포와 아름다움이 극도로 탁월한 밤”에 로더릭의 두려움은 뚜렷한 실체를 갖추고 문을 두드린다.
고딕소설의 형식을 완성한 에드거 앨런 포의 선구성과 독창성
「어셔가의 몰락」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저택 그 자체다. “음산한 벽”과 “텅 빈 눈 같은 창문들”은 도저히 떨칠 수 없는 침울한 비관과 소름 끼치는 떨림을 자아내고, “건물 전면의 지붕에서부터 벽을 타고 비뚤배뚤한 선을 그리며 내려와 호수의 우중충한 물속으로 사라지는 보일 듯 말 듯한 균열”은 불안감을 한층 고조시킨다. 에드거 앨런 포는 이 단편을 통해 단순히 저택이 무너지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저택이라는 외부의 공간과 그 안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남매의 내면을 완전히 겹쳐놓는다. 낡은 저택의 틈새로 스며든 어둠과 저택의 붕괴를 가문의 몰락, 그리고 ‘이성의 틈새’로부터 시작된 인간 정신의 붕괴와 연결시킨 것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고딕소설의 진면모를 드러내며 이 장르의 형식을 완성한 포의 선구성과 독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