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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의 배신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군주의 배신

소장종이책 정가13,000
전자책 정가50%6,500
판매가6,500
군주의 배신 표지 이미지

군주의 배신작품 소개

<군주의 배신> ■ 책 소개

연이은 선조의 배신이 낳은 참담한 비극!
임진왜란 당시의 시대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지선환 역사소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그렇기에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승자의 기록에 묻혀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집필 의도가 너무나 소중하다. 지루해지기 쉬운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임에도 역동적인 전투나 남녀 간의 미묘한 감정의 흐름도 섬세하게 싣고 있다. 또한 ‘보부상 서신’을 중간중간 삽입해 당대 정세를 밝히고 있는 등 다양한 장치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임진왜란의 묻혔던 역사까지 파악하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광복(소설가·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민본의 가치를 표방한 조선조 역시 민중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왕본과 민본의 사상적 투쟁사였다. 그러나 조선조의 역사에서도 민본의 가치는 체현되어 있지 않고 그 기록들은 너무나 축소·왜곡되어 전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역사를 되살려내고 그 가치와 의의를 재조명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국민주권시대 민본의 가치가 전 영역에 투영되고 있는 현재의 시대정신이 우리들에게 엄준하게 요구하고 있는 바라 할 것이다.
『군주의 배신』은 이미 지나간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숭고한 한 지성에 의하여 다시 쓴 이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역사에서 피로 얼룩진 인간의 처절한 절규를 넘어 숭고한 영혼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도훈(국가원로회의 교육연수원장)


■ 본문 - ‘서문’

조선을 건국하면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일파는 유학의 덕목을 국가운영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백성들에게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가르쳤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이들은 무지몽매(無知蒙昧)한 백성들에게 군주는 어버이와 같다고 가르치면서 믿고 따르도록 세뇌시켰다.

군주(君主)의 배신(背信).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백성들의 어버이였던 조선의 군주 선조는 도성인 한양과 백성들을 버리고 야반도주하여 백성들의 믿음을 배신했고, 분노한 백성들은 임금이 살던 궁궐을 불태웠다.
평양성으로 도망간 선조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평양성에서 백성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했지만, 왜군들이 임진강을 건너자 부랴부랴 행장을 꾸려서 평양성을 빠져나갔고, 백성들은 어가에 침을 뱉고 돌을 던졌다. 군주인 선조의 두 번째 배신이었다.
북으로 도주하여 의주에 당도한 선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선의 땅과 백성들을 버리고 명나라로 가서 제후 행세나 하면서 살겠다고 명나라의 조정에 망명신청을 하여 백성들을 배신하였으니, 이것이 세 번째 배신이었다.
거듭되는 조선의 군주 선조의 배신에 이 땅의 백성들은 절망했고, 그 결과 수많은 백성들이 왜군에 가담하여 조선인을 향해서 조총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백성들은 의병을 가장한 도적의 무리가 되어 도처에서 동족을 죽이고 약탈을 자행하였다.
임진왜란은 일면 배신자들의 전쟁이기도 했었다.
이렇듯 백성들에게 임금은 어버이와 같다고 가르쳤던 군주의 배신은 수많은 배신을 양산하였다. 또한 선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날 때까지 백성들에 대한 배신을 계속하였으니, 그는 가히 오천 년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배신의 아이콘임에 틀림이 없다.

군왕 선조에게 버려진 백성들.
그들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누구를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가? 임진왜란 당시 군주가 보호해 주지 않아서 스스로의 판단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야 했던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 누가 그들의 선택에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무룡산을 여러 번 올랐다. 무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동해바다와 무룡산 자락이 너무도 황홀하다. 이 아름다운 국토를 지키기 위해서 수백 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분들이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 흘린 핏값으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우경화된 일본의 독도에 대한 야욕이 도를 넘고 있다. 우리가 자칫 방심하면 저들에게 우리 영토의 일부인 독도를 빼앗길 수도 있다. 아베정권의 움직임이 이렇게 노골적인데, 일본제국주의 치하의 36년이라는 식민통치를 경험하고도 그들의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몇몇 정신 나간 종교지도자들이 임진왜란에서 일본이 승리를 했어야 한다고 막말을 한다. 그 이유인즉 일본의 왜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가톨릭의 일종인 기리시탄(일본화된 가톨릭) 신자이고, 전투를 할 때는 항상 붉은색 바탕에 흰색의 십자가가 그려진 군기를 앞세워서 전쟁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기리시탄에서 창조주는 유일신이 아닌 여러 신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리시탄은 명백히 십계명에 위배되는 변형된 이단종교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가톨릭의 전파가 우리보다 수백 년 앞선 일본에선 예수회 신부들의 적극적인 포교에도 불구하고 기리시탄은 늘어나지 않았고, 수백 년을 산속에 숨어서 신앙생활을 해야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은 가톨릭 신자의 수가 한국보다 훨씬 적다. 인구비례로 따지면 더 형편없는 수준이다.
한 손으로는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총칼을 드는 이슬람식 정복전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십자가만 앞세우면 모든 게 정의인양 떠들며, 저 간악한 왜인들의 마수에서 조국을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을 이교도의 괴수로 부르는 한심한 사람들이 일본이 아닌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

필자는 소설 속에서는 왜란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임진왜란은 조일전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임진왜란은 단순히 조선과 왜국의 전쟁이 아니다. 왜국과 왜국을 지원한 포르투갈, 로마가톨릭의 예수회가 한통속이 되어서 조선을 침략하고 조선과 명이 방어를 한 16세기 최대의 국제전쟁이다. 당시 왜국에 거주하며 중계무역상 역할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 포르투갈 출신의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가 쓴 『일본사』를 읽어보면 이 전쟁의 성격도 일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조선을 침략한 왜군 진영에 다수의 서양인이 포함되어 있었고, 예수회 소속의 세르페데스 신부가 고니시의 군영에서 수시로 왜군의 명복을 비는 미사를 드렸던 것으로 보아서 왜국이 단독으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으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지배층의 기록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소위 정사만을 참고로 역사서를 편찬하면 역사적 진실이 묻히고 역사가 왜곡되기 마련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많은 부분의 기록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이순신의 『난중일기』, 류성룡의 『징비록』, 『간양록』 등 수많은 기록서를 통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밖에도 많은 의병장들이 임진왜란에 대한 것을 일기 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다.
필자는 울산과 경주, 창녕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많은 활약을 한 충숙공 이예의 후손 이경연이 쓴 『제월당실기』와 울산 지역 의병장 중에서 활약이 가장 뛰어났던 것으로 평가되는 서인충 장군의 행적을 기록한 『망조당유사』, 무룡산 자락에서 태어난 의병장 윤홍명의 『화암실기』, 경주 출신의 의병장 이눌이 쓴 『낙의재유집』을 참고자료로 사용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부분에 대한 야사를 접하면서 임진왜란의 참담함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승자의 기록에 묻혀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라도 알리고 싶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알게 된 인물들의 추악한 이면을 보면서, 자신의 가문에서 정승판서를 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측은하게 생각되었다.
‘저런 조상도 단순히 벼슬을 했다는 이유로 자랑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이완용의 자손들이 자신의 조상이 대한제국에서 대신을 지냈다고 자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대신을 역임했으니 생각 없는 후손들이라면 그런 조상이 자랑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선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선조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서 알아본 후의 개인적인 평가는 조선의 역사상 최악의 임금이 바로 선조라는 것이다. 선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선조가 끊임없이 이순신을 죽이려 했던 사실까지도 그럴만해서 그런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런가 하면 의병장 김덕령의 죽음까지도 선조의 잘못이 아니라 단순히 조정 대신들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잣대로 생각하면 오늘날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이 욕먹을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절대왕조시대에는 임금이 곧 국가이기에 백성들은 다 죽어도 나만 살면 된다는 것이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통치의 대상인 백성들의 수보다 중요한 것이 왕권의 유지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 애쓰다가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보다 백성의 9할을 잃더라도 왕권만 유지되면 그게 임금에게는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맹자는 그의 저서 『맹자』에서 민(民)이 위귀(爲貴)하고, 사직(社稷)이 차지(次之)하고, 군(君)이 위경(爲輕)이라고 했다. 백성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사직이고 임금은 맨 나중으로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왕도정치요, 민본정치일 것이다. 백성을 외면한 왕은 이미 왕으로서의 자격을 잃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의 역사책은 임진왜란 당시에 요시라의 간계에 속아서 통제사 이순신을 체포하고 고문한 것처럼 되어있지만, 첩자의 말만 믿고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전장의 최고사령관을 교체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조선 조정이나 선조가 첩자의 정보를 역이용해서 막강한 수군함대를 보유하여 그들의 골치를 아프게 한 이순신을 제거하려 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중첩자 요시라가 그의 조국인 왜(일본)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에 망명신청을 했다는 사실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절대왕조시대에는 군왕과 지배층이 토지의 대부분을 점유하여 그것을 무기로 백성들을 부리고 통제하였지만, 진정한 땅의 주인은 그곳에서 경작하며, 그 땅을 밟고 살아가는 백성들이다. 땅은 누가 소유권을 행사하느냐와 관계없이 그 땅을 터 잡아 살아가는 백성들의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단재 신채호는 말했다. 조선총독부 산하에 있는 조선사편수회를 이끌며 단군에서 조선왕조까지 우리 역사를 조작했던 일본의 역사학자는 1945년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섬뜩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조선에서 철수하지만, 조선인들은 향후 100년 동안 우리가 만든 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올해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이 조작해놓은 역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의 철저한 자료 파괴와 조작으로 인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해서 아직도 교과서 곳곳에 남아있는 식민사관을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교육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학계의 주류인 실증사학의 양보가 없다면, 일본 역사학자의 말처럼 30년이 더 지나야 식민사관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연유로 필자는 황석역사연구소에서 10년간 연구한 『황석산성 전투』 내용의 일부를 소설에 차용했다.
부디 이 소설이 우리 역사 바로잡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저자 소개

지선환

충북 제천 출생으로 울산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울산지역의 백화점에 근무하다 직장을 그만두고 한때 자영업을 했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글쓰기에 대한 열병을 앓고 나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다양한 카페에서 활동을 하였고,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블로그도 만들었다.

2011년 6월에 『조율(화성501)』이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하고, 그해 8월에는 <문학저널>의 김창동 작가님과 인연이 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6월부터는 인터넷 일간지에 ‘청너울 지선환의 행복한 세상 만들기’라는 코너를 마련하여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그해 11월에 산문집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출간하였다.

E-mail: seon8914@hanmail.net

목차

만남
포르투갈의 바탈랴 수도원
고니시 유키나가의 십자가 군기
의병장 윤홍명과 이눌
선조, 의병장 김덕령을 친국하다
불패의 달령 전투
정유재란과 이중첩자 요시라
땅을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광명세상을 꿈꾸는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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