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노르웨이 북셀러상, 카펠렌상 수상작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소녀, 에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차별, 외로움 속에서도
사랑을 갈망하는 특별한 소녀의 장엄한 성장기
《사자를 닮은 소녀》는 《여정의 끝에서 울리는 노래(Salme ved reisens slutt)》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에릭 포스네스 한센의 장편소설이다. 2016년 동명 영화로 제작되면서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등 10여 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소설은 성인이 되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해외 곳곳에서 공연하는 에바가 무대에 오르기 직전, 그녀를 소개하는 서커스 단장의 광고 멘트로 시작한다. 익숙할 때도 되었지만 그녀는 불편한 옷을 걸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쩐지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곧 걷힐 장막 너머의 당신을,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를 초대한다. 1912년, 온몸이 황금빛 털로 뒤덮인 채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그해 기차역이 있는 작은 마을로.
당신도 더 가까이 오세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벌써 만났을지도 모를 당신. 내가 보이나요? 이제 나를 볼 수 있나요? 더 가까이 오세요.
-《사자를 닮은 소녀》 중에서
언덕길에 쌓인 눈이 푸른 물결처럼 보이고 신비한 오로라가 북쪽 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추운 겨울밤, 루트 아르크탄데르는 특이한 외모를 지닌 여자아이를 낳고 숨을 거둔다. 남편인 구스타브 아르크탄데르 역장은 젊은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커다란 시련을 마주해야 했다.
“아이도 보셔야죠?”
구스타브 아르크탄데르는 어두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멍하니 의사를 바라보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비르게르손 부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에 안긴 갓난아기에게 시선을 던졌다.
“세상에!” 그가 외마디 소리를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사자를 닮은 소녀》 중에서
구스타브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스라소니를 닮은 갓난아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가 목숨과 바꿔서 세상에 내놓은 아이를 안아 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환영받아 마땅한 세례식 또한 아주 단출하고 비밀스럽게 치렀다. 이름을 지어 줘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세례식 도중에 의사 레빈이 성경에 나오는 인류의 어머니이자 여성을 의미하며 모든 여성상을 대표하는 이름, 에바(Eva)를 떠올린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아버지 구스타브가 고용한 유모 한나의 보살핌을 받으며 세상과 단절된 채 외로운 인생 여정을 시작한다.
에바는 조금씩 자라면서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버지의 면도기로 팔에 난 털을 모두 밀어 보기도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털로 뒤덮여 연약한 피부에 거친 상처를 낼 뿐 털은 이내 빽빽하게 자라났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혼자서 카드놀이를 하거나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다행히 기차역에서 근무하는 무선기사 멜비그에게 모스부호를 배우며 우정을 나누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지금 무엇을 보고 있니?
친구라곤 한 명도 없는 작은 소녀를 보고 있니? 기차역 관사 2층에 홀로 앉아 카드 게임을 하거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소녀여.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비스듬히 돌린 채 앉아 있는 소녀여.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사자를 닮은 소녀》 중에서
어느새 에바는 학교 갈 나이가 되었고, 아버지 구스타브는 주변의 설득을 이기지 못해 다른 아이들이 있는 바깥세상에 딸을 내보내기로 한다. 현실은 생각보다 더 냉혹했다. 에바는 아이들의 따돌림과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햇살 쏟아지는 강물의 재바른 물고기처럼 교문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사라지는 기술도 터득하여 아무도 찾지 않는 숲속의 커다란 바위에 올라 홀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한 그곳에서 같은 반의 아르비드를 마주한다. 에바 몰래 뒤를 따라온 것이다.
“다음에 여기 또 와도 될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비옷을 입고 바위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숨겨 둔 덤불로 걸어갔다. 그가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켜 시선으로 그녀를 따랐다.
“여기 다시 와도 되니?” 그가 소리쳤다.
그녀는 그에게 흘낏 눈길을 던지고 대답 대신 크게 소리쳤다. “아르비드!”
“응. 왜?” 그의 목소리는 깊은 호수처럼 어둡고 부드러웠다.
“안녕! 잘 가!”
그녀는 자전거에 몸을 싣고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렸다.
햇살과 보슬비 사이로.
-《사자를 닮은 소녀》 중에서
사춘기에 접어든 에바는 아르비드와 가까워지면서 사랑이라는 감정과 성에 눈을 뜬다. 한편 온몸이 털로 뒤덮은 원인과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의학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총회는 쉽지 않은 자리였다. 수많은 의사와 연구자들 앞에서 속옷만 걸친 몸을 보여 줘야 했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갑자기 털을 잘라내는 순간에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기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 밤 우연히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안드레이 보르라는 남자를 만나 요아킴 교수가 운영하는 유람단과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단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