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쌍둥이 형제의 텔레파시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쌍둥이 형제의 텔레파시

배정호 장편소설
소장전자책 정가5,900
판매가5,900

쌍둥이 형제의 텔레파시작품 소개

<쌍둥이 형제의 텔레파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대학교수가 쓴 장편소설.
쌍둥이 형재애에 대한 이야기인데 실제로 저자도 쌍둥이다.
저자의 동생은 베트남 국가대표 트레이너이다.

고아원에서 서로 생김새가 다른 형제가 매일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민이는 성장발육이 늦어 아이들로부턴 놀림감의 대상였다. 민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민이는 항상 준이에게 의존한다. 또한 준이에게 신장을 공여 받은 민이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며, 더욱더 준이에게 의존한다.
준이는 민이를 돌보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자라면서 형인 준이가 양부모를 만나 고아원을 나가게 된다. 민이는 광수패거리에 더욱더 괴롭힘을 당하다가 고아원을 나와 눈물의 시간을 보낸다.
그때 시장에서 방황하던 민이를 한 노인이 산속에 데려가 돌보면서 민이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젊었을 때 무술의 대가였던 노인에게 민이는 각종 무술을 전수 받고 또한 수련을 통해 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한편 준이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면서,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가 된다. 준이와 민이는 다른 환경에서 지냈지만 민이는 자신이 준이의 분신이라고 생각하여 성인이 되서도 준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민이는 준이를 괴롭히는 자들을 응징했다.

한편 준이형제를 괴롭히던 광수패거리는 조직 폭력단체를 만들어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다.
준이는 그들을 검거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민이는 준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준이의 일을 돕게 된다. 민이는 준이를 대신하여 조직폭력단체를 하나씩 무너뜨린다. 준이는 민이가 한 일들을 알게 되지만, 법과 형제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민이는 준이를 돕기 위해 광수 패거리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러나 광수파는 준이를 조종하기 위해 준이의 아내인 경아를 납치하지만, 민이가 전면에 나와 준이와 함께 광수파와 대적하는데...


출판사 서평

– 우리 형제 스토리
쌍둥이는 특별한 형제는 아니나 그렇다고 일반 형제들과 다른 면이 많이 있다.

나 역시 어릴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형제애가 있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아기 때부터 얼굴이 똑같았다. 생년월일도 같다. 단지 우리는 서로 태어난 시간만 15분 차이가 난다. 내가 형이라고 한다.
걸음마를 시작하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나와 가족이라는 것을 서로가 알아 볼 때 쯤부터
쌍둥이인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우리는 어릴 적에는 항상 옷도 같은 것과 그리고 같은 색깔을 입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나이임에도 울며 같은 옷을 원한다. 그렇듯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잠들고 함께 우유를 먹고 또한 함께 키워지면서 쌍둥이만의강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유달리 활발하게 뛰어 놀았다.
우리는 5살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둘이서 매일 찼다. 우리는 항상 함께 다녔고 항상 둘이서 함께 공을 찼다. 둘이서 축구공만 있으면 하루 종일 재미있었다.
우리는 친구가 필요 없었고 또한 항상 파트너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혼자 있는 날은 없었다.

우리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항상 같은 반을 배정받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가 떨어져 생활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같은 반에 있어야 한다고 선생님께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에 학교 축구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함께 공격수를 배정받았다. 우리 둘은 아주 어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축구를 잘했다. 지역에서는 신동 소리를 듣기도 했다.
우리는 더욱더 함께 다니며 축구에 몰두했다. 가끔 지역 신문에 쌍둥이 형제에 대해 게재도 되었다.
우리는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표 한 장으로 둘이 타기도 했다. 처음에는 실수로 표 한 장만 끊어서 탔지만 그것이 우리만이 가지는 유용한 방법이라고 깨닫고 가끔 쌍둥이의 장점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것이 그때는 재미있었다.
또한 쌍둥이는 혼자가 아니라 항상 둘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싸울 때도 유리했다.
나는 동생이 다른 아이와 싸우면 항상 동생을 거들어 상대 아이를 패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쌍둥이의 유리한 잇점이다.
우리가 축구경기를 할 때는 상대편 선수들도 속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우리는 포지션이 서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이서 공격 라인에서 움직이면 상대 수비수는 어쩔줄 몰라 했다.
똑 같은 형제가 둘이서 서로 위치를 바꿔가며 움직이다 보니 상대 수비수들이 누구를 방어해야 할지 헛갈리는 표정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항상 재미있는 추억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꼭 쌍둥이라고 함께 잘 지내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나는 괜히 욕심이 났다. 그리고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서로가 골을 넣기 위해 더욱더 열심히 뛰었던 것 같다.
그렇게 쌍둥이들은 경쟁심리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패스를 잘못하거나 골을 넣지 못하면 동생은 나에게 화를 낸다.
골을 넣어야 하는 찬스에서 내가 실수를 하면 동생은 그것이 안타깝고 또한 자신이 넣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가져서인지 나에게 화를 내었다.
쌍둥이는 그렇게 서로 경쟁과 사랑을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다만 나는 형이라고 명명하고 아기 때부터 자랐기 때문에 형으로서 항상 동생을 위해 먼저 양보하고 동생에게는 나의 개인적인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그런 나에게 더욱더 형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해 주었고, 그것은 일종의 책임감을 더 가졌던 것 같다. 그것은 나중에 남다른 형제애의 밑거름이 되었던 같다.

우리가 중학교 다닐 때는 내가 동생보다 공부를 더 잘했다. 한 번은 중간고사를 치를 때였다.
나는 공부를 곧 잘 했기 때문에 어떤 과목 시간에 나는 먼저 시험을 마치고 나왔다.
교실을 보니 아직 동생은 아직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다.
동생은 화장실이 급하다고 선생님께 말하고 잠깐 나왔다. 그때 나는 동생을 대신해 동생자리에 가서 시험을 치루고 나온 기억이 있다.
그것이 지금은 큰 죄가 되지만 과거에는 그것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자주 그러지 않았지만, 오직 쌍둥이만이 가지는 에피소드 일 것이다.
우리는 축구경기를 할 때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도 했다. 동생이 열심히 잘 할 때는 나 역시 열심히 뛰었다. 또한 동생이 부진할 때 나는 동생에게 화를 냈다. 그것은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다른 선수들이나 감독님의 눈치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눈치를 많이 봤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는 소변을 볼 때나 또는 대변을 볼 때도 거의 시간이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는 먹는 것도 같이 먹고 같은 시간에 먹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여학생과 미팅도 대신해 나갔다.
나는 동생을 대신해 미팅에 참여 했다가 그 여학생과 좋은 사이가 되면 동생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그때는 서로가 결혼을 할 상대를 만나려는 감정이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순수하게 여자를 친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쌍둥이가 아니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러나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생이 가끔 사고를 저지르면 나에게 화가 미친다.
동생에게 두들겨 맞은 아이의 부모가 때로는 나에게 화풀이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동생의 형이고 또한 서로가 쌍둥이라고 그들은 몰랐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맞은 어떤 애는 친구들을 데려와 나를 동생으로 알고 나를 두들겨 패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러는 사이 동생이 나타나 함께 그들에게 대항하자 그들의 표정이 이상야릇한 것을 잊을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나는 동생의 경기장에 틈만 나면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용돈을 모아 동생에게 주고 왔다.
한 번은 축구대회에 출전한 동생의 팀이 전반전에 지고 있었다.
전반전 중반이 될 무렵 경기장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전반전에 동생팀은 1대0으로 지고 마쳤다. 관중 모두가 비를 피해 자리를 옮겼지만, 나는 그 많은 비를 맞고 자리를 지키면서 앉아있었다.
나는 며칠전에 발바닥에 종기가 심하게 나서 거의 걷지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동생의 경기장에 겨우 찾아갔다.
동생은 후반전 시작하면서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동생은 내가 비를 다 맞고 앉아 있는 것을 슬쩍 보았다. 그리고 후반전 시작한지 5분만에 동생이 골을 넣었다. 나는 그날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동생은 내가 잘 걷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찾아갔고 동생은 그것을 안다.
동생은 초인적인 힘으로 경기를 뛰었다. 그것이 쌍둥이 일거라 생각한다.

대학교 때 내가 미팅으로 만나던 여자를 다시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중간에 화장실에 잠깐 간 사이 동생이 들어와 그 여자를 모른척 해서 그 여자가 오해를 하고 나간적도 잇다. 아마 그 여자는 내가 갑자기 모른척해서 나를 돌아이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쌍둥이로 지내면서 에피소드 많았던 것 같다.
더욱 웃긴 것은 쌍둥이가 쌍둥이를 만난 일일 것이다.
중학교때 우리는 축구하는 쌍둥이였고 다른 반에 야구하는 쌍둥이가 있었다.
그들은 우릴 보면 항상 헛갈려 했다. 우리도 역시 그들은 매일 보면서도 헛갈려 했다.
그리고 내가 한 번은 쌍둥이 여자 중 한 명을 사귄적 있는데 그녀는 언니 였다.
어느 날 그녀의 여동생이 함께 나와서 나는 누가 나의 여자 친구인지 그들이 서로 오고 갈 때마다 몰랐다. 그때 나는 남들이 우리 쌍둥이 형제를 어떻게 생각할지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대학에 입학할 시기에 시련도 찾아왔다. 나는 공부를 곧 잘해서 국립대학교 체육과를 입학했는데 동생은 그해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동생은 매일 밤마다 11시가 넘어 강둑에 가서 런닝을 했다. 가로등도 없는 강둑은 깜깜했고, 소를끼치는 오싹함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 날 동생은 나에게 부탁을 했다. 밤에 강둑에서 운동을 하는데 너무 무섭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밤 동생과 함께 강둑에 나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동생은 뛰었다.
한번은 동동묘지를 지나가는데 둘은 너무 무서워 서로 아무말도 못하고, 동생은 무섭게 뛰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 자전거 패달을 밟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동생과 나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12시가 넘어서 자주 공 하나를 가지고 갔다.
처음에는 공이 내 옆을 지나가는 것도 몰랐다.
우리는 처음에는 공이 옆을 지나가는 것을 주우러 가기 바빴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은 엄청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점차 우리는 공을 발로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공을 목적지에 찰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 밤 칠흙 같은 어둠에서 축구를 하다 보니 반응감각이 좋아졌다.
동생은 나를 안고 그리고 업고 수십개의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운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노력들이 동생이 최고의 축구지도자가 되는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텔레파시가 통했다.

동생이 축구부 숙소에서 방안에 들어온 가스를 마시고 쓰러져 있을 때 나는 자다 꿈을 꾸었다. 그리고 나는 부모에게 말해서 학교에 연락해서 동생을 구한 적도 있었다.
나는 거의 꿈을 꾸지 않는다. 그리고 그후에 다시 나는 꿈을 꾸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나의 기분이 다운되어 동생에게 연락하자 동생은 다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시간차이는 있지만 동생이 다치면 항상 나도 역시 똑같이 다쳤다.
그것은 아직도 나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항상 서로가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면서 살다보니 그 애틋함 역시 남달랐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인천에 있는 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독일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독일 유학을 위해 준비를 마치고 떠날 날만 기다리던 중 어느 날 동생이 나에게 독일 축구유학을 가겠다고 말했다. 동생은 내가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줄 몰랐다.
동생은 나에게 자신이 독일 유학에 필요한 비용을 일정기간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아무말 하지 않고 허락을 했다.
나 역시 독일에 유학을 가기 위해 몇 년을 정보를 수집했고 또한 몇 달을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동생의 꿈을 위해 나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학교 운동자에서 체육수업을 하고 있을 때 동생이 독일로 떠나는 시간에 항공기가 학교 교정 위에서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말고 그 비행기를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 몰래 흐르는 눈물을 팔소매로 훔쳤다.
그리고 3일 후 독일에서 동생이 전화를 했다. 자신은 잘 도착했고, 곧 어학원에 들어갈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 후에 매달 동생의 생활비를 보냈다.
그렇게 동생은 독일에서 어학을 마치고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4년 조금 넘게 지내면서 동생은 독일 축구협회 주관 유럽 축구지도자 자격증을 전부 취득했다. 한국인으로서는 독일에서 유럽1급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최초의 한국선수였다.
동생은 한국으로 돌아와 축구훈련 지도서를 12권을 집필했다.
그리고 대한축구협회 임원과 각 프로축구구단의 코치 그리고 2002년 기술위원과 전세계 심판 관리위원, 한국인 최초 태국 프로축구팀 감독, 그리고 베트남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또 한 번의 신화를 쓰기 위해 지금 말레이시아 19세 감독을 맡고 있다.

나는 동생으로 인해 나의 꿈을 접었다. 그러나 나는 후회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고 받아 들이면서 살았다. 그리고 50살이 훨씬 넘어 나는 내가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나의 꿈을 위해 독일에 결국 왔다.
지금은 내가 유학에 대한 꿈을 가졌을 때와는 다르다.
그러난 나는 결국 독일에 와서 이제는 제자들이 성공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는 쌍둥이 형제의 애틋한 사랑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소설형식을 빌어 쌍둥이의 형제애와 희생을 나타냈다.
어떤 형식의 글로 표현하던 그 속에 담긴 사랑과 희생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라건대 소설속의 주인공과 현실의 주인공의 마음 역시 같다는 것을 믿어 주길 바란다.


저자 소개

배정호

경희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졸업. 체육교사, 광운대학교 체육 교수.
한국사회체육진흥회 교육자문위원
한국일보 인터넷 축구전문사이트 기고위원
뉴질랜드 한국학교 교사 및 축구부 감독
2002년 한일월드컵 및 프로축구선수 에이젼트(AI 스포츠)회사 이사 (이운재, 김남일, 이천수, 이동국, 안정환 등 다수)
대전시 중구청 축구단 감독
대전시 중구 생활체육회 사무국장
충북 영동군 정수중학교 축구부 감독
현 독일 뒤셀도르프 벤라트 B-Jugend 트레이너
뒤셀도르프 한국선수들 전담 트레이너

목차

서문 – 우리 형제 스토리
불우한 어린 시절
형제의 이별
사랑과 불행의 시작
악연의 끈
조직간의 전쟁
의문의 남자
형의 그림자
형제의 마지막 재회


리뷰

구매자 별점

5.0

점수비율
  • 5
  • 4
  • 3
  • 2
  • 1

1명이 평가함

리뷰 작성 영역

이 책을 평가해주세요!

내가 남긴 별점 0.0

별로예요

그저 그래요

보통이에요

좋아요

최고예요

별점 취소

구매자 표시 기준은 무엇인가요?

'구매자' 표시는 리디에서 유료도서 결제 후 다운로드 하시거나 리디셀렉트 도서를 다운로드하신 경우에만 표시됩니다.

무료 도서 (프로모션 등으로 무료로 전환된 도서 포함)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시리즈 도서 내 무료 도서
'구매자’로 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리즈의 유료 도서를 결제한 뒤 리뷰를 수정하거나 재등록하면 '구매자'로 표시됩니다.
영구 삭제
도서를 영구 삭제해도 ‘구매자’ 표시는 남아있습니다.
결제 취소
‘구매자’ 표시가 자동으로 사라집니다.

이 책과 함께 구매한 책


이 책과 함께 둘러본 책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