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해 장애가 생긴 한 남자.
그 남자의 외사랑은 항상 그늘 속에 있었다.
보일 수도, 표현할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그의 외사랑.
ㅡㅡㅡㅡㅡ
“구조대!! 구조대에 신고해!”
주변을 살피며 소리친 그 둘의 눈 돌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였다.
"으아아아악!!"
뒤늦게야 상황을 인식하며 울려 퍼진 다급함과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괴성이었다. 마치 정지해 있던 화면이 리모컨을 눌러 움직이는 것처럼 컵라면을 먹던 네 명과 해안가에서 거친 숨을 내쉬던 두 명이 재빠르게 바다로 뛰어들었다. 한 군데로 향해 가는 그들의 땅을 가르는 걸음과 물을 가르는 헤엄 속도는 엄청났지만 본인들이 느끼기에는 너무도 더디기만 했다.
"아아아아아악!“
“안돼!!"
여자들의 울부짖음과 그 여자들의 앞에서 물을 헤쳐 나가는 남자들의 얼굴에서조차 살아있는 사람의 혈색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광활한 대해를 더럽히는 피범벅이 된 피부에서 나는 비릿한 쇠 냄새 때문이었을까?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며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는 자식의 몸을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생물을 온몸으로 밀쳐내는 탓에 이리저리 열상에 찰과상을 입었음에도 아프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오직 내 자식이 살아있기를, 그 한 가지 소원뿐이었다. 가까스로 움켜쥔 머리카락을 끌고서 도달한 해안가에 그들의 얼굴에 어리는 충격과는 반대로 자식의 얼굴에는 고통도 없어 보였다.
"어, 엄마... 재, 재린이는?"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참으며 어미는 피범벅이 되어버린 자식에게 가까스로 손을 내밀었다.
"아, 아균아..."
"엄마, 재린이는... 재린이는 어, 어때요..."
자식의 물음에 그제야 겨우 아들의 몸 밑에 깔린 작은 여자아이를 볼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분노와 증오,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재린의 머리채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손가락 몇 개는 날아가고 뜨거운 핏물을 흘러 내보내고 있는 아들의 손이 그 손을 세게 잡아당겼다.
"아버지!!"
절박한 아들의 목소리에 아버지의 눈가에 머물던 멍함이 사라지고 있었다. 겨우 짜낸 아균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주위 사람들은 잔뜩 피를 흘리고 있는 그의 손과 발에 급한 지혈과 함께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재린을 끌어내 인공호흡과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쿠흡! 켁켁!”
심장에 압박을 가하기를 여러 차례, 상기도를 가득 채운 물을 잔뜩 내뱉은 재린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기침 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기절을 한 남자의 가족들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고, 여자의 부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죄인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케켁. 켁! 어.... 엄마?"
물을 한없이 토해낸 탓에 눈물이 글썽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세 쌍의 눈과 달리 세 쌍의 눈은 증오를 가득 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아.. 하아..."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재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린 듯 정확하지 않은 눈으로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아이처럼 일어섰다. 공포로 흐려지는 눈을 보고 과다출혈로 기절한 남자의 얼굴에는 그녀를 위해 어떻게 해서든 지은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날카로운 상어의 입에 잘려나가 급하게 지혈해 놓은 손과 발은 그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뻘건 피로 얼룩져 있었다.
"오, 오...빠?"
작은 목소리였다. 남자는 재린의 눈에 어리는 고통을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손을 내밀어 눈을 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만져보았지만 창백하고 차가움만 느껴질 뿐, 따뜻한 미소에서 풍겨오는 따뜻함은 그의 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균 오빠, 누, 눈 떠 봐. 아균 오빠, 아균 오빠! 흐흑... 오, 오빠!"
흐느끼는 목소리에 담긴 것은 깊은 죄책감이었다.
두두두두두두...
뒤늦게야 들려오는 응급구조 헬리콥터. 헬리콥터의 바람에 바다의 물이 튀기고 나뭇가지가 거친 소용돌이를 만들며 날아갔지만 재린의 눈에는 오로지 미소를 짓고 정신을 잃은 아균의 몸에 고정되어 있었다. 인간이면 자고로 있어야 하는 손가락 10개와 발가락 10개, 두 팔과, 두 다리, 순식간에 그 어느 하나 온전하지 못해 정상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그의 몸이었다. 천으로 급하게 허벅지를 지혈을 한 왼발은 사라져 피부가 오그라들고 있었고, 그 움푹 파인 다리에서는 하얀 뼈가 보이기까지 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전쟁의 잔재가 휩쓸고 간 것처럼 참혹했다.
“오빠!!!!”
고통으로 일그러진 남자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밀던 손끝이 정신없이 떨리는 것 같더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엄청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좀처럼 잦아들 것 같지 않은 소리였다. 기력이 다했는지 작은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급하게 응급구조 헬리콥터를 타고서 산을 내려가는 두 가족의 눈에는 조금 전의 평화로움과 고요함은 이미 흔적도 없었다. 한 번의 선택과 결정이 두 집안의 끈끈한 정을 순식간에 남보다 못한 관계로 만들어 버린 사고였다.
무더위가 한창인 여름, 초대 받지 못한 위험한 상어의 출몰과 함께 그들의 산과 바다와 함께 낭만으로 가득하길 바란 여름은 피와 괴성, 그리고 고통으로 얼룩졌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무서움이 두 가족을 향해 태풍처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