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옛 연인》은 윌리엄 트레버의 대표 단편집으로, 오헨리상을 수상한 <재봉사의 아이>(2006) <방>(2007) <감응성 광기>(2008)를 포함한 열두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트레버는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뒤흔드는 사건과, 선한 본성으로 인해 다른 이들과는 다른 무게의 죄책감을 느끼는 주인공들을 우아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되었다.
첫 단편 <재봉사의 아이>에서, 자동차 수리업자인 카할은 마을을 방문한 스페인 커플로부터 50유로를 줄 테니 ‘눈물 흘리는 동정녀’에게 데려다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카할은 그 조각상의 눈물이 기적이 아니라, 그저 눈 아래 빈 공간에 빗물이 고인 것에 불과함을 알고 있지만 50유로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커플을 조각상으로 안내한다. 돌아오는 길, 카할의 차 앞으로 한 아이가 뛰어든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마을 사람들이 경멸하고 멀리하는 재봉사의 아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카할의 인생은 점점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방>에서는 배우자가 있는 남자와 여자가 만남을 가진다. 여자의 남편은 9년 전, 창녀 살해 혐의로 기소된 적이 있다. 여자는 남편의 알리바이를 거짓으로 증언하고 이후 9년 동안 아무렇지 않은 듯 결혼 생활을 지속해왔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늘 침묵이 존재했다. 그녀는 남편을 아직 사랑하고 있음에도 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외도를 한다. 그리고 ‘사랑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고, 더 이상 이런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감응성 광기>에서는 부유한 40대 남자가 파리의 작은 식당에서 옛 친구와 우연히 조우한다. 두 사람은 유년 시절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함께 저지른 철없는 장난으로 인해 굳건해 보였던 관계는 무너진다. 그 사건 이후 남자는 적당히 합리화하며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했지만, 남자의 친구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황하며,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진다. 약 30년이 지나 친구와 마주한 남자는 지워버리려 했던 옛 비밀을 다시 떠올린다.
평범하지만 남들보다 조금 더 선한 사람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그들만의 속죄와 자기희생이 남기는 슬픔의 여운
위의 세 작품을 포함하여 이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죄책감’이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어떤 사건을 경험하고,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이들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무게의 죄책감에 짓눌린다. 그들의 죄책감은 어찌 보면 보통사람들이 외면하거나 합리화하며 잊어버리려 애쓰고 대개는 그럴 수 있는 정도의 감정이지만, 이들에게는 삶을 조용히 뒤흔들고 다시는 예전의 자기로 되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힘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이 무거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는 부인하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실체를 깨닫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이해는 결국 속죄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기희생으로 귀결되며 그리하여 비로소 이들은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에서 해방된다.
트레버는 예리하고 날카롭게 인물과 사건을 묘사하지만 결코 도덕적으로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는 어떤 행동도 혐오스럽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자들에게 충격이나 혼란을 주는 대신 짙은 슬픔의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 추천의 글
모퉁이에 복병처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면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이 단편집의 인물들은 그런 이들을 떠오르게 한다.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은 대개 너무 짧아서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태연히 살아가려하지만, 균열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를 기어이 다른 사람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과오와 회한, 실수와 자책을 한 겹의 마른 꽃잎들처럼 갈피마다 품고 있는 이 책은, 바스라지기 쉬운 삶이 지닌 찬란한 쓸쓸함에 대한 열두 편의 매혹적인 소설이다. _백수린
윌리엄 트레버의 글은 아름답게 구성된, 서정적이며 절제된 산문이다. _조이스 캐롤 오츠
그는 언어와 스토리텔링 두 분야 모두의 거장이다. _힐러리 맨틀
그의 글은 너무나도 절묘해서 전혀 형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삶에 상처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의 공감은 진실하고 감동적이다. _존 밴빌
그의 이야기는 아주 확고하고 신중하며, 엄숙하고 냉혹한 결론을 향해 확실히 나아가기 때문에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에 머문다. _<뉴욕 타임스>
윌리엄 트레버는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준다. 기쁨은 그의 정확한 관찰, 우아한 서술에서 온다. 고통은 그가 끈질기게 추구하는 주제인 사라진 희망에서 온다. _<텔레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