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의 건강한 생명력을 담은 창작 그림책. ‘0세부터 99세까지’ 읽을 수 있는 ‘바로 옆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담았다.
잘나고 멋진 이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옆집에서,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의 소소하고 소중한 일상을 통해, 진정으로 멋지고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이웃 그림책’은 한겨레아이들이 처음 시도하는 창작 그림책 시리즈로 ‘소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우리 시대 진정한 슈퍼맨들의 삶을 그려 보자’는 기획에서 시작해, 기획자와 작가, 편집자, 화가, 디자이너 등이 무려 4년의 기획‧편집 기간을 거쳐 첫 두 권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와 《천하태평 금금이의 치매 엄마 간병기》를 세상에 내 놓았다. 오랜 노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정겹고 감동적인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풍부하게 표현해 낸 완성도 높은 그림은, 어린이 독자에서부터 할머니 독자까지 함께 읽고 이야기할 수 흔치 않은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우리 시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 만인보????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는 김치 냉장고를 타야겠다는 일념으로 ‘전국 여자 천하장사 씨름 대회’에 출전하는 성북동 장사슈퍼, 슈퍼댁의 이야기이다. “싸움도 슈퍼, 수다도 슈퍼, 욕도 슈퍼, 인심도 슈퍼”인 주인공 슈퍼댁은, 넷이나 되는 아이들 덕에 사시사철 김장을 해 대는 고단한 엄마이기도 하다.
억척스럽지만 인심 좋은 슈퍼댁의 모습은, 동네 슈퍼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 아니 바로 우리 엄마인 듯 친근하다. 슈퍼댁만이 아니라 ‘신상’ 김치 냉장고로 슈퍼댁을 약 올리는 이웃집 순돌 엄마도, 슈퍼댁을 넘어뜨리는 꽁지댁도, 힘센 슈퍼댁 곁에서 ‘장사 슈퍼마켓’을 함께 꾸려가는 슈퍼댁의 남편도, 모두 우리 이웃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준다. 바로 내 곁에 살고 있는 현실의 인물들이 그림책 안에서 웃고 울고 놀고 일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그다지 내세울 만한 것도 위대할 것도 없어 보이는 우리 이모, 삼촌, 언니, 오빠, 동생,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들의 모습은, 그러나 엄청난 생명력으로 삶을 살아가는 ‘진짜 슈퍼맨’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 이웃 그림책’은 장삼이사들의 인물 열전이면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슈퍼맨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천하태평 금금이의 치매 엄마 간병기》도 다르지 않다. 늙은 엄마(쪼글 할매)가 어렵게 얻은 딸 금금이는 나이가 들어도 자라지 않고 철도 들지 않는 태평한 딸이다. 늙은 엄마가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밥을 해 대도, 그저 가래떡을 베게 삼아 누워 하나씩 빼 먹고 노는 게 일인 철부지다.
그런데 늙은 엄마가 나날이 쇠약해지고 치매에 걸리자, 금금이는 어설픈 솜씨나마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엄마를 돌본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금금이가 자신을 돌봐주고 키워 주었던 엄마를 돌보며 그럭저럭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해 주던 ‘슈퍼’ 엄마가 기억을 잃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지고 길을 잃고 똥오줌까지 못 가리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지만, 금금이는 엄마가 치매에 걸렸다고 호들갑떨지 않는다.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을 엄마가 돌보아 주었듯, 그저 담담히 엄마를 돌보며 조금씩 성장해 갈 뿐이다. 무심한 듯 천연덕스러운 금금이의 성장기는 재미와 감동은 물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전하고 있다.
창작 판소리와 그림책의 만남
‘우리 이웃 그림책’의 첫 책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는 젊은 대중 판소리꾼인 ‘또랑광대’ 김명자의 창작 판소리를 텍스트로 삼아 탄생했다. 한 번이라도 판소리꾼 김명자 공연을 접해 본 이들이라면 판소리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가 주는 유쾌함과 신명을 알 수 있을 테지만, 공연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라도 누구나 창작 판소리의 매력을 즐길 수 있길 바란 기획자와 작가의 바람이 이 그림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현대의 판소리는 소리꾼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대중가요처럼 누구나 쉽게 부르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전통 판소리는 아주 훌륭한 음악이지만 가사가 어려워 요즘 사람들이 즐기기는 어렵다. 전통 판소리를 쉽게 바꾸기 위해 고전을 공부하는 소리꾼이자 이 책의 작가 김명자는, 동시에 우리 시대에 살아 숨 쉬는 창작 판소리를 직접 만들고 공연하고 있다.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 역시 15년 넘게 인기리에 공연해 오고 있으며,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잘 계승한 작품으로 인정받아 중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 뜻과 신명을 고스란히 담은 그림책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에서 그림책만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더불어 창작 판소리의 해학과 멋 또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천하태평 금금이의 치매 엄마 간병기》 역시 판소리 장단과 맛을 살려 글을 썼다.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처럼 창작 판소리를 원전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10년 넘게 치매에 걸린 노모를 돌보고 있는 김혜원 작가가 오랫동안 판소리를 공부해 쓴 작품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좌충우돌‧알콩달콩 살아온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해학적인 판소리 장단에 실어 담담하지만 감동적인 금금이의 이야기로 잘 풀어냈다.
평범하지만 개성 있는 인물을 창조해 낸 화가 최미란과 이영경
슈퍼댁과 금금이를 비롯해 《슈퍼댁 씨름 대회 출전기》와 《천하태평 금금이의 치매 엄마 간병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장삼이사들이다. 그림책 주인공으로 창조해 내기 수월찮을 인물들인 셈이다. 그러나 역량 있는 두 화가는, 이 평범할 법한 인물들을 친근하면서도 개성 있는 캐릭터로 창조해 냄으로써, 텍스트가 표현하고 있는 인물들을 한층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에 탄탄한 구성과 데생력, 따뜻하고 유려한 선맛에 해학과 유머가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그림책이 탄생한 것이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작가들은 텍스트가 완성된 뒤에도 2년에 걸쳐 다양한 실험을 감행했다. 구성안을 짜고 캐릭터를 잡고 손톱스케치(섬네일)와 밑그림 그리는 작업을 수십 차례 거듭했으며, 어렵게 밑그림이 완성된 뒤에는 최상의 선맛과 색감을 살리기 위한 지난한 채색 과정을 이어갔다.
특히 최미란 작가는 전남 구례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국 여자 천하 장사 씨름 대회’를 취재하고 다양한 씨름 대회 동영상을 보면서, 역동성인 씨름 선수들의 몸동작과 씨름 대회장의 현장감, 그리고 그곳을 가득 메운 무수한 인물들을 연구했다. 그리고 이를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고단한 ‘판화 채색 기법’으로 그림을 완성했다.
판화 채색 기법이란 연필 스케치한 그림을 복사한 다음 복사된 면과 판화지 면을 붙여서 전사하는 방식으로, 스케치 그림을 복사한 그림 위에 신나 종류의 전사 용액을 붓에 묻혀 바른 다음 열심히 도구로 문지르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완성된 전사 그림은 연필 스케치와는 다른, 생동감 넘치는 선의 느낌이 묻어나게 된다. 이렇게 전사한 판화지에는 물감색이 제대로 입혀지지 않아 색 레이어를 쌓아서 채색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전사한 판화지 위에 트레이싱 지와 아스테이 지를 얹어 색을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