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의 T. S. 엘리엇상 수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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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019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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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뉴욕매거진〉 선정 ‘올해의 책 Top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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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든 날이 걸작일 수는 없다.”
캐나다의 시인이자 고전학자 앤 카슨의 아름다운 운문소설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그리고 학자로서 고전을 소재로 삼아 포스트모던한 감성과 스타일의 심오하고 기발한 작품들을 써온 현대시의 거장 앤 카슨의 운문소설 《레드 닥>》이 출간되었다.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지루함이고 지루함을 피하는 것이 인생의 과업이다”라고 말한 그녀답게, 앤 카슨은 이번 《레드 닥>》에서도 소설과 시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소설적 미학을 선보인다.
《레드 닥>》은 고전 《게리오네이스》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주목할 만한 작품 《빨강의 자서전》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어깨에 빨강 날개를 달고 태어난 게리온이 두 살 연상의 아름다운 소년 헤라클레스를 사랑하면서 시작되는 영웅적인 성장 이야기 《빨강의 자서전》이 나온 지 15년 뒤, 앤 카슨은 문득 게리온과 헤라클레스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져서 《레드 닥>》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레드 닥>》의 주인공 게리온은 이제 G라는 이름의 소 떼를 돌보는 중년 남자가 되어, 어릴 적부터 써온 자서전은 진즉에 포기한 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러시아 초현실주의 시인 다닐 카름스를 읽으며 세월과 함께 시들어가고 있다. 어느 날, G는 우연히 과거의 헤라클레스이자 지금은 군 제대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새드(Sad But Great, 슬프지만 위대한)를 만나게 되고, 두 중년의 남자는 차를 몰고 북쪽으로 향한다. 북쪽에는 매서운 바람과 빙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추운 땅에서도 “섬뜩하고 온화한 목적을 갖고 그를 아래로 끌어당기는” 얼음 박쥐들이 있어 삶과 희망을 이어간다.
우리의 삶 안에 두건 밖으로 내보내건
언제나 문제가 되고 언제나 아름다운 소설
《레드 닥>》은 시적이고 모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한 편의 시이면서, 한 편의 모험담이고, 한 개의 빨강 퍼즐처럼 복잡하게 아름답다. 하지만, 《레드 닥>》을 더 특별하게 하는 건 유머러스함이다. 일단, 제목부터 장난스럽다. ‘레드 닥’ 뒤에 붙은 생뚱맞은 화살괄호(>)는 워드프로세서 파일명에 자동으로 생성된 기호를 작가가 그대로 쓴 것이다. 독특한 모양의 본문 디자인 역시 컴퓨터 버튼을 잘못 눌러 좌우 여백이 너무 많이 생긴 걸 그대로 채택했다고 한다. 쉼표는 찾아볼 수 없고, 물음표는 거의 생략되었으며, 마침표마저도 간간이 자리를 비운다. 이야기의 흐름 또한 종잡을 수 없이, 무의식처럼 갑작스럽게 이어지고 끊어지다가 다시 이어진다. 《레드 닥>》을 읽는 독자들은 너무도 아름다운 반짝이는 퍼즐 조각을 손에 든 채로 허둥대게 되지만, 결국은 자의에 의해 자신만의 빨강 퍼즐을 완성해내고야 만다. 우리의 삶 안에 두건 밖으로 내보내건 언제나 문제가 되는 소설, 우리의 삶 안에 두건 밖으로 내보내건 언제나 아름다운 소설, 그게 바로 《레드 닥>》이다. “그래, 모든 날이 걸작일 수는 없다” 하고 깨닫는 순간 비로소 작은 걸음으로나마 삶이 걸작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처럼, 소설은 장마다 읽는 모두에게 새롭게 해석되고 재창조된다. 열정적인 창조 행위로서의 독서를 즐길 기회를 찾고 있던 독자들이면 올겨울 《레드 닥>》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새드가 몸부림치다가 소파에서 떨어진다. 젠장. 낮이 눈부시게 열린다.
아빠와 나 그리고 스팸 내가 그 얘기 한 적 있나? G는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먹기 위해 도로에서 벗어나 차를 세웠다. 바람 때문에 차 문이 떨어져나가겠어 젠장 밖으로 나가려고 애쓰다가 새드가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차 안에 머문다. 도로지도 표지를 뒤로 접어 스팸을 자른다. G가 새드에게 스팸이 군대 생각이 나게 하느냐고 묻는다. 새드는 아니라고 집 생각이 나게 한다고 말한다. 우린 집 근처에 있는 진흙탕 호수라기보다 늪에 가까운 곳에서 메기를 잡곤 했지 어느 날 낚시를 하러 갔는데 내가 낚싯줄에 미끼를 달다가 배 고물 너머로 스팸 캔을 빠뜨린 거야—그거 우리 점심이다 아빠가 말했어 그는 나한테 호수에 뛰어들어서 스팸을 건져 오라고 시키고도 남을 사람이지. 농담이지. 농담 아냐 난 스팸 캔이 반짝거리며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 나는 물에 들어가서 스팸 캔을 건져 가지고 나왔고 신사 숙녀 여러분 그래서 내가 오늘날 동성애자가 된 겁니다! G는 웃음을 터뜨린다. 새드는 스팸 한 조각을 더 자르고 바깥의 바람을 내다본다.
네 자서전은 어떻게 됐어 새드가 말한다 옛날에 늘 그걸 만지작거렸잖아. 포기했어 G가 말한다. 내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 시작한다.
집에서는 그들 모두 답답하게 막힌 연극과 잘못된 얼굴들에 갇혀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금 침대 위의 조그만 어머니가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진짜로 어떻게 지내니? 그녀가 말한다. 힘들어요 그가 말한다. 도움은 받고 있니? 조금은요 그가 말한다. 더 나은 도움을 받아 그녀가 마지막 남은 목소리로 말하고 그는 하마터면 절을 할 뻔한다. 예 부인 그가 말한다 그리고 잠시 자신이 그렇게 할 거라고 믿는다. 그녀는 눈을 감는다. G가 문가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 나가는 길 알아? 그가 새드에게 말한다. 그들은 퇴장한다.
있잖아 우리 아빠가 우리 집 모퉁이에 스톱모션 카메라를 설치한 적이 있어 우리가 거기 없을 때 바람도 보고 고양이들이 오가는 것도 보려고/너희 아빠는 불타는 뇌를 가진 그런 분 같아/오 그랬지/그러고 보니//생각나는 게 있네/뭔데/내가 우는 동안//그녀는 노래를 부르네 내가 귀 기울이면 그녀는//노래를 그치네 시의 한 구절이야/쩐다/쩐다고 했어/응/이다 너 진짜 웃겨/내가 그런가/오늘 레이스에서 원 플러스 원 행사하는 날이지/그럼 좋겠는데
그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았고 수년간 왕래도 없었지만 누군가 전화를 연결해주었다. 그리하여 어머니와 딸이 따로 떨어진 도시에서 따로 떨어진 밤에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둘 다 천식을 앓았고 너무 감격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머니 숨소리를 들었어 나는 그게 뭔지 알았지 그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는 시선을 들었다. 그는 비에 대해 거의 잊고 있었다. 지붕에 짐을 내려놓고 홈통으로 흩어져 내려가는 비. 장례식 이후 계속 내리는 비 파괴하는 우당탕거리는 당혹스러운 레테의 주먹질 비의 무리. 아무런 지시가 없는 비.
운은 꼭 필요하다. 희망은 의문이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그녀는 한 남자가 자신의 집 마당에 속옷 바람으로 서서 비를 올려다보고 있는 걸 본다. 그래, 모든 날이 걸작일 수는 없다. 이 날은 출항한다 멀리 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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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위대한 지적, 정서적 지식과 광대한 서식지를 갖고 있으며, 그 서식지의 모든 것들에 요란한 노크 소리처럼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강력한 인식과 참신함을 부여한다. _〈뉴욕타임스〉 북리뷰
만일 그녀가 산문작가였다면 즉시 천재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_콜름 토이빈(작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 내가 신작을 가장 고대하는 작가. _앤서니 밍겔라(영화감독)
나는 그녀가 쓴 것이라면 어떤 작품이든 읽고 싶다.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가운데 이런 경우는 몇 명 되지 않는다. _수전 손택(문예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