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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상세페이지

소설 한국소설

골드러시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서수진 첫 소설집
소장종이책 정가15,000
전자책 정가20%12,000
판매가12,000

골드러시작품 소개

<골드러시>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서수진이라는 낯선 세계의
입국심사를 마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분명 생각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나라를 만났다고. _문지혁(소설가)
■ 책 소개
“빛나는 순간. 진우는 그들이 늘 그것을 기다려왔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안녕과 행복을 찾아 낯선 땅으로 멀리 떠나온 사람들
속절없이 저물어가는 세계 속 단단히 움켜쥔 한 줄기 희망의 빛

한겨레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서수진 첫 소설집!
젊은작가상 수상작 〈골드러시〉 수록

심사위원 전원의 지지를 받아 《코리안 티처》로 제25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서수진 작가의 첫 소설집 《골드러시》가 출간되었다. 《코리안 티처》는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될 이 나라의 진짜 모습을 가르쳐준다는 의미에서, K-자부심에 취해 있을지 모를 우리에게 때마침 찾아온 반가운”(신샛별 문학평론가) 작품이었다. 《골드러시》에는 “고전적인 비극의 우아함을 느꼈다”(은희경 소설가)라는 평을 받은 제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이자 표제작 〈골드러시〉와 미발표작 〈졸업 여행〉을 비롯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 집필한 작품 여덟 편을 모았다. <골드러시>는 새로 발견된 금광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현상을 뜻하는 제목과 상반되는 음산한 폐광, 차에 치여 죽어가는 캥거루,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의 이미지로 젊은 부부의 저물어가는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호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안녕과 행복을 좇아 한국을 떠났고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지금 그들의 세계는 캥거루의 피처럼 온통 붉기만 하다.
《골드러시》에는 지금보다 처지가 나아지리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 타국으로 이주했으나 단 한 번도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 없거나, 빛나는 순간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거나, 빛나는 순간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인물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호주에서 번듯하게 살아가는 한국인과 정부 지원을 받는 한국인을 철저히 가르는 선(〈캠벨타운 임대주택〉), 한국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중국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헬로 차이나〉), 호주 이민자 2세대인 여성의 정체성 혼란(〈한국인의 밤〉), 호주에서 고생해 이룩한 것이 산불과 함께 끝장날 것 같은 불안(〈졸업 여행〉),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사랑했으나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 부부의 심정(〈골드러시〉) 등을 세밀히 다룬다. 그간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여성 시간강사 네 명의 이야기를 담은 《코리안 티처》, 국적과 인종이 다른 연인의 사랑과 갈등을 그린 《유진과 데이브》, 호주 산불처럼 위태로운 여성 청소년 세 명의 성장담 《올리앤더》를 통해 경계인, 이방인의 서사에 천착해온 작가의 문제의식을 오롯이 한 권에 담았다.

서수진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국의 인물들은 단순한 디아스포라의 일원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고통받고 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낯선 풍경이 겹쳐 있고, 서수진은 누구보다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 장면들을 포착하여 눈앞에 보여주면서 묻는다. 이 사람이 누구일 것 같냐고.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_문지혁(소설가)

“햇빛이 부서지는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상상을 했으나
도착해보니 바다는 햇빛에 빛나지도 파랗지도 않았다”
고달픈 오늘이 쌓여 눈부신 내일이 온다는 아련한 믿음
지금 여기 발 빠르게 도착한 서수진표 이민자 문학

〈졸업 여행〉에는 아들의 밝은 앞날을 위해 호주에서 캐시잡을 전전하고 한식당을 근근이 운영하며 12년간 온전히 쉰 적이 거의 없는 승수와 미연이 등장한다. 그들은 술집 화장실 변기를 닦다가 구역질이 나도, 잠을 못 자고 운전하다 사고를 당할 뻔해도, 이민 전문 변호사의 실수로 불법체류 신세가 되어도 호주에 남아 있어야 한다. 미래가 정해져 있는 한국과 달리 “그냥 호주 애”처럼 영어를 잘하는 아들이 호주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전 세계를 무대로 삼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호주 전역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처럼 그들의 마음에 불안이 싹튼다. 그동안 이룬 것을 한순간에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졸업 여행〉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는 부모의 발버둥을 묘사하며 모든 것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삼키는 불의 이미지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78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과 36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및 관객상을 수상한 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를 떠올리게 한다.
〈캠벨타운 임대주택〉 〈헬로 차이나〉 〈한국인의 밤〉에도 호주에서 살아남고자 청소 업체를 운영하고 부동산 에이전트로 일하며 일식당 주방에서 교자를 만드는 한국인 부모가 나온다. 그들은 호주에 사는 아시안으로서 자신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에 깊이 매몰된 나머지 또 다른 타자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캠벨타운 임대주택〉의 부모는 보수정당의 반난민 정책을 지지하는 이민자 집회에 다니며 성실하고 평판에 예민한 한국인과 임대주택에 사는 가난한 한국인을 분리한다. 자신과 다른 이민자는 “이민자의 평판을 떨어뜨려 한국인의 이민을 힘들게 하는 주적 같은 존재”이며 “사회의 기생충”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헬로 차이나〉의 혜선은 부유한 중국인 고객 덕에 집을 마련할 수 있었지만, 뒷마당에 걸어둔 깃발을 훼손한 범인으로 딸의 중국인 남자친구를 지목한다. 〈한국인의 밤〉의 클로이 아빠는 “호주에 사는 한국인을 영주권자 이상, 이하로 나누”며 딸에게 “영주권이 없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말”한다. 이렇듯 《골드러시》는 이민자의 고달픔을 실감 나게 다루는 한편 그들의 뿌리 깊은 혐오도 함께 드러냄으로써 이민자 사회의 다층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식당 직원 대부분은 유학생이거나 워킹홀리데이비자가 있었는데 다들 결국 영주권을 따지 못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애들이라고 했다. 그러니 책임감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정을 주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호주에 사는 한국인을 영주권자 이상, 이하로 나누었다.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만이 호주 이민의 고충을 나누며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클로이가 새 친구를 사귀면 친구가 한국인인지 물은 다음 영주권이 있는지 물었다. 연애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영주권이 없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다. _〈한국인의 밤〉

“너는 나를 사랑해서 괴롭지 않았어?
수치스럽지도, 두렵지도 않았어?”
이별을 앞둔 세 연인들의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

《골드러시》의 한 축이 한국계 이민자의 생계와 정체성 혼란, 이민자 사회 내부의 균열과 불화라면, 다른 축은 한때 힘든 시기를 함께 견디며 삶의 기쁨이 되어주었으나 이제는 마음의 짐이 되어버린 연인 이야기다. 〈골드러시〉의 진우와 서인은 일식당 직원이 생활하는 셰어하우스에서 처음 만나 7년을 부부로 지냈으나, 지하 광산을 개조한 숙소에 머물며 폐광을 탐방하는 여행에서 노을로 온통 물들어 “붉기만 한 세계”를 마주해 이별이 임박했음을 예감한다. “비록 시효가 지나버렸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랑과 히스테릭한 희망의 파편들, 그리고 그것들이 남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들만이 그들의 삶을 증거할 뿐이다”(은희경 소설가). 〈외출 금지〉의 은영과 희율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호주행을 택한 레즈비언 커플이다. “자기 세계에 갇혀서 타인과 관계 맺을 줄 모”르는 은영, “제멋대로 살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옆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희율은 결국 이별을 고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외출금지령으로 한 집에 계속 살게 되면서 어느덧 관계가 회복될 조짐이 보인다.
〈배영〉의 우현과 여진은 3년째 동거 중이다. 대학 생활을 함께한 그들은 같은 날에 졸업하지만, 여진은 괜찮은 직장을 구해 안정기에 접어든 반면 우현은 근무 환경이 열악한 회사 일로 매 순간 불만을 표출한다. 두 사람은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며 “언제 어떻게 헤어지면 좋을까” 고민하지만 이래저래 겹치는 지인과 줄줄이 이어지는 경조사, 함께 묶인 집 보증금 때문에 이별을 자꾸만 미룬다. 그들의 갈등은 서해 캠핑 때 조용하게 폭발하며 폭죽에 화상을 입은 우현의 다리처럼 거무죽죽하게 곪아간다. 서수진 작가는 〈배영〉에 대해 “사랑을 더 이상 손에 움켜쥘 수 없을 때에도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내 글이 사랑을 위한 것이기를 바란다”라고 밝힌 바 있다. 《골드러시》의 표지에 쓰인 그림 제목은 ‘The Sunset That Flows Like Love’이다. 사랑은 태양의 움직임을 닮았다. 온 세상을 영원히 밝힐 것처럼 솟아올랐다가 어느새 벌겋게 하늘을 물들이며 저물어버리지만 아직 낮은 끝나지 않았다고, 낮은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게 한다.
한국과 전혀 다른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이 움켜쥔 희망, 이별을 유예하는 이들이 움켜진 사랑의 잔상을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서술하는 《골드러시》에는 호주인과 결혼해 현재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는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국계 이민자의 희노애락을 조명한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키는 요즘,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의 선두 주자인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그녀의 몸이 검은 바닷물에 순식간에 잠겼다. 물 위에 누웠다. 달이 저 높이에서 하얗게 빛났다. 바닷물 위로 얼굴과 가슴을 내놓고 배영을 했다. 다리를 젓고 또 저었다. 힘이 빠져 더 이상 다리를 저을 수 없자 눈을 감았다. 달이 사라졌다.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차고 외로웠다. 이 기분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_〈배영〉


■ 작가의 말
이 책에 실린 소설은 각각의 발표 시기로 짐작할 수 있듯이 시간의 틈이 매우 넓다. 소설을 쓸 때의 마음 역시 서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 책으로 묶으려 다시 읽으면서 그 마음들이 너무 닮아 놀랐다.

미발표작인 〈졸업 여행〉은 2019년에 썼다. 호주가 산불로 고통받은 때였다. 뉴스에서는 끝없이 불타는 숲이, 새끼를 끌어안은 채 불에 탄 코알라가, 노을이 아닌 화염으로 붉게 물든 하늘이 나왔다. 호주 전역에 퍼진 산불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은 산불 피해를 직접 입지는 않았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면 매캐한 재가 들이닥쳐서 가까운 곳에 큰불이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랜 가뭄으로 급수제한령이 내렸다. 잔디가 누렇게 마르고 군데군데 흙이 드러났다. 앞집에 사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는 때였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졸업 여행〉을 썼다. 폭염과 가뭄으로 뜨겁고 목마른 계절이었다.

불길에 내몰리는 승수의 마음을 기억한다. 깊고 차가운 물속에 가라앉는 여진의 마음도, 어둡고 뜨거운 폐광에서 주저앉는 진우의 마음도 기억한다. 그 마음들이 책으로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책을 읽는 당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든지 그들의 마음과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조금 덜 외롭기를 바란다.

2024년 2월
여전히 뜨거운 여름, 시드니에서


■ 추천사
이민자가 꼭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 사람만을 부르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떠나 새로운 곳에 도착하고, 그곳의 언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하며, 결국에는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므로. 따라서 서수진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국의 인물들은 단순한 디아스포라의 일원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고통받고 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에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면의 낯선 풍경이 겹쳐 있고, 서수진은 누구보다 정확하고 섬세하게 그 장면들을 포착하여 눈앞에 보여주면서 묻는다. 이 사람이 누구일 것같냐고.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은 서수진이라는 낯선 세계의 입국심사를 마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분명 생각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나라를 만났다고. _문지혁(소설가)


■ 본문에서
“당신은 나를 못 믿겠다고 말하지만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에요. (…) 존중의 문제예요.”

457비자로 2년을 일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럼 많은 것이 달라질 거였다. 급여는 적어도 두 배, 경력을 고려하면 세 배가 될 터였고 법정 유급휴가 4주에 공공의료와 공교육이 무료였다. 그는 한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것을 약속하며 서인을 설득했다.

붉은 햇빛이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그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한국에서는 미래가 딱 정해져 있잖아. 여기는 아니야. 호주가 괜히 선진국이 아니라니까. 여기서 대학을 졸업하면 전 세계가 무대야.

전날 밤에 술집 화장실 변기를 닦다가 구역질이 났어도, 잠을 못 자고 운전하다 사고가 날 뻔했어도, 이민 전문 변호사가 계약금을 받아놓고 비자 신청을 미뤄서 불법체류 신세가 되었어도 무언가를 이뤄내고 있다고 믿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10년을 기다려 영주권을 따고, 자기 이름으로 가게를 내고, 아들이 대학수능시험까지 마치자 다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에이미가 대학에 가서 사귄 첫 남자친구가 중국계라고 했을 때, 혜선은 얀을 은인으로 떠받들고 산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에이미가 얀의 딸과 어울리는 걸 기특해한 것. 둘의 만남이 뜸하다 싶으면 연락해보라고 부추기고, 얀의 딸을 만나러 간다고 하면 용돈을 두둑이 준 것. 그런 말과 행동이 딸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쳐셔 딸이 결국 중국계 남자친구를 사귀었나 싶었다.
엄마의 주 고객이 중국인이라 중국인을 만나고 중국인과 사귀고 중국인과 결혼하고 중국에 가서 중국인을 낳게 되는 건 아닐까.

한국 사람이 인도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기 싫어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호주에서 집을 임대로 내놓은 한국 사람은 대부분 그런 조건을 내세웠다. 인도 사람에게 집을 빌려주면 친척의 친척을 모두 불러와 살면서 집을 엉망으로 만들며, 이사를 나가고도 몇 달 동안 커리 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내벽 페인트칠을 새로 해야 한다고 했다.
혜선은 한국 사람도 똑같은 짓을 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집을 렌트해서 방을 쪼개고 거실과 베란다, 심지어 옷장까지 따로 세를 줘서 한국인 셰어하우스를 만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말하고 싶었다. 김치에 된장에 독한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매일 요리하는 통에 이웃의 항의를 받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할 수는없었다.

얀의 딸은 에이미가 될 수 없다. 아무리 한국 노래를 듣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치킨을 시켜 먹어도 한국 사람이 될 수 없다. 에이미 역시 중국 남자친구를 사귀고 중국 집회에 다니더라도 중국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에이미는 붉은 생선튀김을 끔찍해할 것이다.

식당 직원 대부분은 유학생이거나 워킹홀리데이비자가 있었는데 다들 결국 영주권을 따지 못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애들이라고 했다. 그러니 책임감을 기대해서도 안 되고, 정을 주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호주에 사는 한국인을 영주권자 이상, 이하로 나누었다.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만이 호주 이민의 고충을 나누며 서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클로이가 새 친구를 사귀면 친구가 한국인인지 물은 다음 영주권이 있는지 물었다. 연애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영주권이 없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다.

클로이는 하이스쿨에 다니면서 문득 친구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곤 했다. 새카만 눈. 직선으로 뻗은 굵은 머리칼. 주근깨가 덮이지 않은 볼. 땀이 맺히는 코. 그들의 얼굴이 바로 자신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 때문에 그녀는 헤비메탈 공연장에서 줄을 서고 부모가 없는 집에서 마약을 하며 파티하는 대신, 한인 학원에 다니고 한국인 의대생에게 과외를 받으며 의대 입시를 준비했다.

클로이는 윌리엄이 찬 훈장을 보았다. 그중 하나에 ‘KOREA’라고 새겨져 있었다. 자신에게도 그런 딱지가 붙은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선택하지 않은. 그러나 떼어낼 수 없는. 그 딱지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희율과 햇빛이 부서지는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상상을 했으나 도착해보니 바다는 햇빛에 빛나지도 파랗지도 않았다.

너는 나를 사랑해서 괴롭지 않았어?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게 수치스럽지도 두렵지도 않았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의심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어? 네 사랑이 너 자신을 혐오하게 하지 않았어? 네 사랑이 네 가족을 울게 하지 않았어?
네 사랑은 아프지 않지. 네 사랑은 밝고 빛나지. 너는 환하게 웃고 떳떳하게 울지. 눈치 보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지, 네 사랑은.

그녀의 몸이 검은 바닷물에 순식간에 잠겼다. 물 위에 누웠다. 달이 저 높이에서 하얗게 빛났다. 바닷물 위로 얼굴과 가슴을 내놓고 배영을 했다. 다리를 젓고 또 저었다. 힘이 빠져 더 이상 다리를 저을 수 없자 눈을 감았다. 달이 사라졌다. 물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차고 외로웠다. 이 기분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저자 프로필

서수진

  • 경력 작가

2020.09.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현재 호주에서 살고 있다.


저자 소개

서수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20년 《코리안 티처》로 제2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22년 〈골드러시〉로 제13회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유진과 데이브》 《올리앤더》를 썼으며 현재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다.

목차

입국심사
캠벨타운 임대주택
골드러시
졸업 여행
헬로 차이나
한국인의 밤
외출 금지
배영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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