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지금 여기에 이르렀나!
황해의 탄생부터 한반도 근대사까지,
미추홀-제물포-인천으로 이어진 우리네 삶을 조망하는
거시사적이면서 동시에 미시사적인 성찰을 품은 지적 소설!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을 면면히 살아온 사람들의 미시적 삶들, 그런 미시적 삶들 속에서 선연히 드러나는 거시사적 흐름을 조망하고 성찰할 수 있는 드문 소설이 출간되었다. 복거일 작가의 『미추홀-제물포-인천』은 지금의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황해의 탄생과 한민족의 출현 같은 빅 히스토리에서 시작해 우리 역사를 통사적으로 다루는 거대한 서사를 보여준다. 동시에 제목이 일러주는 바와 같이 우리 역사의 변곡점에서 중요한 공간적 배경이 되어주었던 ‘미추홀-제물포-인천’에서 이어진, 역사와 맞물려 돌아간 우리네 삶의 희로애락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역사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거대 서사와 인간 삶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만년에 이른 대작가의 필치 속에서 서로 얽혀들며 독자에게 묵직한 통찰과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2,700만 년 전 황해가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황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을 한반도의 원주민은 2만 5,000년 전에 유입되어 차차 역사의 시간으로 진입한다. 그렇게 시작된 한반도의 역사는 온갖 굴곡과 격동, 비애와 환희의 장대한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며 오늘에 이른다. 특히 고구려의 태자였다가 북부여에서 이주해 온 유리에게 밀려나고, 옮겨간 땅에서 동생 온조에게 주도권을 넘길 수밖에 없었던 비류 왕자의 운명은 마침내 미추홀에 이르러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미추홀은 우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며 거대한 흐름의 중요한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비류 왕자와 소서노의 이 애달픈 전설은 작가의 필력을 통해 역사적 현실에 맞게 다듬어져, 미추홀-제물포-인천의 역사적 시공을 단숨에 크게 늘려놓는다.
한반도의 역사는 수많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인 양 부단히 이어지며 기쁨과 슬픔, 환희와 좌절을 반복한다. 『미추홀-제물포-인천』은 때론 거칠고 때론 치열하며 때론 인간미마저 풍기는 그 역사 자체를 하나의 주인공으로 삼아 장대한 서사를 풀어간다. 그와 동시에 비류 왕자의 전설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미추홀-제물포-인천’의 미시사를 이야기에 끌어들인다. 조선 수군이 되어 개항 당시 제물포를 지키다 죽은 이만셕과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제물포에서 떡집을 꾸려 일가를 이루어 나가는 월례 부부의 이야기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에 속절없이 휘둘리면서도 기어이 삶을 일구어내는 인간들의 신산한 운명과 강인한 의지를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역사의 완강한 흐름과 그 속에서 분투하는 인간들의 의지가 선사하는 대비가 자아내는 여운이 만만치 않다.
만셕과 월례 일가의 제물포와 인천을 배경으로 한 가족사!
역사의 흐름에 휩쓸린 인간들의 분투가 아름답고 가슴 시리게 그려진 소설!
그 도도한 역사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와 조선의 성립과 붕괴의 과정을 차례로 거치고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시절을 겪은 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순식간에 경제 강국으로 다시 우뚝 서는 근대화의 역사에까지 가 닿는다. 그사이 만석과 월례의 후손들은 역사의 격랑 속에 흩어지고 재회하고 때로 얄궂은 운명의 장난조차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인천에서 삶을 이어간다. 개항과 일제강점기,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모두 겪은 후 다시 발전해 나가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몸소 겪고 지켜보는 이 일가의 가족사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근원을 새삼 탐색하게 만든다.
황해의 탄생이라는 빅 히스토리에서부터 대한민국의 기틀이 마련된 근현대까지, 잠시 쉴 틈 없을 정도로 몰아치는 한반도의 역사를 일람하다 보면, 저절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 흐름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는 독서를 하다 보면, 오늘 여기의 우리가 역사 앞에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겸허해지면서, 동시에 그런 거대한 운명적 흐름에 때론 함께 따라 흐르면서, 때론 강인한 의지로 맞서면서, 때론 불굴의 각오와 결단으로 운명을 새로 쓰면서 이어져 온 인간의 위대함에 새삼스러운 경의도 느끼게 된다.
역사와 인간, 거시사와 미시사, 운명과 의지의 얽히고 충돌하는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이 소설이 지닌 특유의 매력이다. 문제적 역사소설과 과학소설을 꾸준히 발표해 온 복거일 작가는 우리 역사의 통사적 흐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통찰을 선보일 뿐 아니라, 개별 등장인물이 등장할 때는 의식의 흐름의 방식을 차용하고 당대의 실제 발음까지 확인하여 삶의 구체성까지 생생하게 드러내는 솜씨를 보여준다. 오랜 작품 활동의 구력이 온전히 담긴 장편소설이다. 스승 고 김현 선생에게 이 작품을 헌정한 복거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스승이 해준 이야기를 언급한다. “복 형, 소설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소. 작가에겐 버릴 것이 없소.” 이 작품이 그러한 결실이다. 소설가로서 복거일 작가가 버릴 것 없이 모든 것을 담아낸 기념비적 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