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종종 위대한 소설가의 시는 소외된다. 그들이 써낸 장편소설의 그늘에 가려, 시인으로서의 면모는 잊히곤 한다. 조지 엘리엇의 경우가 정확히 그렇다. 19세기 영국 문학의 거장, 「미들마치」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의 작가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녀는 실은 깊은 사유의 시인이기도 했다.
메리 앤 에번스라는 본명을 버리고 남성 필명을 선택했던 엘리엇. 여성 작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던 시대에,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녀가 얼마나 과감했는지, 또 당시 여성들이 어떤 현실 속에서 글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표제작 「보이지 않는 합창단」은 표면적으로는 죽음 이후의 삶을 노래한 시처럼 보인다. 하지만 천국이나 지옥 같은 종교적 사후세계가 아니다. 엘리엇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합창단'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 속에 남아 영향을 미치는 죽은 이들의 존재다. "세상에 영원한 음악을 만들어내며 / 아름다운 질서를 불어넣어 / 인간의 삶을 점점 더 크게 다스린다"라는 구절은 개인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영향력의 파장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시대적 배경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고, 전통적 기독교 신앙이 흔들리던 때였다. 과학은 진보했고, 오래된 믿음은 의심받았다. 이런 시기에 엘리엇은 전통적 종교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도덕관을 발전시켰다. 그렇다고 냉소적 무신론자가 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종교적 형식은 거부했지만, 그 속에 담긴 인간애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간직했다. 그리고 그 경계에서 독특한 시적 비전을 창조해냈다.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름다운 언어 때문인가, 아니면 깊은 감정 때문인가? 물론 그것도 맞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 살았던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어서 시를 읽는다. 엘리엇의 시는 바로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 150년 전 영국의 한 여성이 쓴 이 시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 지식인의 고민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보이지 않는 합창단에 나도 함께하길」 외에도 네 편의 시가 더 수록되어 있다. 「헨트에서 엑스까지 좋은 소식을 전한 이야기」는 긴박한 상황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치열한 여정을 그린다. 달리는 말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리듬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어머니이자 시인」은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두 아들을 모두 잃은 어머니의 비극을 다룬다. 개인의 상실과 국가적 대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절절하게 표현된 시다. 「자연의 여인」과 「종달새에게」는 각각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예술적 영감의 본질을 탐구한다.
번역은 항상 불완전하다. 한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와 문화적 맥락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다. 하지만 이번 번역본의 특별함은 바로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뛰어넘으려는 시도에 있다.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되, 현대 한국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의역했다. 직역이 아닌 의역을 선택한 것은, 번역의 목적이 단순히 원문을 한국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문이 담고 있는 정서와 사상을 한국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각 시에 대한 '작품 해설'도 포함되어 있다. 해설은 단순한 내용 요약이 아니라, 작품의 배경과 주제, 그리고 현대적 의의를 깊이 있게 다룬다. 19세기 영국의 문화적,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놓치기 쉬운 부분들을 상세히 설명하여, 독자들이 작품을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실 우리는 종종 고전문학을 멀게 느낀다. 시간적 거리, 문화적 차이, 그리고 낯선 언어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이다. 엘리엇이 고민했던 질문들—인간 존재의 의미, 삶과 죽음,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SNS와 인공지능으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근본적 질문들이 더 중요해졌다.
우리는 왜 읽는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감정적 경험을 위해서? 아마도 그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작은 경험을 넘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되기 위해 읽는다. 엘리엇이 꿈꾸었던 '보이지 않는 합창단'처럼, 책을 통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 경험의 합창단에 참여하게 된다.
이 책은 그저 19세기 영국 시의 번역본이 아니다. 인간다움에 대한 근본적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한 위대한 작가의 대답이다. 그리고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초대장이다. 엘리엇의 말처럼, "그 더 나은 자아는 인류의 시간이 / 눈꺼풀을 감고, 인간의 하늘이 / 무덤 속 두루마리처럼 접혀 / 영원히 읽히지 않을 때까지 살아있을 것이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는 엘리엇의 목소리가 15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문학의 진정한 힘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읽는 순간, 저자는 다시 살아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우리의 것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거대한 인류의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엘리엇의 '보이지 않는 합창단'에 당신도 함께하길.
* 이 책은 수익금의 일부를 어린이재단에 기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