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 삶의 무대에 내가 없었다는 것을.
늘 무대 뒤에 서 있었다. 조명을 받는 일은 없었고, 마이크를 쥐는 일도 없었다. 대신 나는 뒷정리를 하고, 손뼉을 치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며 자리를 채웠다. 회의실에서 먼저 자리를 정리하고, 단체 사진에선 늘 구석에 서고, 축하의 말은 건넸지만 내 기쁨은 말하지 않았다.
그게 익숙했다. 아니, 그렇게 하도록 자랐다.
“너만 튀지 마.”
“조용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다른 사람 먼저 챙겨야지.”
칭찬은 남을 배려하는 사람에게 돌아갔고, 나를 드러내는 사람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내 목소리를 접었다. 내 감정을 눌렀다. 어느 순간, 내 삶의 무대에 나는 조연도 아닌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웃긴 건 무대 조명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켜본 적이 없으니, 늘 누군가 켜주기만을 기다렸다. 말하자면, 내 인생인데도 대기실에서 대본만 외우고 있었달까.
밤이 깊을수록 이런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나는 누구의 삶을 사는 걸까?’
조연이 되는 건 쉽다. 실수해도 비난받지 않고, 기대도 크지 않다. 늘 ‘도움이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편안함을 택했을 뿐이다.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법만 배웠을 뿐이다.
그러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단 한 번이라도 무대 한가운데 서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의 이야기 속 배경이 아닌, 내 이름이 제목이 되는 삶을 꿈꿨다.
문제는, 그 꿈조차 두려웠다는 것이다.
무대에 한 번 나갔다가 실수하면 관객들이 야유할까 봐, 그날 밤 꿈에 나올까 봐. 아니면 다음 날 단톡방에 짤로 돌아다닐까 봐. 괜히 머릿속만 복잡해졌다. 혹시 실패할까 봐, 혹시 나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혹시 모든 것이 무너질까 봐. 그래서 스스로 묻는 걸 멈췄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도 될까?”
그 질문을 붙잡고 살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살아온 건 아닐까?
내 감정을 믿지 못하게 만들고, 내 선택을 틀렸다고 말하고,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밀어낸 그 익숙한 목소리들. 그건 누군가의 말이기도 했지만, 어느새 내 안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꿔 보기로 했다.
‘가스라이팅’이 아닌, ‘가스팅’
가스팅은 타인의 불빛에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불을 켜고 내 삶을 연출하는 선언이다. 책은 그 선언의 첫걸음이다.
당신은 조연이 아니다. 아니, 조연이었던 적도 없다. 단지 주인공의 자리를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의 목소리는 아직 유효하고, 당신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남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다면, 이제는 자신의 기대를 마주할 시간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불안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설플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당신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다.
조연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긴장감
주인공만이 느낄 수 있는 두려움
그 모든 것을 지나면,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그 무대 위였다는 것을.
조명이 켜졌다.
이름도, 조연도 아닌, 바로 당신을 향해.
이제, 당신 차례다.
이 책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당신의 무대가 열릴 것이다.
지금, 여기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