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저는 때때로 아이들의 질문 속에서 삶의 본질을 엿봅니다. 그들의 질문은 어른들의 복잡한 계산과 타협이 배제된, 가장 순수한 형태의 호기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들은 '왜'라는 단어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해부하려 합니다. 어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예를 들면 아빠의 수염, 할머니의 주름, 심지어 코 고는 소리까지도 그들의 눈에는 거대한 미스터리로 다가옵니다. 그 호기심은 때로 기발한 논리로 이어져 어른들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어루만져줍니다.
저는 민지가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에 뽀뽀를 퍼부으며 "내가 예쁘게 치료해 줄게"라고 말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나이란 그저 '치료'하면 되는 질병일 뿐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수많은 화장품과 시술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민지는 사랑과 순수함으로 단번에 해결했습니다. 그녀의 작은 손길은 할머니의 주름을 지우지는 못했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행복이라는 보톡스를 주입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준서의 질문은 어떻습니까. 아빠의 수염이 머리카락처럼 길게 자라지 않는 이유를 묻는 그의 질문은, 어른들에게 당연한 '면도'라는 행위를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빠의 수염이 마치 마법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턱에 후 하고 바람을 불며 "내가 더 강한 마법을 걸어줄게"라고 말하는 순간, 아빠의 피곤한 일상은 한순간에 동화 속 판타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눈에 세상은 그렇게 마법과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상상력은 어른들의 논리적 사고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합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때로 아주 개인적인 문제로 향하기도 합니다. 지우는 자신이 엄마의 아들인지, 아니면 엄마가 자신의 아들인지 헷갈려 했습니다. 결국 "왜 내가 엄마보다 형 같지?"라는 결론에 다다른 그는 엄마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책임감 있는 '형'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논리는 어른들의 시각에서는 터무니없지만, 그 속에는 엄마를 지켜주고 싶은 순수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살아 움직입니다. 하늘의 구름은 감정을 가진 존재여서 울면 비가 내리고, 바다는 물고기들의 땀으로 짠맛이 납니다. 별은 멀리 있어서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고, 별똥별은 떨어지면서 소원을 들어줍니다. 로봇 청소기는 전기를 먹고, 강아지는 꼬리로 생각합니다. 이 모든 기발한 상상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탄생한 시입니다. 그 시는 어른들의 현실에 묻혀있던 동심을 깨우고,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아줍니다.
현이는 할아버지의 숙제를 대신해주겠다고 나섰습니다. "할아버지가 자꾸 틀리셔서 제가 다시 풀어야 해요"라는 그의 말에는 할아버지의 나이 듦을 이해하고, 대신 짐을 짊어지려는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의 작은 어깨에 할아버지의 숙제가 놓였지만, 그 무게는 결코 무겁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행동을 통해 현이는 어른의 책임감을 배우고, 할아버지와의 유대감을 더욱 깊게 했을 것입니다.
예슬이는 아빠의 배를 보고 '왕자님'을 만들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아빠가 '왕(王)'자라고 정정해주자, 그녀는 '공주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잠든 아빠의 배에 사인펜으로 예쁜 공주님을 그려주었습니다. 그 그림은 아빠의 뱃살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아빠를 사랑하는 예슬이의 마음이 담긴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그 그림을 본 아빠는 아마도 뱃살에 대한 스트레스 대신 딸의 사랑에 대한 감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때로 어른들의 마음을 찌르기도 합니다. 나리는 "아빠는 회사에서 우리 몰래 다른 거 하는 거야?"라고 물었고, 민지는 "아빠는 사랑 안 하는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에는 아빠와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서운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그저 아빠의 사랑과 관심이 고팠던 것입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어른들이 놓치고 있는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지식의 보고입니다. 그들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유를 끊임없이 파고듭니다. 그들의 질문은 답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질문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함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갑니다.
저의 삶은 아이들의 질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엉뚱한 질문들은 저의 마음속에 굳게 닫힌 문을 열어주고, 잃어버렸던 동심을 되찾아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의 질문에 논리적인 답을 찾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순수한 호기심을 지켜보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른들의 세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