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여 혁신의 파도에 올라타라
안녕하십니까, 미래교육학자 신종우입니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의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제가 강단에서, 그리고 수많은 강연 현장에서 목격하는 대학의 현실은 참혹하리만치 냉정합니다. 한때 지성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은 이제 인구 절벽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나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침몰하고 있습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 문이 닫힐 것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은 이제 섬뜩한 예언이 되어 현실을 옥죄어 옵니다. 텅 빈 강의실의 정적은 대학의 유효기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묵시록과도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교육이 직면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지방의 이름 모를 대학뿐만 아니라, 서울의 명문대라 불리는 곳들조차 안심할 수 없는 위기입니다. 입학 정원보다 턱없이 부족한 신입생 수, 등록금에만 목매는 기형적인 재정 구조, 그리고 학생 한 명 없는 캠퍼스를 지키는 '좀비 대학'의 출현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목하에 통폐합의 피바람이 불고, 철밥통이라 여겨지던 교수 사회마저 붕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학이라는 제도가 수명을 다해가는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육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오늘의 학생을 어제의 방식으로 가르친다면, 우리는 그들의 내일을 뺏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00년도 더 된 이 명언은 지금 대한민국의 강의실에 가장 뼈아픈 일침을 가합니다. 세상은 AI와 디지털 혁명으로 급변하는데, 대학의 커리큘럼은 10년 전, 아니 20년 전의 낡은 지식에 머물러 있습니다. 4년이라는 긴 시간과 1억 원에 달하는 비용을 투자해 얻은 졸업장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청년들은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은 대졸 신입 사원을 다시 가르치는 데 2년이 걸린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등장한 생성형 AI, 특히 챗GPT의 출현은 교육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는 '거대한 파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단순한 암기나 정답 찾기 식의 교육은 사망 선고를 받았습니다. 교수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보다 AI의 데이터베이스가 훨씬 방대하고 정확한 시대입니다. 과제를 AI가 대신하고, 논문을 AI가 쓰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평가해야 할까요? 19세기에 만들어진 교실에서 20세기의 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순을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상을 감싸 안는다"라고 했습니다. AI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교육의 방향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을 머리에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상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칠판 앞의 독재자처럼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던 교수는 이제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학습 코치'나 '멘토'로 변신해야 합니다. 1대 100의 강의가 아닌, AI 튜터를 활용한 초개인화된 학습이 강의실의 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대학 시스템은 여전히 낡은 관습에 갇혀 있습니다. 학과 이기주의라는 높은 칸막이는 융합을 가로막고, 전공 필수라는 족쇄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배움을 방해합니다. 문과라서 기술을 모르고, 이과라서 인문을 모르는 반쪽짜리 인재를 양성하는 시스템으로는 AI 시대를 생존할 수 없습니다. 대학은 더 이상 상아탑 속에 고립된 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산학협력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현장과 연결되어야 하며, 대학 자체가 거대한 스타트업 인큐베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는 학위보다 '실력'을, 간판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대학 졸업장을 보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어디서 배웠느냐보다 무엇을 할 줄 아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노 디그리(Nano-degree)와 마이크로 크리덴셜(Micro-credential)처럼 필요한 기술을 짧고 깊게 배우는 방식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미네르바 대학처럼 캠퍼스 없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우는 혁신적인 모델들이 하버드보다 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현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책에서 저는 '캠퍼스 없는 대학', '구독형 대학'과 같은 파격적인 미래 모델을 제시합니다. 대학은 20대 초반에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수시로 돌아와 새로운 지식을 수혈받는 '평생 학습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4년제라는 경직된 틀을 깨고, 40대, 50대 중장년층도 언제든 다시 배울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도시 전체가 배움터가 되고, 기업과 대학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육의 미래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21세기의 문맹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배운 것을 버리고(Unlearning), 다시 배우는(Relearning)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바로 이 '언러닝(Unlearning)'입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 낡은 지식,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려야만 새로운 혁신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대학도, 교수도, 학생도 모두 과거의 옷을 벗어던지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AI 시대의 인재는 '호모 프롬프트(Homo Prompt)'입니다. AI에게 얼마나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가 그 사람의 능력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정답을 외우게 하는 대신,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 그리고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감성 지능과 협업 능력을 키우는 데 교육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AI와 공존하며 AI를 지배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대학의 위기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려 어디로 헤엄쳐야 할지,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구조선은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오픈 배지'를 통한 기술 증명, 하이브리드 러닝의 정착, 그리고 지역 사회와 공생하는 대학의 모델 등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입니다. 우리는 이 변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교육 개혁의 골든타임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한국의 대학은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지방 소멸과 대학 소멸은 궤를 같이합니다. 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교육이 변해야 국가의 미래가 있습니다. 낡은 시스템을 부수고 혁신의 토대 위에 새로운 교육의 성을 쌓아야 할 때입니다. 저항과 두려움이 있겠지만, 혁신하지 않으면 사라질 뿐이라는 절박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책이 교육 현장에 계신 선생님과 교수님,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학부모님, 그리고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작은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결정권자들에게는 뼈아픈 직언이자 실질적인 제안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지금 위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지만, 그 끝에는 분명 '교육의 르네상스'라는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변화는 고통스럽지만, 안주는 치명적입니다. 침몰하는 낡은 배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이제 저와 함께 교실 밖의 구명보트에 올라타, AI와 함께하는 새로운 교육의 대항해를 시작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교육의 본질을 되찾고,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진짜 교육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금부터 펼쳐질 이야기들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혁신의 불씨를 지피기를 기대합니다.
미래교육학자 신종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