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절판된 <주작의 숲>의 오메가버스AU외전입니다. 원작인 <주작의 숲>은 추후에 증보하여 재출간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여왕의 종마(種馬) 오메가버스 세계관>
@ 이 세계관은 ‘우성 오메가’가 절대 권력을 가진 모계 중심 사회입니다.
1년에 두 번 -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 열리는 ‘알파’ 경매.
사회의 최고위층을 차지한 ‘우성 오메가’들이 품종을 인정받은 알파를 사기 위해 경매에 참여하는 이 행사는 지극히 사적이고 지극히 은밀하기에 오히려 모두의 호기심을 도발하기 충분했다.
행사가 열리기 한 달 전, 에이전시가 사이트에 알파 프로필을 올려두면 경매에 참여할 우성 오메가가 자리를 예약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경매 한 회에 입장할 수 있는 자리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예약 경쟁이 치열했다. 그만큼 입장권 가격이 고액에 형성되었고, 알파가 입찰되는 경매가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구애 행위에 집중하며 씨를 뿌리는 존재가 화려한 깃털과 갈기를 가져야 하는데 하물며 인간의 세계에는 어떨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 사회에서 아름답지 않은 알파는 무가치했다. 달리 말하면, 알파에게 아름다운 용모는 무조건적인 의무와 같았다. 아름다움에 더하여 희귀한 매력까지 더해지면 그때부터는 경매라는 전쟁터에 참여할 자격이 부여되는 것이었다.
에이전시에 소속된 알파는 신장, 체중, 피부 색, 머리 색 그리고 눈동자 색까지 세심하게 분류되어 나름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관리를 받았다. 금발, 적발, 백발은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그 머리색에 적안, 녹안, 벽안을 가지고 있다면 입찰에서 이긴 오메가 주인의 애정을 받으며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그 아름다움이 존재할 때까지는, 그때까지는 말이다.
오늘의 행사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여성은 국내 굴지의 기업 중 하나인 사천그룹의 후계자로 유력하다고 알려진 ‘여진’이었다.
출생부터 기업 후계자 물망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행적이 베일에 싸인 신비주의자.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기에 여진의 존재는 근래 우성 오메가가 모인 곳이면 어디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공식 행사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평균 20대 초반에 결혼을 하는 것이 보통인 우성 오메가와는 다르게 서른 가까이 혼기를 한참 넘기고도 그에 대한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결혼을 하기도 전에 알파경매에 참석을 했다고 하니, 모두가 그 연유를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게걸스러운 궁금증에 애가 타는 이들이 말을 잇고 지어내고 또 퍼뜨렸다.
항간에서는 2세를 얻어야만 기업을 물려주겠다는 사천그룹 회장의 엄포가 있었더라는 말이 떠돌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출처가 불분명한 루머에 불과했다.
마지막 No.13 알파가 단상에 소개될 즈음에 행사장 자리를 가득 채웠던 참석자들의 반 이상이 사라져 빽빽했던 좌석이 이가 빠진 것처럼 보기 민망했다.
경매에 처음 참석했던 여진은 아직 단 한 번도 경매에 입찰하지 않았다. 여진은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았고 단상 위에서 벌어졌던 알파들의 재롱에도 무심했다. 그녀는 조용히 제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여 묵묵히 카탈로그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상에 나오길 기다리며 이미 점찍어둔 알파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면 이 경매에 참여한 것이 순전히 강요에 의한 것이었거나.
‘오늘 경매의 마지막 알파인 No.13을 소개하겠습니다.’
육중한 케이지가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좌석에 남아있는 이들이 탄성과 탄식을 동시에 내뱉었다. 케이지에 서 있는 알파는 백발에 적안을 가졌고 이전의 경매품과는 다르게 목에 쇠 목줄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화상 흉터로 보이는 붉은 얼룩이 새하얀 피부 위에 어지럽게 나있었다.
입찰 가격이 던져진 것 그때였다.
“…… 10억.”
모두가 숨을 멈추었다. 케이지 안에서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던 알파마저도 깜짝 놀라 얼음처럼 경직되었다.
잠시 넋이 나가있던 사회자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입찰액을 부른 참가자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내내 소리 없이 앉아만 있던 여진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자리에 남아있는 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헤치며 단상 쪽으로 걸어나갔다.
“10억. 이제 낙찰 선언하세요.”
여진이 사회자에게 자신의 입찰표를 던지며 말했다. ‘고객, 고객님. 아직 확인하실 부분이 남아있습니다.’ 사회자가 진땀을 흘리며 여진에게 리모컨을 내보였다.
여진이 말없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짜증스런 기색으로 낙찰 봉이 있는 곳을 향해 턱짓했다. 그 기세에 내몰린 사회자가 감히 더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자신의 자리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사회자가 낙찰 선언을 하며 봉을 세게 두드렸다. 그리고 오늘의 경매가 끝이 났음을 선언했다.
여진이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No.13 알파가 붉은 두 눈을 크게 떠 시선 끝에서 어룽거리는 여진의 뒷모습을 쫓았다.
한 번도 저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자신을 선택한 주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No.13은 알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붉은 눈을 가득 채운 눈물이 그제야 후두둑 떨어지며 쇠 목줄 사이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