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넘쳐나는 ‘최적의 답’, ‘나만의 영점’을 다시 맞추다
종합 리서치·데이터테크 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2027 트렌드모니터』를 출간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자책으로 독자와 만난다. 신간 《2027 트렌드모니터》는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AI 시대의 최종 해답으로 ‘확률주의 생존법’을 제시한다. 절대적인 정답에 올인하기보다 자신의 주파수(My-fi)와 심박수(BPM)에 맞춰 작은 시도를 지속하고 리스크를 제어하는 현대인들의 영리한 생존 전략을 정교한 데이터와 최신 사례로 분석했다.
0『2027 트렌드모니터』가 짚은 2027년 한국 사회 소비 변화의 핵심은 ‘영점(零點)소비’다. 소비자들은 일상의 여러 영역에서 자신에게 꼭 맞는 지점, 즉 ‘영점’을 정밀하게 재설정하고 있다. 그 영점에 들어맞는 대상에는 주저 없이 지갑을 열지만, 그 기준에서 벗어난 선택에는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AI와 알고리즘이 수많은 ‘최적의 답’을 제시하면서, 다수가 검증한 정답이 ‘나에게도 정말 좋은 선택’인지는 오히려 불분명해지고 있다. 이에 소비자들은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보다 ‘지금 나에게 맞는 가장 적합한 선택은 무엇인가’를 따지기 시작했다. 결혼식과 장례식, 직장 내 승진처럼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삶의 공식마저 자신의 상황과 가치관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마이-파이(My-fi)’로 설명한다. 사회가 정해 놓은 공식이나 빠르게 번지는 유행의 주파수에 무작정 올라타는 대신, 지금도 맞는 것(상식)은 지키되 한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아닌 것(고정관념)은 다시 따져보는 태도가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 트렌드를 따르지 않아도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한국 소비자들은 지금 저마다의 마이-파이를 켜고 있다.
동시에 AI가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손쉽게 만들어낼수록, 예측 가능한 정답보다 예상 밖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낯선 재미’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익숙한 대상이 전혀 다른 영역과 만나 새로운 재미를 만드는 ‘언클리셰(Un-cliché)’ 전략도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편의점에서 명품을 판매하고, 정상급 배우가 B급 이미지로 파격적인 도전에 뛰어드는 식이다. 익숙한 대상이 자신의 권위와 정형성을 잠시 내려놓고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영역과 만날 때 발생하는 ‘낯선 재미’가 소비자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시대에는 소비의 기준 자체도 양분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들은 가격과 스펙을 비교하는 소비는 AI에게 맡기는 ‘무감(無感) 소비’로, 시간과 수고를 들여서라도 직접 경험하고 싶은 영역은 ‘진심 소비’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표적인 것이 디저트와 덕질이다. 인기 디저트를 사기 위해 긴 웨이팅을 감수하고, 좋아하는 캐릭터나 아이돌의 굿즈에는 거액을 아끼지 않는 소비는 ‘효율’만 놓고 보면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얼마나 싸고 좋은가보다 ‘얼마나 내 마음을 뛰게 만드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를 ‘BPM 이코노미’로 정의한다. AI가 효율의 영역을 가져갈수록 소비자의 심박수를 높이는 경험과 취향의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모든 방면에서 잘해내려는 자기관리 방식 역시 달라지고 있다. 『2027 트렌드모니터』가 제시한 또 다른 키워드 ‘스탯 맥싱(Stat Maxxing)’은 건강, 운동, 수면, 자기계발 등 삶의 모든 능력치를 고르게 높이기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한두 개의 능력치에 자원을 집중하는 방식이다. ‘건강하게 살기’와 같은 넓은 목표보다 ‘수면 점수 85점 만들기’, ‘골격근량 1kg 늘리기’처럼 작고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남과 경쟁하기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최적점을 찾으려는 태도다.
저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흐름의 밑바탕에 ‘한정된 자원을 아무 데나 쓰지 않겠다’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물건이든 경험이든 관계든, 자신에게 어떤 효용을 주는지가 분명한 대상만이 지출의 우선순위에 오르고 있다. 이 정교해진 계산법의 끝에는 '확률주의 생존법'이 있다. 성공과 실패를 반반의 확률로 두기보다, 애초에 실패라는 경우의 수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총액이 정해진 가성비 예식을 찾고, 결말이 이미 보장된 콘텐츠에 몰입하며, 감정 소모의 위험이 있는 관계는 아예 시작하지 않는 태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결국 소비의 기준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실패 없이 선택할 수 있는가’다. 이제 중요한 것은 ‘많이’가 아니라 나에게 맞춘 ‘정확함’, 그리고 ‘실패 리스크 제어’다. 모든 영역에 자원을 분산하기보다 지금의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그 하나’에 집중하는 소비, 이른바 ‘영점소비’의 시대다. 이에 따라 2027년에는 가격이나 규모, 브랜드 인지도보다 ‘얼마나 나에게 맞는가’, ‘얼마나 정확하게 내 필요를 짚어주는가’가 소비를 결정하는 더욱 중요한 기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2027 트렌드모니터』는 마크로밀 엠브레인 트렌드센터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다년간의 소비자 인식 조사와 실제 행동·구매 데이터, 국내외 소비·문화 사례 등을 토대로 2027년 한국 사회의 변화를 깊이 있게 분석했다. ‘마이-파이(My-fi)’, ‘언클리셰(Un-cliché)’, ‘BPM 이코노미’, ‘스탯 맥싱(Stat Maxxing)’ 그리고 ‘확률주의 생존법’이란 주요 키워드와 함께 향후 주목해야 할 변화와 기업·브랜드에 대한 실천적 시사점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