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설화문학의 진수
중국의 『전등신화』, 한국의 『금오신화』에 비견할 만한 고전 중의 고전
세계 100대 영화로 손꼽히는 미조구치 겐지 감독 동명 영화의 원작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의 70번째 책으로 일본 근세 에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인 『우게쓰 이야기(雨月物語)』가 출간되었다. 『우게쓰 이야기』는 중국의 『전등신화』나 한국의 『금오신화』에 비견할 만한 일본 설화문학의 진수로 꼽히는 고전이다.
일본의 에도 시대는 ‘막번체제(幕藩體制)’가 정비되고 ‘참근교대(參勤交代)’가 시행되어 중앙의 문화가 전국으로 전파되는 한편, 임진왜란 후 조선 활자가 보급되어 전업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서민인 ‘조닌(町人)’들이 문학의 향수 계층으로 부상하는 시기였다. 에도 시대 후기에는 서민들의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세태와 인정을 그린 장르‘우키요조시(浮世草子)’와 중국의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등의 소설이나 희곡 등이 소개되면서 이들 작품을 번역하거나 번안한 장르 ‘요미혼(讀本)’이 등장하였다.
『우게쓰 이야기』의 저자 우에다 아키나리는(上田秋成)는 에도(江戶) 시대(1602~1874) 후기 소설 장르인 ‘우키요조시’와 ‘요미혼’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는 『전등신화』 『경세통신(警世通言)』 『오잡조(五雜俎)』 등 60여 종의 중국소설과 고사집, 『니혼쇼키(日本書紀)』 『겐지 이야기(源氏物語)』 『호겐 이야기(保元物語)』 등 110여 종의 일본 고전에서 자료를 빌려와 모두 9편의 설화로 이루어진 『우게쓰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그 작품들 중 「중양절의 약속」 「꿈속의 잉어」는 중국소설의 번안이며, 「잡초 속의 폐가」 「뱀 여인의 음욕」 역시 중국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작품들은 일본의 설화를 재구성한 것들인데 이들 작품 속에도 중국소설에서 빌려온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아키나리는 중국과 일본의 고전에서 재료를 이용하고, 고어와 한어를 섞은 고답적인 문체를 구사하며, 당시 ‘우키요조시’ 작가들이 시도한 새로운 소설 양식을 계승하여 『우게쓰 이야기』를 완성했다. 하지만 문체나 체제 그리고 내용을 살펴보면, 『우게쓰 이야기』는 단순한 중국 고전의 번역이나 번안 작품이 아닌, 아키나리의 독자적인 문학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탁월한 언어감각과 독자적인 기법을 도입하고 뛰어난 구성과 명쾌한 주제를 제시하여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편에 걸쳐 풍부한 고전 지식과 날카로운 감각, 우아한 문장과 긴밀한 구성과 군데군데 복선 등을 바탕으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허구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봉건질서와 유교적인 윤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나 그 이면에 감추어진 새로운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다.
예를 들면 전란 속에서 절개를 지키다 죽어간 열녀(「잡초 속의 폐가」), 사람을 잡아먹는 악귀의 성정과 그 이면에 곧고 굳건한 심성을 가진 스님(「푸른 두건」), 계집의 깊은 정욕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이를 물리치는 심지가 곧은 사내의 모습(「뱀 여인의 음욕」)과 이와는 반대로 파탄을 초래하는 주인공(「기비쓰의 가마솥 점」) 등은 바로 그가 창조한 인간상인 것이다. 이 밖에도 죽음으로 약속과 신의를 다하는 무사(「중양절의 약속」)나 허세를 비판하고 검약과 근면을 강조한 현실적인 금전관(「빈복론」) 등에는 당시 에도시대 일본인의 윤리의식과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처럼 그는 유창한 아문체(雅文體) 문장으로 괴이하고 신비한 분위기의 몽환적인 작품 세계를 창출하여, 그 속에 봉건사회의 틀을 넘어선 인간미를 풍기는 사람들을 창조하였으며, 더 나아가 인간 그 자체에까지 깊은 비판정신을 보이고 있다.
『우게쓰 이야기』는 근대소설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아키나리의 소설관에 기인한다. 그는 소설이란 권선징악의 방편이 아니고 재미있게 꾸민 이야기로서, 일단 완성된 작품은 독자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 때문에 『우게쓰 이야기』는 중국과 일본의 고전을 전거로 삼았지만, 원작들을 능가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우게쓰 이야기』는 1776년 처음으로 간행된 이래 일본뿐만 아니라 고전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7년 요미우리신문에는 독자들이 추천하는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책’에 대한 기사가 실렸는데, 『우게쓰 이야기』는 고전을 당해낼 책은 없다는 평과 함께 이 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은 최근까지도 다양한 문학 작품, 영화, 게임 등의 모티프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미조구치 겐지가 만든 동명 영화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이 영화는 1953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각종 매체에서 선정하는 ‘세계 100대 영화’ 목록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