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고 그름은 민중이 판단한다
인터뷰: 왕상한(서강대 법대 교수)
왕상한은 방송 진행자이기 이전에 법을 가르치는 선생이고 통상법 전문가다. 토론과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왕상한의 뿌리는 통상법이란 이야기다. 왕상한은 통상법이 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법이 아닌 법을 다루려면 법을 이루는 국가와 국가, 사회와 사회, 개인과 개인 사이의 관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왕상한은 법과 사회와 인간을 동시에 이해하려고 애썼고 결국 오지랖 넓은 세상 전문가가 되었다. 이건 토론과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왕상한의 자산이 되었다. 15년 동안 방송을 해오면서 왕상한은 수천 명의 전문가를 만났다. 그들에게서 얻은 지식은 왕상한의 지혜가 되었다. 방송인 왕상한의 상품성은 통상법 전문가와 방송인이라는 두 가지 역할에서 나온다. 어떤 시청자들한테 왕상한의 방송 진행은 편파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왕상한은 실질적 중립에 대한 신념이 있다. 토론 진행자도 또 한 사람의 패널이라고 여긴다.
1963년 7월 25일 출생. 서울대학교 법대에서 공부했다. 대학생 시절 법정에게서 청매라는 법명을 받았다. [조선일보]에 입사해서 사회부와 문화부와 경제부를 거쳤다.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과 워싱턴의 로펌에서 근무하고 1996년 서강대학교 법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외교부와 사법연수원에서 통상법을 가르쳤다. 1998년 외교통상부 통상전문관으로 일했다. 법무부 뉴라운드 법률지원단 자문위원과 행정고시와 외무고시 국제법 출제위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EBS [난상토론] 진행자를 맡았다. 2003년 제30회 한국방송대상 진행자부문을 수상했다.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왕상한입니다]를 진행했다. KBS [TV, 책을 말하다]를 진행했다. MBC 라디오 [세계는 우리는]과 KBS 1TV [심야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2007년 [WTO 유통업 개방의 반성과 대안], 2010년 [결정적인 책들] [왕상한 교수의 딸에게 쓰는 편지], 2014년 [여자도 아내가 필요하다] 등의 책을 썼다.
실리를 얻고 신뢰를 구축하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1박 2일 일정(7월 3~4일)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국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을 제안했는데,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최대 무역 상대국이라 나쁠 건 없다. 그래서 적극적이다. 그런데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한반도 담당 보좌관인 시드니 사일러는 “한국은 AIIB 가입에 신중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왕상한 교수는 통상법 관점에서 보면 한중 관계에서는 실리를, 한미 관계에서는 신뢰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실리는 경제적 이득뿐만 아니라 자기 기준에 부합하는 선택을 했다는 자기만족도 실리라고 말한다. 외교 통상에서는 명분보다 실리라는 말이다. 한국이 어떤 실리적 선택을 하려면 동맹국인 미국에 충분히 설명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통상 협상력이고 외교력이다.
왕상한 교수는 KBS [심야 토론]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협상가처럼 진행한다. 출연자와 밀고 당기기를 하거나 가끔은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하면서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중립을 벗어나 패널처럼 질문을 던지며 논의를 진행시킨다.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는 선거 방송의 진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행자도 또 하나의 패널이기 때문에 “이 질문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 그러면 대신 찔러주어야 한다. “한쪽으로 너무 기운다?” 반대편에 서서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진행자가 생각하는 것이 이것이라면 같이 토론해야 한다. 때로는 여당이 맞을 수도, 때로는 야당이 맞을 수도 있다. 토론은 치열하게 소통하고 타협해서 더 나은 방향의 결과를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준만의 이론으로 보는 세상
왜 박근혜 대통령은 ‘틀린 답’만 골라 찍는가? 여기에는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갈수록 꼬이기만 하는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문제가 갈수록 엉망진창이다.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된 안대희는 전관예우 논란으로 자진 사퇴를 했고, 문창극 후보는 언론사 재임 당시 썼던 칼럼과 교회 강연 등이 문제가 되어 자진 사퇴했다. 결국 사임을 했던 정홍원 국무총리가 연임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더욱이 내각 2기 국무위원으로 지명된 인사들도 잇단 도마에 올랐다. 논문 표절 의혹 등 각종 비리 의혹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 철회하는가 하면, 인사청문회에서 위증 논란과 ‘폭탄주’ 논란으로 문제가 되었던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를,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자기 표절 등 비리 백화점인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 강행하기로 했다.
서강대학교 손호철 교수는 “요즈음 박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초등학교 친구가 떠오르며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의 사지선다형 문제는 이론적으로 보자면 답을 찍기만 해도 확률적으로 4분의 1은 맞아야 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답을 몰라 찍으면 틀린 답만 골라 찍는 특이한 ‘재주 아닌 재주’가 있어 꼴찌를 도맡아 했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사람들과 국정을 운영하는 일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문제가 있는 인사들만 선택하는지 ‘세상에 찍어도, 찍어도 그렇게 틀린’ 사람들만 골라 찍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철희의 트루 폴리틱스 : 인사 실패와 대통령의 선택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제하에서 권한이 막강한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하지 못 하도록 하는 장치다. 대통령제는 언제든지 권력의 사유화 또는 위임 민주주의의 위험 요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 6월 인사청문회를 실시하는 인사청문회법이 제정되었다.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이 모두 인사청문 대상이다. 이 법을 제정하기로 한 것은 새누리당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총리 후보자가 연거푸 낙마하자 인사청문회를 손보자고 한다. ‘황희 정승이라도 지금의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한다. 지금의 인사 실패가 오직 인사청문회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인사 청문 절차는 미국에 비해 엄격하기보다는 훨씬 느슨하다. 인사 실패가 반복되는 것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과 그에 따른 부실한 검증 시스템 때문이다(그 정점에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이 크다). 결국 인사 실패는 제도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라는 말이다. 대통령이 특정 인물에 호의를 드러내면 검증 라인에서 제대로 검증하기란 쉽지 않다. 아래로부터의 추천 인사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하명 인사에 길들여지면 나쁜 흠도 어떻게 해서든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모든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또 반드시 살펴야 한다(衆惡之必察焉衆好之必察焉)”는 공자의 말을 되새겨야 한다.
한국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막강하다. 인사 실패가 반복되는 것은 대통령이 야당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제라는 권력 구조는 삼권분립을 기초로 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부득불 대통령과 의회 간의 대립은 피할 수 없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대립을 완충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타협이다. 진영 논리로 첨예하게 맞서기보다는 대통령이 야당에 일정한 지분을 나누어준다면, 인사 이슈에서 야당의 공세도 약화될 것이다. 인사 실패의 위기를 극복할지 아니면 무너질지는 전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다. 타협하면 성공하고, 독점하면 실패한다.
김종대의 안보 설명서 : 이상한 비무장지대의 전쟁할 수 없는 군대들
2014년 6월 21일 동부전선 22사단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태를 수습해야 할 소초장이 탄약고 열쇠를 상황병에게 맡기고 인근 GP로 도주했는가 하면, 상황병은 책상 밑에 숨어 전화기를 붙잡고 중대본부에 연락하기에 바빴다. 선임분대장도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 소총으로 7~8발을 발사해 무기고 자물통을 부수려고 시도했다. 순식간에 지휘와 통제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더욱이 임 병장을 검거하는 과정에서도 허점이 드러났다. 총 9개 대대라는 엄청난 병력을 출동시켜 아군끼리 오인해 교전하기도 하고 현장에 투입된 병력이 너무 많아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상당수 병력은 관심사병이라 실탄도 지급되지 않은 빈총을 갖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로 인해 사태 수습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더 많은 희생이 뒤따랐다.
전방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병사들은 장시간 경계와 순찰, 매복이라는 단순 업무에 거의 생각이 없어지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다. 창조성이 소진된 채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일상을 이어가는 병사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곳의 작전적 특성이나 임무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이들은 전방의 북한군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순찰을 나올지도 모르는 간부를 감시한다. 이들에게는 “우리의 적은 북한군이 아니라 간부”라는 농담이 퍼져 있다. 대한민국 육군은 무기를 덜 구입하더라도 전방의 적정 병력과 부대 규모는 목숨을 걸고 유지하려고 한다. 소모전과 진지전에나 어울릴 대병(大兵)주의로 무장한 육군은 분단 이후 군사분계선 감시와 방어에 거의 똑같은 패턴의 부대 배치와 규모 유지, 군사 전술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비합리적인 군사정책은 전방에 우리의 자식들을 인질로 가두어놓고 원시적인 재래전에 대비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호모 이코노미쿠스 : 대한민국호가 직면한 두 가지 경제 태풍
한국 경제는 태풍권으로 진입하고 있다. 경기 부양책과 리디노미네이션(화폐개혁)이라는 태풍이 한국 경제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중장기 흐름을 좌우할 두 태풍은 약과 독 성분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먼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기 부양책 성공 여부가 관심이지만, 어떤 결과를 빚든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경기 부양책과 리디노미네이션은 경기 활성화, 대외 신뢰도 제고, 지하 자금 양성화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2014년 3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지 않느냐의 의원들의 질의가 잇따랐다. 이 후보자는 “필요성은 충분히 인정하지만 시행 시 부작용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 상당한 논란과 비용이 불가피한 화폐단위 변경을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화폐개혁이란 경제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말인데, 화폐개혁을 하더라도 시기는 경제가 안정된 이후라야 한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후유증만 남겨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도 경기 부양에 총력을 기울이는데, 이는 인사 실패 논란과 세월호 참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경기 회복마저 지지부진하면 조기 레임덕과 정권의 위기에 직결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경기 부양은 예산의 효율적 집행이 우선한다. 추경예산이 집행되더라도 그 예산이 타당한지, 집행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따져야 한다. 그래서 경기 부양책의 부작용과 리디노미네이션이 만나게 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요 내용
명랑 독서
서민의 [명랑 독서]에서는 사형 제도의 존폐(存廢)를 다룬다.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에게 사형이 집행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17년간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는데, 국제사면위원회는 그런 맥락에서 우리나라를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영철이나 조두순처럼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권을 생각하면 사형 제도를 폐지해야 하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생각하면 사형 제도를 유지시켜야 한다. 소설 [리뎀션]이 그 답을 알려줄 것이다.
박홍규의 인문 이야기
박홍규의 [첫 권예와 민예]에서는 권력의 예술(權藝)과 민중의 예술(民藝)을 살펴본다. 민예는 생활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생겨나서 민간으로 전해오는 인민 고유의 공예, 예능, 민속 예술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민예는 인민의 예술로 인간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왔다. 폴 존슨의 [새로운 미술의 역사]에서는 중국과 인도, 일본과 한국의 아시아 미술을 잠깐 언급할 뿐 대부분 서양미술에 할애한다. ‘새로운’ 미술사가 전혀 아니고, 서양미술만을 미술이라고 보는 편협한 서양중심적 미술사인 것이다. 헨드릭 빌렘 반 룬의 [세계 예술의 역사]나 [반 룬의 세계사 여행], [반 룬의 인류 이야기], [반 룬의 지리학]도 모두 비서양을 언급하지 않거나 제국주의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인물 FOCUS
김환표의 [에드워드 스노든: “나는 반역자도 영웅도 아니다. 나는 미국인이다”]는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정보 수집 도구인 ‘프리즘’의 실체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조명한다. NSA는 프리즘을 통해 개인 이메일과 영상, 사진, 음성 데이터, 파일 전송 내역, 통화 기록, 접속 정보 등 온라인 활동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해왔다. 9 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정부는 외국인 테러리스트 의심자를 추적하는 FISA 프로그램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도입한 게 프리즘이다. 프리즘이 중동, 워싱턴 주재 각국 대사관, 유엔 사무실, 프랑스, 독일, 교황청 등 미국의 ‘우방국’ 주요 정상에 대한 도청과 감청을 해왔다는 사실도 공개되었다. 과연 스노든은 미국의 국익에 반한 ‘반역자’인가? 진실을 세상에 알린 ‘영웅’인가?
유대인의 초상
함규진의 [피터 드러커: ‘천부적 구경꾼’의 화려한 퍼포먼스]는 ‘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 경영 사상가’ 혹은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등으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를 조명한다. 우리에게 드러커는 이렇게 알려져 있지만, 신문기자 경제 분석가 칼럼니스트 작가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치거나 겸했으며, 이후에도 대학에서 동양 미술을 강의하거나 소설을 쓰는 등 경제 경영 전문가로서는 영 어울리지 않을 듯한 행보를 보였다. 드러커에게 평생의 화두는 ‘지식’과 ‘인간’이었다. 그는 자유의지가 없이 조직이나 체제의 부속품으로 움직이는 것을 혐오하거나 남의 앞에 서서 이끌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는 일을 선호했다.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영토를 조직론으로 확장시키고, 경영을 중요한 가치 창출원으로 격상시켰다. 드러커 경영학이 추구하는 아이러니의 미학을 불합리와 모순에 찬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추구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경제사상
원용찬의 [존 러스킨의 생명 경제 2: 빵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부]는 지난 호에 이어 정치경제학자로서 근대 경제학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 존 러스킨의 경제사상을 살펴본다. 러스킨은 한계효용의 법칙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빵과 대화의 즐거움을 한 차원 높게 파고든다. 빵은 영양을 제공해주는 기능을 가지면서 서로 대화하고 식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다. 재화에 내재한 고유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향유 능력은 우리 삶의 가치를 높여준다. 고유가치는 향유 능력을 만나 인간의 생명 발달에 공헌할 때 유효가치로 드러난다. 러스킨은 금전의 가치를 최고로 취급하는 물질 경제학에서 탈피해 인간의 ‘생명과 삶’을 최고로 생각하는 경제학을 주창했다. 그의 경제사상은 한마디로 ‘생명 없이는 부도 없다’로 집약된다.
정길화 PD의 라틴아메리카 이슈 기행
정길화의 [헛되이 부를 수 없는 이름,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2014년 7월 12일 탄생 110주년을 맞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조명한다. 그가 죽은 지 40여 년이 흘렀지만, 칠레 국민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다. 20세에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펴내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은 네루다는 스페인 내전 기간 중 절친한 친구인 시인 로르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인생에서 중대하고도 분명한 경험을 하게 된다. 네루다는 파시즘에 대한 분노로 열혈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1945년 귀국 후 칠레 북부 탄광 지대 노동자들의 지지로 상원 의원에 당선되어 정치인으로서 삶을 시작한다. 1969년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양보해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지만, 1973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칠레의 민주주의는 붕괴되었다. 서정 시인에서 민중 시인으로 역사의 흐름을 온몸으로 체험한 파블로 네루다, 그가 칠레의 국민 시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뒤집어 읽는 심리학
김병수의 [순수한 마음을 갖기란, 원래 불가능한 것이다]는 인간의 마음이 순수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우리는 불현듯 성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든지, 과격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른다든지 하는데, 이는 모두 정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마음의 현상이다. 이런 정도의 ‘원하지 않는 침입적 사고’는 정신장애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흔히 나타난다. 우리의 생각은 절대로 순수하고 정갈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은 목적에 일치하는 방향으로, 이성적으로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간이 완벽할 수 없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오류는 항상 일어난다. 그러니 제발 마인드 컨트롤하지 마라.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것은 효과도 없으면서 괜히 쓸데없이 힘만 빠지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