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은 2013년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정치 지형은 원래 야당에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패배주의가 확산되고 있었다. 막판에 지원 유세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안철수 후보 탓으로 책임을 돌리는 모습도 나왔다. 오히려 그는 매를 들었다. 대선 패배의 원인이 민주당 바깥이 아니라 민주당 내부의 순혈주의와 파벌주의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도 민주당의 패인을 분석하면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민주당은 그 옛날 자신들이 맞서 싸웠던 권위주의 정권과 별 다를 바 없는 조직으로 전락해 있었다. 소통과 수평의 리더십을 상실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중민 이론을 주창했다. 중산층 내부에 불합리한 권위에 저항하는 검증 의지를 가진 중민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 중민으로 386세대를 꼽았다. 민주당 대선 평가 과정에서 드러난 점은 중민 세력이 부패하고 퇴락했다는 사실이었다. 대선 이후부터 그는 민주당 내부의 보수화된 중민 세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대상은 운동권 출신 386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친노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서 중민에 대한 견제와 비판을 소홀히 해왔다고 자책했다. 비난받더라도 비판하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책무였다. 안철수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야권에 새로운 중민 세력이 생겨나고 건전한 견제 세력의 역할을 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7·30 재보선의 책임을 지고 안철수 대표는 사퇴했다. 동시에 수년 동안 정치권의 혁신 동력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안철수 현상도 중대 기로에 섰다.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실망과 정치 불신이 팽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1987년 고 김대중 대통령과 중민 이론에 대해 처음 대화를 나누었던 때를 기억한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야권이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1945년 2월 15일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사우스일리노이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빌레펠트대학에서 포스트닥 연구원으로 일했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동안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했다. KBS 비상임 이사로 활동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외규장각 도서반환 관련 민간 협상 대표로 활약했다.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으로 일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인권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2006년부터 김대중평화센터 안보와 평화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진정 야당으로 살아남는 법
7 30 재보선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의 패착이 늘어만 가고 있다. 특히 세월호 특별법 합의 과정에서 여당에 끌려다니는 야당이 되어버렸다. 야당이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양 날개를 가져야 한다. 싸울 때는 진짜 결연하게 싸워야 하고, 싸우더라도 민생 정치를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 정치 투쟁과 민생 정치는 별게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금 야당은 자기 비전과 리더십이 없다. 야당을 지지하는 세력에도 존재감을 주지 못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실권파들은 선거에 승리하기보다는 당 안에서 자신의 지위나 특권을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굉장히 좁고, 자기중심적이고, 특권적이고, 폐쇄적이다. 야당이 무능한 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원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