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난 파리에서 발견한 예술과 삶의 풍경
파리를 들이마시는 것, 그것은 영혼을 보존하는 것이다 ― 빅토르 위고
소설가 함정임이 1년 중 한 달을 보내는, 프랑스 파리 곳곳을 산책하며 느낀 것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소설가이자 역자인 그녀가 소중한 인생 중 한 시기를 사용하는 파리에서의 하루하루는 과연 어떨까?
저자가 파리에 도착해서 처음 하는 일은, 마치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자식이 어머니께 안부를 올리러 가는 것과 같이, 노트르 담 대성당에 가서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행위이다. 다음으로 ‘거주할’ 아파트를 찾아가 약간의 짐을 정리한다. 여행자인데도 ‘집’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주일을 머물든 한 달을 보내든 저자가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지친 몸을 쉬러 들어가는 곳은 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보더라도 제대로 보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여행의 본질, 여행을 통한 인생의 사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처음 파리에 발을 디딘 10여 년 전부터 이런 식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야기의 흐름은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사람의 동선이 느껴질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몽테벨로 강둑길에서 투르넬 강둑길로, 조르주 페렉이 기거하던 아파트가 있는 거리에서 자신의 아파트로, 바람 따라 거닐다 만난 베르 갈랑 공원과 퐁 뇌프 다리, 퐁 뇌프에서 퐁 데자르 사이 콩티 강둑에 늘어놓은 헌책들,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한 올 한 올 펼쳐지는 예술과 인생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빛의 굴절이나 공기의 냄새 등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며, 영구적인 체류나 단순 여행자로서의 입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각이 정체되어 있지 않아 파리를 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글이다.
발자크, 위고, 페렉, 보들레르 같은 소설가들이나 로랭, 렘브란트, 터너, 들라크루아, 카미유 클로델 같은 화가들, 실비 바르탕과 에디트 피아프 등의 가수, 외젠 아제나 브레송 같은 사진작가들의 숨결이 여전히 느껴지는 파리는 저자에게 예술의 감흥을 일으키는 도시이다. 그들의 책을 읽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그리고 그들의 그림에 감동하며 보내는 30일의 여유는 파리를 하나둘 더듬기에 충분하다. 문학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도시 파리에서 소설가 함정임이 하루하루 인생을 사용하는 모습을 담은 이 책은, 삶과 예술이 얼마나 절묘하게 어울릴 수 있는지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본문 소개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리면 제일 먼저 노트르 담 대성당으로 달려간다. 홍콩 경유 노선인 캐세이 패시픽 항공을 이용할 때는 아침 7시경이 되고 파리 직항 노선인 대한항공을 이용하면 저녁 7시경이 된다. 물론 파리를 떠나기 전에도 반드시 노트르 담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한다. 광장에 들어서서 노트르 담의 거대한 두 탑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파리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 <나의 성스러운 어머니> 중에서
나는 리네 거리 11번지 아파트 건물 입구에 부착된 번호판의 개인 번호를 누를 때면 페렉이 살았던 13번지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붉은 꽃을 피운 제라늄 화분이 창마다 놓여 있다. 페렉이 살았던 30년 전에도 제라늄 화분은 그렇게 놓여 있었을 것이다. 외관상 변한 것이라곤 없다. 다만 페렉은 이제 이 거리에 없다는 것. 그러면서 나는 페렉의 아파트를 페렉의 존재처럼 느낀다. 아파트 건물 문을 밀고 들어가는 순간, 나는 파리의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사물들』의 주인공 제롬이거나 실비가 된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로부터 나와 병행하는 관찰자의 시선을 느낀다.
─ <삶, 리네 거리 11번지 혹은 13번지> 중에서
몽파르나스의 유래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그곳에서 우아한 고대적 풍경과 유산을 찾아볼 생각은 일찍부터 버리는 게 좋다. 세계 2차 대전 발발 직전까지 30년 간 모딜리아니, 장 콕토, 헤밍웨이, 자코메티, 마티스, 피카소, 샤갈 등 보헤미안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몽마르트르에 이은 아방가르드 예술을 주도했지만, 원래 이곳은 오랫동안 쓰레기 조각들을 잔뜩 쌓아놓은 잡초밭에 불과했다. 파르나소스 산이란 고대 문화로의 향수나 동경에서 붙여진 이름이기보다는 조각 나부랭이를 쌓아놓은 언덕을 경멸적으로 조롱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뒷이야기도 있다. 몽파르나스의 초라한 교외 보지라르 지구의 도살장 부근의 ‘벌집’(라 뤼슈-하나의 원형 건물에 140여 개가 넘는 아틀리에를 가진 예술가 공동체)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조롱의 의미를 공감할 것이다.
─ <보헤미안,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