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세계대전 후 1천만 부가 팔린 일본 대표 소설
▶ 패전 후 윤리적 기반을 잃은 일본 사회를 대변한 무뢰파 대표 작가의 중편소설
▶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가장 존경하는 작가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의 모델이 된 바로 그 작품
《인간 실격》은 주인공 오바 요조가 서문을 비롯해 세 편의 수기를 통해 27년간의 생애를 스스로 기록하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첫 번째 수기_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이중적인 생활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동화되고자 익살을 떨면서 보낸 소년기, 두 번째 수기_인간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잊고자 술과 담배, 여자에 탐닉하고 좌익사상에 물드는 청년기, 세 번째 수기_약물 중독 등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피폐한 삶을 사는 청년기.
시골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순수하게 자란 오바 요조가 세속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속물적이고 가식적인 사람들을 보면서 오히려 공포를 느끼며, 그것을 잊고자 술, 담배, 여자 등 쾌락에 빠져들면서 점점 파멸해가는, 즉 인간으로 실격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소설 속의 이야기에는 작가 자신의 실제 체험이 상당 부분 담겨 있으며 주인공의 삶을 통해 세속에 대한 반감과 나약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대변하는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은 일본 패전 이후 좌절감과 상실감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데카당스파(허무주의, 퇴폐주의) 혹은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파멸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39년의 생애 동안 총 다섯 차례의 자살 기도 끝에 삶을 마감한 다자이가 죽기 한 달 전에 탈고한 작품인 만큼 유서나 다름없는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 유지였던 집안 배경, 엄격한 아버지, 집안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동시에 집안을 실망시켰다는 자괴감, 학업 실패, 긴자 카페 여종업원과의 동반 자살, 아내의 불륜, 좌익 활동, 약물 중독, 요양소인 줄 알고 들어갔던 정신병동 입원 등 다자이 오사무의 실제 체험이 소설의 전반적인 골격을 이루고 있다.
나약함, 허무주의와 자기 파멸의 극단
주인공 오바 요조는 태어날 때부터 수동적이고 나약한 성격을 타고났다. 싫어도 싫다고 못 하고 좋은 것도 마음껏 표현 못 할 뿐 아니라 사람들과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요조는 끊임없는 익살로 자신의 어두운 성격을 감추며 살아간다. 심지어 하인들에게 강간당하고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는데, 이것은 인간, 심지어 부모님조차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자 인간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요조는 여섯 살 연상의 친구 호리키를 통해 술과 담배, 여자, 좌익사상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고 탐닉하게 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마저 가진다. 특히 매춘부는 요조에게 더없는 위안이 된다. 아무런 이해타산 없는 호의, 강요하지 않는 호의,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호의를 베푸는 그들에게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는 요조는 기실 인간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번거로움, 돈, 운동권 일, 여자, 학업을 생각하면 도저히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밤을 함께 보낸 긴자의 카페 여종업원과 바다에 뛰어들어 동반 자살을 기도했으나 혼자 살아남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자살 사건 이후 집안과의 연이 완전히 끊어지고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요조는 우연히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나 학업에도 실패하고 집안을 실망시켰다는 자괴감에 빠져 점점 술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는 요조는 여자들의 집을 전전하며 정부(情夫)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점점 더 나약한 인간이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순수한 믿음의 결정체라고 믿었던 어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 인간답게 살아갈 희망을 품지만 아내가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사람들을 점점 더 믿지 못하게 되면서 삶의 기쁨으로부터 영원히 멀어진다.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때 묻지 않은 믿음 때문에 아내가 능욕당했다는 사실에 요조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며 알코올만 찾는다.
매일 술에 의지하고 분노에 치를 떨며 불면의 밤을 보내던 요조는 어느 날 밤 아내가 사놓은 수면제를 발견한 순간 충동적으로 한입에 털어넣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또다시 미수에 그친다. 몸이 점점 더 쇠약해져 각혈을 하자 술 대신 불안감을 이기려고 찾은 것이 모르핀이다. 결국 모르핀 중독에 빠져 몸을 가누지 못했을 때 아내와 친구, 후원자의 설득으로 병원에 보내졌으나 그것이 사실은 감옥과도 같은 정신병원이라는 것을 알고 또다시 인간에 대한 배신감을 느낀다. 정신병원에서 요조는 자신이 미친 사람, 폐인, 즉 인간 실격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병원을 나와 고향으로 내려간 요조는 평생 두려운 존재였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고뇌의 단지가 텅 비어버린 상태에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