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말을 쓰지만 삶은 같다
가난하고 고단하지만 꿈을 버리지 않고 삶의 질곡을 이겨나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로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던 작가 박수정이 이번에는 남미의 이웃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지은이는 남미의 8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쿠바, 페루, 콜롬비아, 베네수엘라를 90여 일 동안 여행하며 버스로 국경을 넘고 변두리 구석구석을 누비며 남미의 땅내와 사람들의 살내를 맡았다
지은이는 남미에 새겨진 식민과 강제 노예 이주라는 아픈 역사를 더듬고, 60~80년대 남미 땅을 할퀴고 간 독재 정권의 학살과 납치, 실종 흔적을 따라 걸으며, 지금도 그 상처로 아파하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고 저항하는 사람들, 가난과 소외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지만 이들이 처한 문제는 곧 우리 자신의 문제와 다르지 않으며, 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곧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다. 그래서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 발전노조에서 문화를 담당하는 지노는 이렇게 외친다. “세계의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라고.
남미의 꿈꾸는 자들을 따라간 여정
이 책은 보통 여행기에서는 만나기 힘든 여정을 보여준다. 제의 연극을 연구하는 단체 ‘나무닭움직임연구소’가 2007년 체 게바라 사후 40년을 기념하는 연극을 준비하는 첫걸음으로 계획한 여행에 동행하게 된 지은이는 2006년 9월부터 50일간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칠레 산티아고, 볼리비아 라파스, 쿠바 아바나, 페루 비야 엘살바도르를 이들과 함께 여행하고, 40일간 페루 아야쿠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북부를 혼자 여행했다. 나라 간 이동 시에는 거의 대부분 버스를 이용했으며, 각 나라에서 주로 찾고 만난 사람들은 사회, 노동, 문화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다.
첫 방문지인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에서는 산타카타리나 연방대학 학생들이 만든 문화예술모임인 에스피랄, 산마을 솔 나센치, 아동청소년교육공동체인 아팜, 발전노조, 흑인여성공동체가 속한 몽트 세라 성당을 방문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토요일 저녁마다 어리고, 젊고, 늙은 아나스타시아 딸들이 성당에 모인다. 미사에서 신부님은 “우리 공동체는 희망을 갖고 한 발 한 발 걸어왔다. 마음속 눈을 감지 말라. 세상에는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거리에는 이름을 잃은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고통 받는 어린이들이 있다. 희망을 갖고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에 저항하자, 변화시키자”고 말했다. 몽트 세라 성당을 오르는 길처럼, 가파른 길에 놓이고,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삶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 삶들, 외따로 떨어지지 않고 이렇게 한데 모이면 조금은 앞이 보일 것이다. 언덕길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더디더라도."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 브라질, 플로리아노폴리스」 중에서
쿠바에서는 아바나 미르마르에 있는 문화의 집에 머물며 그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산타클라라에 있는 체 게바라 기념관과 박물관을 다녀왔다.
"체 게바라가 잃어버린 동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이야기를 쓴 작은 책이 있기에 보았더니 아저씨가 비닐봉지를 하나 가져온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하는데, 아저씨는 그 책과 내가 미라마르에서부터 들고 와 땀으로 다 젖어버린, 문학교육센터에서 받은 잡지 세 권과 저 아래에서 산 체 일기책을 담는다. 그냥 가져가라며. 순간 콧날이 시큰해진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먼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는다. 그리고 볼을 내밀면서 “그라시아스[고맙다]!”라고 한다. 내가 해야 할 말을 왜 아저씨가 하는지. 눈시울이 아려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사람, 사람들: 쿠바 아바나」 중에서
페루 아야쿠초에서는 페루 납치•체포•실종자 가족 국가협의회가 마을에 만든 기억 박물관을 방문해 그 학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이들과 함께 학살이 가장 많이 이루어졌다는 지역을 버스로 더듬고 스페인을 최후로 몰아내 남미 해방을 완결 지었던 키누아에 가보았다.
"마리벨이 어느 사진 앞에서 내게 말한다. 센데로 루미노소 조직원들을 잡겠다고 나선 군인들이 농민 집에 들이닥쳐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 아이들이 늘 보던 ‘아버지 목을’ 칼로 베었단다. 마리벨이 오른손을 쫙 펴 손날을 세워 ‘목을 베는 모습’을 해 보이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훔쳐내도 소용이 없다. 마리벨이 이야기를 멈추고 조용히 나를 본다. 이제까지 마리벨이 한 이야기를 알아들었다고 느낀 건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었나 보다. 마음에 무겁게 하나씩 들어찼던 건 눈물이었나 보다. 나는 그만 꺽꺽 운다.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는데, 무척 서럽고 억울한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어댄다."
―「살아 있는가, 죽었는가: 페루, 아야쿠초」 중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이곳을 꿈꾸기 위하여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에서 사람들의 숨결이 밴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니며 우리 이웃의 한숨과 눈물과 꿈을 끄집어내어 한 편의 삶의 모자이크를 완성시켰던 지은이는, 이 책 『세계의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에서 브라질 솔 나센치 마을의 높은 산마을 언덕길, 황량한 모래벌판에 만들어진 마을 페루 비야 엘살바도르의 모래 먼지 날리는 마을길, 콜롬비아 보고타로 향하는 가파르고 깎아지른 벼랑길을 따라가며 그 길을 살아온 남미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삶과 역사, 그들이 꿈꾸고 만들어갈 내일을 펼쳐 보인다. 그들이 안고 있는 상처가 우리의 상처보다 얕지 않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꾸는 꿈이 우리의 꿈보다 작고 무르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이 보다 더 나은 곳이 되기를 꿈꾸게 하고, 그리하여 행동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