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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 상세페이지

어린이/청소년 청소년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

소장종이책 정가13,000
전자책 정가30%9,100
판매가9,100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 표지 이미지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작품 소개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 “성공을 위해 사는 게 꼭 나쁜 걸까요?”
신라 최고의 천재 최치원을 통해 발견하는 성공의 진정한 의미!

동녘 ‘우리 인물 답사기’ 시리즈의 두번째 책. 이 시리즈는 철학 소설 형식으로 한국 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들려준다. 신라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최치원, 그의 노력과 성취의 아이콘을 좇는 대학생 현준. 최치원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달중. 그 둘의 우정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살았던 최치원을 인상적으로 스케치한다.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그린 『다산, 그에게로 가는 길』을 첫 책으로 시작한 ‘우리 인물 답사기’ 시리즈는 그동안 ‘위인’으로 바라보았던 사상가들의 얼굴을 한 겹 벗겨내고,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다.

고운 최치원은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뛰어난 문장가였다. 868년 12세 때 당나라에 유학, 7년 만에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그러나 17년간 당나라 생활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높은 신분제의 벽에 가로막힌다.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며 외직을 자청해 주로 지방에서 하급 관리를 맡아 지내다가, 자신의 뜻을 현실 정치에 펼쳐보지 못하고 깊은 좌절을 안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룩한 학문과 문장의 경지는 높았으나, 골품제도를 벗어날 수 없었던 난세를 산 최치원의 삶은 그가 이룩한 높은 경지만큼 불행했다고 전한다.


출판사 서평

열두 살에 홀로 당나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최치원,
육두품이라는 신분제도에 꺾인 최치원의 꿈과 이상을 소설로 읽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국내 취업 시장에서 유학파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자녀를 일찌감치 해외 학교에 보내는 ‘조기 유학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대학 입시와 취업하는 데 있어 영어의 비중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조기 유학으로 인한 상당한 경제적 지출과 ‘기러기 아빠’로 상징되는 가족 해체 등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1천여 년 전에 이미 조기 유학에 성공한 역사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최치원이다. 당나라에서 17년을 보낸 최치원의 삶은 어땠을까. 육두품이라는 신분제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 당나라에 왔지만, 외국인으로서의 한계를 또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서 ‘나루[津]’, 즉 옛글에서 ‘통진(通津)’은 벼슬길로 나아가는 길이자 입신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나루’는 벼슬길에 들 수 있는 어떤 방법이었던 것이다. 신분제의 한계를 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최치원이 이국에서 성공을 위해 다시 서야만 했던 또 하나의 나루. 최치원은 그 나루를 찾았을까.

저자는 최치원이라는 인물 속에 담긴 이야기가 상당히 신비로웠다고 말한다.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9세기에 열두 살 어린 소년이 당나라를 향해 떠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당나라 과거에 합격했다. 당나라에서 유명한 문사로 지내다가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그러나 오래지 않아 가야산으로 숨어 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전하는 이야기 속 최치원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왜 최치원은 겨우 열두 살에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가야 했을까. 신라로 돌아와서 관리 생활을 하다가 왜 갑자기 가야산으로 숨어들어야 했을까. 저자는 최치원을 이해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최치원이 유학했던 중국의 시안과 양저우 답사에 공을 들였고, 소설로 그 이야기를 풀어냈다.

부산 해운대가 최치원과 관련이 있다?
시 한수로 자매의 억울한 원혼을 달랬다?
글 하나로 기세등등한 역적을 침상 위에서 떨어트렸다?
부산과 시안, 천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찾는 우리가 몰랐던 최치원 이야기

부산 해운대에 가본...열두 살에 홀로 당나라로 조기 유학을 떠난 최치원,
육두품이라는 신분제도에 꺾인 최치원의 꿈과 이상을 소설로 읽다!

경기 침체와 더불어 국내 취업 시장에서 유학파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자녀를 일찌감치 해외 학교에 보내는 ‘조기 유학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대학 입시와 취업하는 데 있어 영어의 비중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조기 유학으로 인한 상당한 경제적 지출과 ‘기러기 아빠’로 상징되는 가족 해체 등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1천여 년 전에 이미 조기 유학에 성공한 역사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최치원이다. 당나라에서 17년을 보낸 최치원의 삶은 어땠을까. 육두품이라는 신분제의 벽을 극복하기 위해 당나라에 왔지만, 외국인으로서의 한계를 또 느끼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고운 최치원, 나루에 서다’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서 ‘나루[津]’, 즉 옛글에서 ‘통진(通津)’은 벼슬길로 나아가는 길이자 입신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나루’는 벼슬길에 들 수 있는 어떤 방법이었던 것이다. 신분제의 한계를 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최치원이 이국에서 성공을 위해 다시 서야만 했던 또 하나의 나루. 최치원은 그 나루를 찾았을까.

저자는 최치원이라는 인물 속에 담긴 이야기가 상당히 신비로웠다고 말한다.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9세기에 열두 살 어린 소년이 당나라를 향해 떠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당나라 과거에 합격했다. 당나라에서 유명한 문사로 지내다가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그러나 오래지 않아 가야산으로 숨어 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신선이 되었다고 했다. 이렇게 전하는 이야기 속 최치원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왜 최치원은 겨우 열두 살에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가야 했을까. 신라로 돌아와서 관리 생활을 하다가 왜 갑자기 가야산으로 숨어들어야 했을까. 저자는 최치원을 이해하기 위해 국내는 물론 최치원이 유학했던 중국의 시안과 양저우 답사에 공을 들였고, 소설로 그 이야기를 풀어냈다.

부산 해운대가 최치원과 관련이 있다?
시 한수로 자매의 억울한 원혼을 달랬다?
글 하나로 기세등등한 역적을 침상 위에서 떨어트렸다?
부산과 시안, 천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찾는 우리가 몰랐던 최치원 이야기

부산 해운대에 가본 사람은 많지만, ‘해운海雲’이 최치원의 자(字)에서 비롯된 지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고운 최치원이 낙향하여 절로 들어가는 길에 우연히 해운대에 들렀는데, 주변이 무척 아름다워 동백섬에 ‘海雲臺(해운대)’라는 글을 음각으로 새겼다고 한다. 여기서 해운대의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최치원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당나라에 유학한 지 6년 만에 과거에 급제한 후 율수현위로 재직 중이던 최치원. 이때 그의 운명을 뒤바꾼 사건이 일어난다. 소금장수인 황소가 농민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최치원은 황소 토벌의 총 사령관인 고병의 휘하에 들어가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황소(黃巢)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또, 율수현위 시절 최치원이 쌍녀분을 지나다가 무덤 앞에 시를 바치고 그 옆의 역관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최치원의 꿈에 장씨 자매가 나타나서 세 사람이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었다는 ‘쌍녀분’ 설화도 들려준다. 시 한수로 자매의 억울한 원혼을 달랜 신필(神筆) 최치원의 사랑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고운 최치원의 삶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17년간 당나라 생활을 접고 귀국하는 길에 최치원은 「두견(杜鵑)」이라는 시를 짓는다.

돌 틈에 뿌리내려 잎이 쉬이 메마르고/풍상에 시달려 꺾이고 시들었네./가을 자태 자랑하는 들국화는 봐준다 해도/추위에도 꿋꿋한 바위의 솔은 응당 부럽구나./애석하다, 향기 머금고 바닷가에 서 있건만/누가 능히 붉은 난간가에 옮겨다 심어 줄까./평범한 초목과는 품격이 다른데/지나가던 나무꾼이 같이 볼까 두렵구나.

하필이면 돌 틈에 뿌리를 내린 탓에 잎이 쉬이 마르고 풍상을 겪으며 꺾이고 시든 진달래. 그것은 최치원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최치원에게 당나라는 기회의 땅이자 동시에 척박한 배경이었다. 육두품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잊을 수 있는 곳, 그러나 외국인이라는 또 다른 한계를 절감해야 했던 곳. 그런 곳에서 오로지 인백기천의 노력으로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썼던 자신의 모습에 대한 회고가 두견화(진달래)에 투사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표지에서 돌 틈에 뿌리내린 진달래의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신분제에 묶여 침몰하는 신라. 또 다시 유리천장에 부딪힌 최치원은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속세를 떠난다. 붕괴하는 신라를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 한 최치원. 신분의 한계에 갇혀 뜻을 펼치지 못한 그가 꿈꾼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인물 답사기 시리즈 소개

정약용, 최치원, 조식, 이황, 이이…… 우리 사상가들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 시리즈는 사상가들이 살았거나 머물렀던 장소를 답사하며 인물들의 흔적을 찾아간다. 일반적인 답사라기보다는 그 인물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그들이 남긴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여행이다. 아울러 우리가 익히 아는 ‘위인’ 아닌 한 ‘인간’을 알아가는 즐거운 여정을 담는다.


저자 프로필

김영우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사
  • 경력 인제대학교 교수

2015.02.0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소개

김영우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대학원에서 「정약용의 역학 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제대학교 인간환경미래연구원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전기심성론』, 『퇴계, 달중이를 만나다』(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다산의 사단칠정론고찰」, 「다산과 대진의 『맹자』 해석 비교연구」, 「정약용과 모기령의 역학사상 비교연구」 등이 있다.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를 마쳤다. 『천상병의 동네』,『정약용』, 『허난설헌』, 『특별한 날 먹는 특별한 음식』, 『정약용의 편지』 등을 지었다.

목차

머리말
1. 인백기천人百己千
2. 원리진세遠離塵世
부록
최치원 연보
답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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